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동안 만난 스페인 8개 도시-1탄
믿거나 말거나 20대에 역마살을 끼고 산다는 사주를 가진 나는 이곳저곳을 정말 많이도 떠돌아다녔다. 지도 한 장 들고 떠난 태국부터 시작해, 뉴질랜드, 필리핀, 미국, 캐나다, 쿠바, 말레이시아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에 갔다가 코로나가 터져 대망한 호주까지. 사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여행' 그 두 글자에서 주는 설렘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정착할 나라를 정하는 모험이었다.
작은 도시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청주에서 자라 어쩌다 안정권으로 하나 쓴 대학이 걸려 7년 전, 얼떨결에 상경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새롭고 행복했다. TV에서만 보던 수많은 고층빌딩들, 어디든 빠르게 날 이동시켜주는 지하철. 그리고 그 지하철로 몇십 분만 가면 느낄 수 있는 역사의 숨결들까지. 우리나라를 이끌어간다는 회사들의 세미나를 손쉽게 신청할 수 있었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기에 원하던 동아리 가입도 가능했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달콤한 상자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이 낭만도 끝이 났다.
취준생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보증금과 월세는 나의 목을 조여왔고, 그 후, 인턴 생활을 하면서 이사한 곳은 달에 50만 원을 내고 있으면서도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순식간에 나를 덮치는 우울증을 또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어 아침마다 강제로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본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제 거기서도 나는 이방인이니까. 연락할 친구도 없고 무엇보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생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시간을 날아 바르셀로나 인근 루비에 위치한 남자 친구 집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작지만 따뜻한 정원과 오렌지 나무 사이로 보이는 탁 트인 하늘이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아침 8시면 눈이 떠졌고, 그렇게 무겁던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처음으로 아침에 무언가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정말 오랜만에 아침밥도 차려 먹었다. 특별한 것을 한 것도 아닌데 참 잘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후, 호르헤와 함께 남은 2주 동안 9개의 도시를 여행했다. 언젠가 한 번쯤 살고 싶었던 스페인에서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빨리 살게 될지도 모를 이곳에서 미래의 동네를 찾고 싶었다. 어쩌면 상상에서 끝날지도 모르지만 이런 마음이 신기하게 여행에 더 푹 빠져들게 만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느꼈던 특징들을 2탄에 걸쳐 공유해보려고 한다 (순서는 내가 여행한 순서대로)
1. 바르셀로나
호르헤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이자 스페인의 제2 도시다. 카탈루냐주에 위치해 있어 스페인어 이외에도 카탈루니아어를 사용한다. 여전히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다른 주에서 차별을 받곤 한다 (이 이야기는 다른 편에서). 스페인 전체적으로 오래된 것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바르셀로나 시내가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예술가들을 위한 거리도 잘 조성되어 있는 편. 오래된 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섞여 있으며, 낮이나 밤이나 가만히 걷는 것만으로 낭만을 선물해 주는 도시다. 또, 바르셀로나의 상그리아 까바는 정말 유명하다. 과하게 먹고 얼마나 토를 했는지. 그래도 여전히 그리운 맛이다. 다만, 대도시인만큼 센터에서 지하철로 15분 내의 거리에 위치한 집들은 굉장히 비싸다. 보통 달에 100만 원에서 130만 원선. 그리고 주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오토바이나 전동 킥보드를 사는 걸 추천한다. (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집들도 따로 주차비를 받는데, 달에 15만 원 정도라고 하니 안 사는 게 경제적으로 좋은 듯하다) 만약 이곳에 살게 된다면, 근처에 아름다운 소도시 중 한 곳에서 살고 싶다.
2. 발렌시아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의 제3 도시로 발렌시아주의 주도다. 이강인이 속한 축구클럽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나름 축구를 좋아하는 편인데, 딱 하루 머무는 곳이라 예매를 하지 못했다. 발렌시아에서는 발렌시아어를 필수로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카탈루냐 지방과 달리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1월의 바르셀로나는 낮에도 꽤나 쌀쌀했는데 발렌시아로 오니 겉옷을 입지 않아도 될 정도로 따뜻했다. 평일 낮임에도 분수대 근처에서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춤추는 커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발렌시아 중앙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큰 전통 시장인만큼 다양한 재료들로 눈을 즐겁게 했고,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건축물들은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누르게 했다. 다만, 바르셀로나에 비해 밤에 조금 위험하게 느껴졌고, 도시 크기에 비해 당일치기 여행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볼거리가 별로 없었던 게 아쉬웠다.
3. 똘레도
마드리드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스페인의 옛 수도, 똘레도. 16세기 마드리드가 수도가 된 이후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것이 오히려 이곳만의 매력이 되었다. 중세시대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어딜 가든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걷는 느낌이고 호텔 역시 그 시대의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여행지로는 그라나다와 1,2위를 다투는 곳이지만 터를 잡고 오랜 기간 살아갈 곳은 아니기에 8위를 주었다. 똘레도에 유명한 것이 아기돼지숯불구이인 꼬치니요인데, 상그리아에 빠져 음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 이곳에 온다면, 꼭 광장에서 예매 가능한 꼬마기차를 타고 똘레도 한 바퀴를 돌아보기를 추천한다. 인당 7유로로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에 똘레도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또, 대성당도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한 사람당 10유로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무료 오디오 북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섬세하고 눈부신 건축물들에 빠져들었다. 다시 스페인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갈 도시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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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온 지 약 3주가 지금, 한 겨울의 꿈 같이 벌써 그립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나머지 5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라나다, 살라망카, 부르고스, 마드리드 그리고 로그로뇨. 그나저나, 언제라도 살기 위해서 자기 전에 스페인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야겠다. 언어가 되어야 그 나라의 문화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