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탄생

둘째는 없다면서.

by 마음 써 봄

"산모님 숨 쉬세요! 자꾸 그럼 애한테 산소가 안 가요!!"

"아악~~~~~~"

"내진 좀 해주세요! 얼마나 남았어요?"

"오빠 나 수술할래. 으악 죽겠어!!"


나는 엄청난 쫄보다. 겁이 많아 놀이기구도 못 탄다. 여자가 출산을 한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티브이 사극에서 출산할 때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초등학생시절부터 결심했었다. '애는 안 낳고 입양해야지. 저런 고통을 겪을 수는 없어'

결혼 후 출산 선배들은 '무통 맞았더니 애가 쑥 나오더라, 요즘은 하나도 안 아파'라고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졌구나. 뭐 그럼 나도 할 수 있겠지. 자신감 하나로 버틴 임신기간이었다.

그. 런. 데

엄청 아픈데? 왜 이렇게 아픈 거라고 아무도 안 알려준 거지? 그걸 알려주면 출산을 안 할 것이기에 출산 선배들은 감춘 것이 분명했다. 아픈 순간에도 먼저 출산한 이들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그렇다면 나도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아야겠다.




만 10년 전 이 시간 가족 분만실에 있었다. 40주가 되어가도 아직 아래로 내려오지 않은 지구 때문에 하루에 3시간씩 걷고 운동을 했다. 40주 1일 약간의 진통이 오기 시작했고, 배운 여자답게 진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40주 2일 새벽 이제는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샤워를 하고 남편을 깨웠다. 오전 8시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산부인과 도착. 일요일이라 당직인 대표원장님이 계셨는데, 내진 후 망설이시며 아직 자궁문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고 하신다.


"온 김에 낳죠!"

쿨하신 한마디에 오전 10시부터 유도 분만을 시작했다. 난생처음 먹어본 관장약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져 나왔고 안절부절 못하는 남편이 '5분은 참으랬는데..' 했지만 그 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출산인지, 대변인지 그들의 뒤섞임은 그저 신호탄에 불과했다.


라마즈 호흡법을 열심히 연습했고, 노산도 아니고, 운동도 하루 2시간씩 했기에, 아이는 힘주면 쑥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진통인지, 변의 느낌인지 모를 기분 나쁜 그것은 계속되었고, 주기는 짧아졌다.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며, 왜 출산 시 남편의 머리채를 잡아 뜯는지 그들의 심정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자연 분만이지! 를 당당하게 외쳤던 나인데 남편에게 다급한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수술시켜 줘. 이러다 죽을 것 같아" 남편은 이걸 진심으로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이었고, 선생님은 잠깐 들르시더니 "진통제 놔주세요."라고 말하셨다.

그렇다. 이곳은 무통이 없는 병원이었다. 그 사실은 출산 얼마 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쿨한 여자니까. 예전엔 다 무통 없이 낳았는데 할 수 있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오늘 그 자신감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다 됐어요. 엄마. 힘줘요." 2시간 만에 끝이 보인다. 아래서는 선생님이 위에서는 간호사가 배를 누르는 대환장 파티. 흡입기를 동원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 지구.

응애응애 우는 소리가 들리고, 초록 천에 싸여 내 품으로 왔을 때, 나의 아이를 품에 안았다는 감동.. 이 있을 줄 알았으나 '와! 이제 끝났다. 더 이상 안 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남들은 알까? 출산의 고통은 모성애보다 앞서는 경험이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여 둘, 셋을 낳고 싶다는 나였는데 병실에 입실 후 첫마디는 "둘째는 절대 안 낳아."였다. 그런 내가 10년 후 세 아들의 엄마가 되어 있을 줄이야.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맞다.

누군가 출산에 대해 묻는다면? 태어나서 한번 해볼 만해요! 꼭 해봐요. 금방 끝나요.라고 답해 줘야겠다.


나만 겪을 수 없지.

태어난 지 하루 된 돌하르방
집에 있는 장난감으로 돌려 막기 하는 형아 생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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