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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고 생긴 뜻밖의 일근육

애를 낳고 모성이 아닌 일욕심이 생겨 버린 일











 샴푸, 린스, 보디 샤워, 핸드워시, 그리고 빨지 않은 내가 입던 옷들. 이제, 마치 그곳이 우리 집인 된 듯 나의 일상의 흔적들을 시어머니 댁에 옮겼다. 짐을 옮기곤 미친듯이 책을 읽어댔다. 복직 전 새로운 환경에서 아기가 낯설어 힘들어하지 않을까, 애착 형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읽을 수 있는 글과 책을 마구 읽었다. 그렇게 나는 집을 옮기고, 공부를 하며 아이와 떨어질 준비를 했다.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위로이자 주문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할머니와 적응을 잘 할 수 있게, 아니 스스로 불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나를 억척스럽게 단련했다. 3개월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이렇게 바로 복직하는 게 잘 하는 일인지, 맞는 것인지 헷갈리는 나에게 친구들은 거들었다. 일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일하는 게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야. 요즘 세상에 혼자 벌어서 어떻게 살아? 




"너는 집에서 아이 키울 스타일 아니야. 아이 키우는 거보다 일하는 게 훨씬 더 쉬워. 아이 엄마로 그만한 직장 다시 구하기 어려워." 친구들이 내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는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겁이 덜컥 났다. 일을 그만두기도 두렵고, 친구들의 만류에 나는 내가 무얼 원하는지는 잘 모르는 채 떠밀리듯 일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왜 일해야하는지 모른채, 그냥 쭉 일하게 됐다.



 엄마가 돈 벌러 가야 좋은데도 가고 맛있는 것 사 먹는 거야 



출근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의 일>을 <돈벌러 가는 일>로 아이에게 설명했다.

사실, 나는 좋은데도 가고 맛있는 거 사먹으려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데 가기 위해 매일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거라니! 그때 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핏덩이 같은 아이를 두고 일터로 나가는가에 대해서. 계산할 수 없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포기하며 출근을 하는데, 무언가 제대로 해내야 할 것 같았다. 이 시간을 그저 시간만 보내러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에게 엄마에게 일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고 싶었고, 멋진 롤모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 더 멋진 엄마가 되기 위해 일하는 거야!!라고 외쳤다. 뜻밖에도 모성애가 나를 강력하게 일 욕심으로 연결을 해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나’와 ‘일을 하는 나’를 오가며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이 일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나는 내 공백을 제대로 채우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지, 퇴행해서 흐물흐물한 내가 될까 봐 마음을 졸였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생긴 근육은 꽤 많았다. 복직이 두려웠던 나의 움츠러든 어깨와 마음을 판판하게 펴줄 수 있는 엄마 역량은 이런 것들이었다.



 ◎ 엄마가 되고 개발되고 커진 역량



 ▶커뮤니케이션

태어남과 동시에 아이 울음소리만으로 욕구를 알아내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오감을 깨워 아이의 신호들을 읽어내었다. 원래도 소통 능력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복직하고 나서 근무를 하며 회사에서 표면적인 이야기 뒤에 사람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이 무엇인지 들리고, 비언어적인 신호들도 눈에 들어왔다. 했던 이야기를 여러 번 하거나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어도 성가시지 않았다. 일이 전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나에게 일감과 사람들이 더 자주 찾아왔다. 세대 차이가 나서 답답하던 관리자들과도 인간적으로 마주하고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던 건 시댁 어른들과 평일 저녁을 보내며 아이를 함께 키워서였을까? 전에는 몰랐던 원활한 소통을 회사에서 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생긴 용기와 액션

행동해야 하는 일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즉시 행동으로 옮기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육아는 느렸던 나를 움직이게 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행동하며 두려움이 없어지고 전보다 용기가 자주 생겼다. 일생일대의 큰 두려움이었던 임신과 출산은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는 것을 엄마들은 알 것이다. 하다못해 병원에서 조금 어려운 진료를 받을 때도 뭐 그게 애 낳는 것보다 아프겠어? 하지 않는가.



 ▶빠른 감정 정리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며 <감정 가위>가 생겼다. 불필요한 감정들, 우선순위 밀리는 일들은 싹둑 자를 수 있다.  같은 일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감정 처리가 예전보다 깔끔해졌다. 잠 못 자며 뒤척이던 밤이나,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늦은 밤까지 곱씹으며 오래오래 두는 일들이 드물어졌다. 아이를 생각하며 달려가는 퇴근길, 파란만장한 회사일 들이 머릿속에서 싹 지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나뿐 아니라 다른 엄마들도 많이 하고 있으리라. 불필요하게 나를 차지하고 있는 감정들은 버리고, 공간을 내어 내 세계가 더 넓어져야 아이도 보듬고 키워나갈 수 있었다. 필요 때문에 키워진 또 다른 능력이었다.



 ▶협업이란 이런 것

복직을 하며 나는 육아를 위한 팀을 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어머니, 남편이 주로 함께하며 그리고 내가 아이의 안전, 위생, 교육 등에 관한 핵심 가치를 공유하며 협동을 해야 했다. 마침 회사에서도 작은 팀을 꾸리게 되어서 나는 공동체를 시작하고, 가꾸는 일에 고민하고 몰두하는 시간을 보내었다. 당연히 한 아이를 키우는 일에 더 많은 공과 노력이 필요하였지만, 결이 유사한 일이었으므로 내게는 때마침 중간 관리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역량들을 키우기 위해 내가 연수나 교육을 따로 내어 받을 수 있었을까? No!! 그렇다면 아이에게 보여주고 남겨주고 싶은 롤모델이 지위가 높고, 칼같이 업무 지휘를 하는 모습이었을까? No!!



 ▶다채로운 에너지와 확장

자라나는 생명을 보며 나에게 밀도 있게 채워지는 생생한 에너지가 있었다. 원래의 내가 있던 회사에 복직해서 그곳에 있는 나를 보니 예전과 다른 내가 보였다. 깐깐하고 날 이선 예전의 내 모습들은 보기에도 꽤 흐려져 있었다. 새로운 역할들을 욕심내어서 해내느라 시간의 여유는 없어졌지만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훨씬 더 여유롭고 온화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더 다채로운 아우라를 가지고 내 일을 지속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주었다.



▶기타의 etc

 이것 말고도 멀티 플레이, 시간 관리 등 일일이 기억나지 않는 잔잔한 근육들이 또 나의 일을 키우고 꾸려나가는데 기여를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스펙이라고 써 내려갈 외국어나, 자격증, 경력 사항 같은 것들은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이 생기고 나서 자연스럽게 내가 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고, 그곳에 나를 어울려 놓은 것이다.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내 일상들은 그저 스쳐 지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주인으로 그것들을 알아봐 주고, 꺼내어 반질반질 닦아주었더니 더욱 빛나는 나로 다시 다가왔다. 많은 여성과 엄마들의 일상과 경험들이 더욱 소중해지고 온전해지는 시간을 이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자! 시작해볼까?

본격적인 일근육 헬스 트레이닝 GOGO





글쓴이 : 신보라 셀프코치

원고기획 및 수정 : 여자라이프스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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