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는 해치지 않아요.

삶의 질을 높이는 곳입니다.

by 마음 써 봄

아이의 풀 배터리 검사 중 부모가 검사를 해야 하는 항목이 있었다. mmpi라고 하고 다면적 인성 검사라고도 부른다. 남편이랑 둘이 나란히 앉아서 검사를 하는데 문득 "나 우울증이 나올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우울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느낌 탓일 거라고 내 마음을 일축하고 모른 척했다. 그즈음 가슴속에 돌덩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과, 호흡곤란과 더불어 일상에 대한 분노감도 심해졌으며 남편에게"사는 게 너무 지긋지긋하다"라는 말과 함께 "내가 죽으면 이 생활이 끝날까?" 하는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아이의 adhd약을 한 알 먹어 보고 나서야, 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나 우울증인 것 같아 병원에 가봐야겠어."

"네가 무슨 우울증이야. 네가 우울증이면 세상에 우울증 아닌 사람이 없을걸. 세상사람들 다 그러고 살아."

그랬다 나는 드러누워있어 본 적도 없으며 내 할 일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더 할나위 없이 활기찼었다. 누군가 나의 힘듦을 눈치채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정보통 맘카페를 열었다. 맘카페에서 평이 좋았던 정신과는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00 신경정신과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아무 이상 없는데 왜 오셨어요?"라고 하면 어쩌지. 게을러서 그렇다고 하는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 빼꼼 문안을 들여다보았다.

조그마한 대기실에는 몇 분의 환자가 있었고, 밝은 얼굴의 직원분이 나를 보고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아, 빼박이다' 쭈뼛쭈뼛 병원 안으로 들어가 접수를 했더니 이런, 정신과는 주민증 확인도 한다고 한다. 잘 온 것이 맞나? 마음속에 혼란이 찾아온다.


직접 만난 선생님은 맘카페의 호평대로 푸근하신 분이었다.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나의 증상은 어떤지 물으시고는 시간은 충분하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해보라고 하신다. 지구의 이야기, 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간단한 문진을 하신 후 나의 점수를 보여 주신다. "우울증입니다." 곧이어 이렇게 말하셨다. "우리 노동일 많이 하면 관절이 상하고 아프죠? 뇌도 똑같아요. 뇌를 많이 쓰면 뇌신경이 약해집니다. 그러면 감정조절도 안되고 짜증도 많이 나고 화병이라고 울화가 치밀고 그래요. 약먹으면 관절이 안 아파지는 것처럼 우울증도 약먹으면 좋아져요"

우울증 약을 먹고 무기력과 잠에 빠져 살까 걱정하는 나에게 저녁 한 번만 먹으면 된다고 다독여 주셨다.


"나 우울증이래"

"그래? 그럼 약 받아왔어? 이따 집에서 얘기하자"

서둘러 끊는 남편에게 약간 서운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울증이란 얘기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자기 잘못 같아 미안해서 더 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다는 남편. 아마 남편은 나의 우울증을 몰랐다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회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병원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2년 반 동안의 삶은 이전 40년간의 생활과는 180도 달라졌다. 언제나 전전긍긍 불안감으로 똘똘 뭉쳐져 있던 내 마음속이 세상 어떤 때보다 편안해졌다. 남들은 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줄을 평생 몰랐었다. 그래서 정신과 전도사가 되고 있다. "병원 꼭 가보세요"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중독된다. 한번 먹으면 끊을 수 없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잠만 잔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진다. 의지가 없어서 혹은 게을러서 그런다. 등등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정신과에 대한 문턱을 더 높이고 있다.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평생 우울증 약 먹고살아도 나쁘지 않다는 게 내 결론이다. 물론 선생님도 너무 잘 만났고, 약도 맞는 걸 잘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맞는 의사와 약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분들도 많이 있다.)


요즘 표정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떤 칭찬보다 "마음 써 봄님은 표정 부자예요. 표정이 참 좋아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뿌듯하다. 나의 좋은 표정에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약'이라고 생각한다.


우울증 약 먹으면 어때?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한다. "삶의 질이 높아져!"


lake-1915846_1280.jpg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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