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하는 나의 미래에 확신이 생겼다
살면서 딱 두 번 더블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5년 전. 평소 친했던 플랫 메이트의 커플과 한강에 가서 회에 소주와 맥주를 곁들여 놀았는데 당시 남자 친구는 "나 회 싫어하는 거 알잖아, 아 비린내." 하면서 1시간이나 지각한 주제에 표정 하나도 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간 후 한 달도 채 안 되어 헤어졌는데 (그쪽이 잠수를 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뜬금없이 바다 사진과 함께 감성글을 올려서 크게 당황했었지. 두 번째는 지난해였다. 장소는 같은 한강.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어서 만난 그 사람은 두 번째 만남에서 다짜고짜 고백을 해 버렸고, 친구로는 지내고 싶었지만 어색한 것이 너무 싫어 친구 커플에게 SOS를 쳐서 성사된 것이었다. 겉으로는 더블데이트였지만, 나에게는 그와 예의를 최대한 지켜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자리였다.
그리고,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최대 5개월, 최소 1개월이면 이미 끝이 났던 관계를 주로 경험했던 나는 내 인생에서 나름 가장 길고도 편안한 연애를 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가 있나 싶게 그와는 사소한 다툼도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기만 한다. MBTI에서 84%로 E성향이 강한 나지만, 나만의 공간을 침범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일주일에 2-3번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드려고 하고, 나의 공간에 그가 들어오는 게 기쁘다. 나의 어떤 면도 좋아해 주고 존중해 줄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 남자 친구의 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게 되면서 그의 한국어 선생님 부부와 한번, 그리고 친한 직장 동료 커플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의 친구들, 한국 - 브라질 국제 부부, 그리고 스페인 - 크로아티아 국제 커플인 그들과의 식사 자리는 사실 나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긴장감 뒤에는 '과연 사귄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내가 이런 자리에 가도 되는 걸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남자 친구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호르헤, 다른 커플과 함께 식사하는 거 스페인에서는 흔한 일이야? 이렇게 사귄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걱정 가득한 내 눈에서 내 마음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파트너끼리 (그는 여자 친구라는 말 대신 파트너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흔해. 물론, 누구나 데려가지는 않아. 견고하고 확신이 있는 사이에서만. 우리처럼."
태어나서 확신이 있는 연애를 한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 말이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썸을 타다가 '이 사람이 정말 좋다'라고 느껴서 연애를 시작한 적이 없었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나는 대체로 친구들의 소개팅으로 남자 친구를 사귀었었는데, 3번을 만나고 고백을 하는 남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Yes 뿐이었다. 싫지도 않고, 더 알고 싶은 마음. 그 애매모호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연애는 절대 오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진행된 더블데이트. 생각보다 가볍고 신선한 자리에서 커플과 커플끼리의 모임이 아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 것 같이 재밌었다. 다른 나라에서 와 스페인에 정착한 그들은 외국인의 시선에서 스페인의 장점과 매력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나에게도 스페인에 살기를 적극 추천했다. 특히, 한국어 선생님은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한국인 친구를 사귀게 된 것에 기뻐하며 늦은 시간에도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을 함께 누비며 가이드처럼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스페인에 오게 된다면 자주 만나자는 말과 함께. 또, 크로아티아에서 온 미아 역시 어떻게 스페인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해주었고, 스페인어를 하지 못해도 직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연애의 기간과 나이보다 더 소중한 것을 보라고, 주변의 시선 사회의 기준을 무시하고 서로에 대한 마음만을 생각하라고도 조언해 주었다.
사실 국제연애를 하게 되면서 , 그것도 한국에 1년밖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교환학생과 연애를 하게 되면서 나 역시도 고민이 많았다. 마음은 깊어져 가는데, 그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나날들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고통스러웠다. 그와 나의 절친한 친구가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는 날 공항에서 우리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눈물에는 우리가 경험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학생이자 풀 스택 개발자로 2년 전부터 일을 하고 있는 그는 한국에서 워크 비자를 스폰해줄 회사를 찾고 있고, 나 역시도 최대한 빨리 나의 분야에서 경력과 돈을 쌓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떻게든 함께 있을 수 있는 길을 찾을 거라는 것을.
마지막 여행지인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까지 8시간을 운전해 돌아오는 길, 그는 용기 내어 나에게 물었다.
"혹시, 나와 그리는 미래가 있어?"
나는 대답했다.
"집 계약이 내년 1월에 끝나. 그 후로 한국에서 1년 정도 함께 경력 쌓고 함께 살 수 있는 나라로 떠나자. 스페인도 좋고, 우리 둘 다 영어가 편하니까 캐나다나 호주로 가도 좋을 것 같아."라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좋아! 나도 너랑 같이 살고 싶어."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아시면 어떻게 반응하실지도 알고,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어떤 것인지도 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한 2번의 더블데이트와 그와 함께 한 순간들을 통해 나는 확신이 생겼다. 이 남자랑 같이 살아야겠다는. 그리고 파트너 제도를 인정해 주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조금은 긴장된 상태에서 한 더블데이트. 그 자리에서 만난 두 커플은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었고, 그 누구보다 안정되고 서로를 향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들에게서 나는 그와 함께하고 싶은 나의 미래에 확신을 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가기 참 잘했다고.
그리고 또 그들을 만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