하루 확진자 30만 명 상황에서도 일상 회복이 가능한 이유.
스페인에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정말 크게 걱정하셨다. 한국도 위험한데, 확진자가 300만 명씩 나오는 유럽에 도대체 왜 가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조만간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부모님은 잘 다녀오라고, 마스크 잘 쓰고 다니라는 말로 허락을 해 주셨다. 사실 부모님은 알고 있었다. 어떠한 말에도 이미 결정을 한 일에 내가 절대 결심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을. 전과를 할 때도 그랬고, 졸업을 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도 그랬으니까.
스페인에 도착을 하니 부모님의 걱정이 이해가 갔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공항. 과연 확진자가 하루에 몇백만 명이 나오는 국가가 맞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방역 체제는 느슨했다. 혹시 몰라 보건소에서 발급받은 '영문 예방 접종 증명서'는 확인도 하지 않았고, 입국 전 스페인의 보건복지부 같은 곳에서 1분 내에 등록이 가능한 health form만 보여달라고 했다. 물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긴 했다. 두바이에서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내 앞의 멕시코와 중동국가의 여행객들은 검역 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으니 말이다.
다음 날 바르셀로나 시내로 나가고 나니 시민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실감이 났다. 실내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라 모든 이들이 마스크를 들고 다니긴 했지만, 실외에서는 의무가 아니기에 3분의 1의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1월 19일 낮에 도착을 했는데, 20일부로 새벽 1시였던 curfew도 철회가 되었다고 했다. 단, 일부 주에서는 백신 패스를 요구하고 있었는데 외국인 여행객은 QR코드가 없었기 때문에 확인 없이 그냥 들여보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상이 가능한 것인지. 하루 300만 명이면 한국에서는 의료시설 붕괴가 왔을 것이고, 엄청난 통제가 있었을 거니까. 스페인에서 만난 호르헤의 친구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작년과 달리 오미크론 변이는 치명률이 낮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고, 백신접종률도 높아서 괜찮을 거야. 무엇보다 스페인 의료 시스템을 믿어."
스페인의 의료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물론 나는 호르헤를 만나기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저평가할 거라고 예상한다. 스페인 시민이나 영주권자들은 의료 카드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 카드를 들고 병원에 가면 어떤 병이든 거의 무료로 치료가 가능하고, 처방전이 없이 약을 사는 것도 저렴하지만 (감기약의 일종인 이부프로펜 60정에 2유로 = 2,700원 정도) 이후 처방전을 가져가면 그 마저도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약국이 정말 흔하고, 사람들은 병원에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 80만 원을 보험비로 사용하면서도 열이 38도까지 올라도 병원 한 번 가지 못하는 나였는데, 스페인이 다르게 보였다. 잘 되어 있는 의료 시스템에는 코로나 병상도 포함되었다. 300만 명이라는 어마 무시한 확진자가 나옴에도 의료 체제는 굳건했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조금씩 평화를 찾아가고 있었으니까. 첫해와 작년 델타 바이러스에 크게 당한 후 제대로 준비를 한 듯했다. 물론, 언제 다시 그런 상황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음성 검사서를 들고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는 언제나 마스크를 쓰며 조금이라도 코로나 비슷한 증상이 생기면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오랜만에 코로나 이전의 생생한 삶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 잠시나마 행복했다. 식당이나 술집 문 닫을 걱정 없이 밤늦게까지 기울여 보는 술잔, 친구들과 함께 하는 밤이 이렇게 즐거운 것인지 잊고 있었다.
청주에서 남편과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는 9시에 문을 닫아야 한 이후로 매일 죽고 싶다고 말한다. 7시에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주로 9시 이후에 장사가 시작되는 곳이기에 정부의 방역 지침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그리고 주위의 많은 사장님들이 생계를 걱정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작년까지는 정부의 방역 지침이 맞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조금만 버티면 마스크를 벗고 경제도 다시 피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확진자가 폭증하는데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오히려 제제를 완화하고 진정한 위드 코로나 시대로 나아가는 데는 그 이유가 분명하게 있지 않을까 싶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우리나라도 일상 회복을 했으면 좋겠다. 끝나지 않을 이 전쟁에서 더 이상 꽁꽁 싸매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지금, 불안하지만 생기 넘치는 스페인의 거리가 조금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