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아줌마죠?

아줌마로 산다는 것.

by 마음 써 봄

<도서 반납 안내> 안녕하세요 00 구립 도서관입니다. 마음 써봄님이 대출하신...


3주라는 기간은 왜 이리 짧은지 다 보지 못한 책들도 있는데 벌써 반납날이 다가왔다. 빌릴 땐 신나지만 반납은 귀찮은 도서관. 이래서 내가 책을 사야 한다니까.. 투덜거리며 나갈 채비를 한다.

운동도 귀찮아 이번주 내내 안 갔지만 도서관은 연체되면 안 되니까. 반납은 제때를 신조로 하고 있다.


흰색 패딩 롱조끼 남색 피치 긴팔 원피스를 입고 아래로 나오는 다리가 시려 추가로 롱스커트까지 입은 기괴한 잠옷 차림에 검은 레깅스를 주워 신고 발목이 나오지 않게 흰 양말을 덮은 후 바퀴벌레 롱패딩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선다.

롱패딩 사이로 검은 치마와 남색 치마가 캉캉으로 보이는 듯 하지만 괘념치 않는다. 곧 돌아올 거니까.


십여 권의 책을 에코백에 둘러메고 한 손에는 재활용박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나서는 아주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다음 주 소등행사 안내가 쓰여있다. 사은품이 종량제 봉투 4장이라니 반드시 필참해야 하는 행사다. (20리터를 줄까, 10리터를 줄까 궁금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앞의 여고생이 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수능날이라 학교를 안 간 것은 알겠는데, 어깨에 내린 빗줄기를 보니 꽤 오랜 시간 비를 맞은 것 같다. "아줌마 집엔 다 왔는데 이 우산 쓰고 갈래?"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오지랖 경지가 그 정도까지는 못 갔기에 꾹 누르고 갈길을 간다.


동네 마트에 갔는데, 무려 380원에 파는 주스를 발견했다. 진열하시는 분을 힐끗 보고는 주변을 맴돌다 잽싸게 바구니에 챙긴다. 직원분이 다시 곁으로 오셨을 때 화들짝 놀라며 "이거 개수 제한 있나요?"라고 물으니 박스채 내밀어 주시는 센스 있는 분.. 덕분에 2박스를 챙겨 알뜰한 주부가 되었다. 백 원이라도 싼 물건을 찾았을 때의 희열이란..

우리 집의 식단은 마트 전단지 속 할인 상품이란 것은 아이들은 아직 눈치 못 챘겠지..

썬업 두 박스에 흐뭇해진 날.

나는 언제부터 아줌마가 됐을까? 결혼 후부터는 아줌마인가? 애를 낳아야 아줌마인가? 문득 결혼 십여 년 만에 아줌마 다 됐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날을 떠올려 본다.


보드게임 강습을 받으러 갔다가, 주변에 모이신 할머님들께 보여달라고 하지도 않은 우리 애들 사진을 보여준 날. 그날 나도 아줌마가 됐구나 싶었다. 내 자랑이 아닌 애들 자랑이 앞서는 아줌마. 애 칭찬이 내 칭찬 보다 더 기쁜 아줌마


40이 되면 세상에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을 줄 알았다. 젊은 시절이 지나면 무기력한 날들만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40을 넘겨보니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은 지금이다. 불안하고, 손안에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인생이 아닌,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인생. 손 내밀어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서로 사랑하며 조금씩 발전하는 나 자신이 보여 기쁘다. 이기적인 인생을 살지 않고 돕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가치를 가지고 살 수 있어 뿌듯하다.


멋진 아줌마에서 멋진 할머니로 백발을 휘날리며 살아갈 그 인생이 아직 남아있기에 읽기, 쓰기, 운동하기 습관을 만들어 간다.


습관은 눈으로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단어지만 몸으로 해내고 나면 기적이 된다. 내 안에는 기적을 만들어 낼 또 다른 내가 있다.
-김미경 마흔 수업-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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