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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May 22. 2024

모퉁이에 선 여자

안녕 내 첫사랑

"엄마는 너 데려다주고 알라딘 갈 거야~"

"알았어"

"그럼 엄마 간다! 재미있게 놀다 와!"

집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한 의심을 알라딘이라는 빌드업으로 마치고

쿨한 뒷모습을 보이고 사라졌다.


아니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은 것이다.

나는 그날 모퉁이에 숨어있었다.


외벌이에 5인 가족인 우리는 아주 아슬하게 저소득층에 속한다.

사실 마이너스 통장은 이미 꽉 찼고 또 다른 대출도 받아 살아가고 있지만

운동 하나 보내는 게 사교육의 다일정도로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우리 집이지만

완전한 저소득은 아니라고 하여,

아주 소정의 저소득층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래서 학교 복지실에서 하는 여러 행사들에 참여가 가능한데

그 프로그램 중 형동생 멘토링이라는 사업이 있었다.

대학생들과 자매결연 같은 것을 맺어 주는 사업이라는데.

명문대생들과 연계해 준다고 하니 엄마로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아이의 멘토는 육사 생도였다.


멘토링 형아에게 이런 카톡이 왔다.

그렇다... 첫째는 카톡 확인을 하고 답장을 안 한 것이다.

그 후로도 멘토 형은 다급히 나를 찾아 혹시 카톡 외에 어떤 연락 방법이 따로 있냐고 물을 정도로

아이는 친구 아닌 존재와의 연락을 부담스러워했다.


남편과 내가 옆에서 "형아 연락 왔어?"귀찮게 물어야 한두 번 확인하는 녀석

어떻게 답장해야 하냐고 할 때마다 문구를 정해서 불러 주었다.


드디어 그 형아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뭘 좋아하냐는 말에 보드게임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불러준 대로 쓴 ) 아이는

00역 2번 출구에서 형을 만나기로 했다.


00역은 우리 집 한 정거장 거리이고, 자주 다니던 곳이었다.

올 때는 알아서 오고, 갈 때만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고 아이와 헤어졌다.


아니 헤어지지 않았다.

나는 모퉁이에 숨었다. 형아와 잘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홀로 서있는 아이 앞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훤칠한 청년이 찾아오고

이쪽으로 걸어오기에 나는 얼른  행인들 사이로 숨어 걸어 들어갔다.


오늘의 나의 미션은 완료!

알라딘에서 기분 좋게 책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한 집안 "띡띡" 번호키 소리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어땠어?""뭐 했어?"를 묻는 나에게

정말 밝은 얼굴로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는 녀석이 기특했다.


한 뼘 앞으로 나간 아이. 이제 내 품 밖으로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앞으로 아이는 이렇게 새로운 인연을 맞고 부모가 모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육아는 독립을 위함이라던가. 내 살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기심 많은 너의 삶에 더욱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일들이 펼쳐지길  잘 자라줘서 고마워!

그래도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가라 내 첫사랑


혹시 모퉁이에 서있던 엄마 본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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