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에는 사실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족 얘기 듣는 것 좋네요. Jack johnson의 [Banana pancake]를 들으면서 읽으니 언니 글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서 좋았어요. 그리고 저희 집이랑도 굉장히 많이 닮아있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밥. 집에서 먹는 밥보다 밖에서 먹는 매콤달달이들을 훨씬 선호했던 저는 왠지 몇 년 전부터 먹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최대한 정성을 다해서 만들고, 또 그 음식을 잘 나눠먹는 것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게 됐어요. 집에서 엄마랑 둘이 있게 될 때에는 제가 식사를 준비하는데 그 식사메뉴를 전날 밤에 보통 정해놓고선 필요한 재료들만 미리 손질해 놓고 자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오늘 같은 경우는 닭조림 덮밥을 해먹을 계획이었어서 어제 닭을 좀 손질해놓고 잤는데 그러고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되게 행복하고 든든합니다. 엄마는 그간 탄수화물을 너무 오랫동안 나쁜 방법으로 섭취해왔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치보다 몇 배나 높아져 버려서 조절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최대한 채소와 단백질이 가득한 식단을 만들려고 제 딴에는 노력하는데, 딸내미가 만들어주는 밥은 항상 너무 간이 삼삼하고 야채가 많아서 제가 밖에서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오면 싱크대 옆에 어김없이 다 먹은 과자나 라면봉지가 미처 빠르게 처리되지 못한 채 현장에서 발각되고는 해요. 왜 이런 걸 먹었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자는 척해서 위기를 벗어납니다.. 하지만 그런 저도 가끔 기름지거나 빨갛고 매콤한 음식들이 당길 때는 조용히 진순(진라면 순한 맛)을 사 와서 몰래 먹곤 했어요. 저는 진라면 순한 맛에 계란 푼 게 그렇게 맛있어요. 할머니 집에 갔는데 할머니가 물 양을 잘 못 맞추셔서 한강으로 만든 라면도 그런 맥락에서 되게 애정해요.
맞아요 언니. 가족이라는 이름의 집은 항상 젊은 우리의 그림자가 되어서 어딘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게 붙드는 못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애증 그 자체예요. 당장 제가 어디 떠날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야망을 심장 뒤쪽에 품고 있어서 그런 걸까요?
요새 쓸게 없군요. 그래도 쓸게 없는 것도 쓰고 있으니 결국에 우리는 쓸만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나 봐요. 글재주 좋은 사람은 이렇다니까요 쓸게 없는 일상에서도 결국에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소소한 일상도 포근하게 써내 보이곤 하잖아요. 채에 거르면 우수수 걸러지는 작은 순간들은 결국 손으로 잡아내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공중에 흩날리거나 밑으로 떨어져요. 저는 그것들을 모아서 노래로 써야 하는데 언니는 지금처럼 손 끝에서 뱉어내 주세요! 당신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낱말들은 얼마나 럭키합니까.
저는 연희동에서 책바를 운영하시는 정인성 작가님의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를 읽고 있습니다. 일종의 사업 도전기인데, 브랜드 마케팅 분석도 있고 자서전 같은 느낌도 있는 꽤 흥미로운 책이어서 서울 가는 지하철에서 읽을 때면 그토록 멀었던 홍대를 순식간에 지나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술과 책을 함께 판다는 다소 기이한 컨텐츠를 생각해내고서 그 사업안을 정인성 본인답게 풀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호를 깊게 파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미치고, 그 후에 자신이 즐겨 찾는 장소를 떠올리며 자주 찾게 되는 요소를 찾아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예를 들어 콘센트가 바로 닿는 곳에 구비되어있는 카페라던가 적당히 무관심하면서 동시에 늘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세심함을 가진 주인이 운영하는 술집이라던지, 적당한 조도와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 선의 잔잔한 배경음악이 흐르는 카페, 전체적인 분위기가 공간마다의 격차가 거의 없는 한결같은 무드의 공간이 그 예였어요. '그저 자주 발길이 닿아서'가 아니라,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자주 가는 공간에는 사소하지만 유용하고 편안한 요소들이 자꾸만 나를 끌어당기게 하는 것이죠. 저에게도 그렇게 자꾸만 가게 되는 공간이나 사람이나 물건이 있는데, 그렇다면 내 노래는 어떻게 하면 자주 듣고 싶은 노래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전에 내가 자주 듣는 가수가 있는지 떠올렸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짙은은 고등학교 때부터 어느 때나 저와 함께 있었어요. 우울해 죽을 것 같을 때에는 [고래]나 [MOON]을 들었고, 이별의 아픔에 허덕일 때에는 [잘지내자 우리]를 들었는데, 그 노래는 지저분했던 과거의 그와의 추억까지 예쁘게 미화시키기에는 저 노래만한 게 없었죠. 모험을 떠나는 설렘을 느낄 때에는 [안개]를 들었고,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그 온화함에 포근해질 때에는 [TV Show], [Feel alright](드라마 트리플 ost버전으로)를, 아침 햇살을 맞을 때엔 [sunshine}, 마지막으로 아무 생각 없이 좋은 노래를 듣고 싶을 때에는 [백야]를 듣곤 했어요. 짙은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음악이었어요. 지금이야 제가 처음 짙은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가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그때에는 없었던 장르들이 새로 만들어져서 나오는 지경까지 되었으니, 하루 음악 일과 중 짙은을 선택하는 경우의 수는 현저하게 적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길을 잃었을 때는 짙은을 귓속으로 초대합니다. 언니는 그런 가수가 있나요?
정인성 작가에게 책바가 그러하듯 저에게 있어서 사업은 제 음악 자체인데 저는 여전히 제 노래 중 어떤 요소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지 오리무중이라, 스스로 사업수완을 늘리는 데에는 소질이 없음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도 이번 연도가 그 시행착오를 끝내는 중요한 해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요즘 꽤 이를 갈고 있어요. 나 그대로를 담은 음악을 하겠노라 매일 다짐합니다.
윽 방금 책상 위에 있던 초콜릿 하나를 설레는 마음으로 까먹었는데, 페퍼민트 초콜릿이었어요. 세상에나 잘 있다가 갑자기 코로나 사태를 맞은 것처럼 충격적입니다.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에서 갑자기 민트 초코를 씹게 되어도 '그래 이게 인생이지'할 수 있는 의연함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요즘이네요. 그래도 오늘 이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글을 마칩니다. 우리 모두 비말 조심, 계량기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