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말을 잃어 갔다. 로빗과도 나와도 거리를 두고,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로빗과 함께 등교도 하지 않았고, 모든 것 도움을 거부했다. 사춘기가 온 아이들이 AI 내니에게 자신의 모든 속마음을 간파 당하는 게 싫어서 일부러 저러는 경우들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중학생이 되더니 사춘기가 와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사춘기가 와도 밥을 먹거나 공부는 로빗을 시킬만도 한데 아이는 모든 걸 거부했다. 우리가 여기에 없는 것처럼, 없었으면 하는 것처럼 굴었다. 로빗은 사춘기라서 그럴 거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말라고 했다. 혹시나 아빠가 보고 싶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는 하지만 나와 로빗은 아이가 그런 위험한 동네에 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우리집으로 오라고 하기도 싫었다. 아이도 스스로 아빠를 찾지 않은지 3년은 되었기에 아빠가 보고 싶어서 저렇게 행동하는 거라고는 크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더이상 얘기를 안 하는 건 아이 성장 발달에도, 내 우울증에도 도움이 안 될 거란 로빗의 얘기에 아이가 하교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시절의 내니 모습으로 변신해있던 로빗은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신경질 적으로 방문을 닫고 들어가자 자신의 전략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 같다. 나는 내가 얘기해보겠다고 말하고는 아이가 방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아이는 잠시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부엌에서 우유와 씨리얼을 꺼냈다. 슬쩍 얘기를 해볼까 싶어 아이가 앉은 아일랜드 식탁 옆에 다가섰다.
"엄마랑 얘기 좀 해. 요즘 왜 그래?"
자기 혼자 우유에 씨리얼을 말아 먹는 아이에게 말을 시키니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릇만 멍하니 쳐다본다. 씨리얼을 씹는 속도가 다소 늦어지는가 싶더니 꿀꺽 삼킨 후 다시 한 숟갈을 입에 집어 크게 떠 집어 넣는다.
"얘기 안 할 거야? 무슨 일 있어? 엄마가 알아야 뭐라도 도와주지. 왜 그래?“
아이는 천천히 씨리얼을 씹다가 비웃는 듯 살짝 볼을 씰룩이고는 다시 멍하니 씨리얼 그릇만 바라본다. 차라리 무슨 불평불만이라도 쏟아내면 좋겠는데 도무지 속을 알 수 없게 저러고 있다. 로빗도 최근에는 본인과 얘기 나눈 게 없어서 모르겠다. 로빗이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까.
답답한 마음에 좀 더 고급 AI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되도록 결제를 하면 좀 나아지려나 싶었다. 결제를 하고서는 로빗이 아이의 눈빛, 심박수, 수면시간 분석, 학교 생활 염탐 등을 하라고 1주 정도 명령한 이후에도 로빗은 아이가 왜 저러는지 모른다고 했다. 정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가뜩이나 AI 구독료가 비싸서 신경 쓰였는데 돈을 써도 나아지는 것이 없으니 화가 솟구쳤다. 구독 프로그램을 일부 환불 받고 나서 그나마 가라 앉았던 화가 입을 다물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니 다시 치밀어 올랐다.
"얘가 정말! 너, 혹시 아빠 오랫동안 못 봐서 그래? 아빠 보러 가고 싶어서 그런 거야?"
나의 말에 아이가 씨리얼을 씹던 턱을 갑자기 멈춘다. 눈을 두어번 꿈벅 거리더니 느린 눈을 돌려 그제서야 나를 쳐다본다.
"아빠?"
그제서야 내가 답을 맞추었구나 싶어 아이 가까이로 얼른 발을 옮겼다. 아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응. 아빠 보러 갔다올래?"
아이는 내가 잡은 본인의 팔을 내려 보더니 천천히 팔을 빼냈다.
"엄마는?"
"응? 엄마는 뭐?"
"엄마는 아빠 보러 안 가?"
아이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 사람을 전혀 보러갈 생각이 없었는데 아이가 저렇게 말을 하니 내가 같이 가야 한다고 해야 아이도 같이 가려나, 같이 가서 얘기를 나누면 애가 좀 좋아지지 않으려나, 그런데 그렇게 지저분하고 위험한 동네에 어떻게 다녀오지, 차라리 우리집으로 오라고 할까, 와서 좀 씻으면 깨끗해지지 않을까, 그럼 아이가 하교하기 전에 먼저 와서 좀 씻으라고 해야겠다 이런 생각들이 빠르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 마음이 바뀔까 싶어 얼른 대답을 했다.
"같이 보러가면 좋지."
"엄마는 아빠 보러, 가고 싶어?"
"응? 같이 가자니까. 엄마랑 같이 가.“
"아니. 엄마는 아빠 보고 싶냐고."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이혼한 부모 관계에서 엄마가 아빠를 보고 싶다고 해도 되는 건가? 당황한 마음에 멀리서 조용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로빗을 쳐다보니 로빗은 그냥 그렇다고 대답하라는 식으로 눈을 감으며 입을 앙다물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럼, 엄마도 아빠 보고 싶지. 우리 아들도 아빠가 보고 싶구나. 그래 그럼 언제 보러 갈까?"
아이는 고개를 다시 돌려 씨리얼 그릇을 쳐다보고는 숟가락을 애꿎은 씨리얼만 휘휘 저었다. 다 먹히지도 못하고 눅눅해져 버린 씨리얼을 몇 바퀴 휘휘 젓다가 아이는 갑자기 숟가락을 식탁에 세게 내려놓았다.
"날을 왜 잡아. 보고 싶으면 엄마 보고 싶을 때 보면 되지."
"그게 무슨 말이야? 니가 되는 날 보러 가야지."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빠가 필요 있어?"
"너 왜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쪽으로 아예 돌아섰다. 어느새 나 보다도 키가 커진 아이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빠가 무슨 필요가 있어. 로빗이 있는데."
"뭐?"
"아빠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불쌍한 아빠 핑계 대지마. 엄마한테 아빠야 뭐, 허, 만들어서 쓰면 되는 거 아냐?"
"너 그게 무슨 소리..."
"아, 그냥 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 딴소리해! 엄마가 로빗 아빠 닮게…“
아이는 하던 말을 멈추고는 나를 경멸하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이어 멀리 떨어진 로빗을 노려보더니 의자를 내팽개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몰랐다. 아이가 알고 있을 줄은. 로빗은 먼 발치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놀라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로빗이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소파로 자리를 옮기자 따라오며 말했다.
“아이는 제가 잘 얘기해보겠습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고 외로웠는지 설명하고, 미술치료랑 연극치료를 병행하면…“
이런 가증스러운 AI를 보았나.
“됐고. 연애 프로그램은 지금부로 취소해줘. 그리고 돈 더 내도 좋으니까 로빗 프로그램 관련해서 나에게 뭐 이런 거 저런 거 구독하라는 광고 다 없애줘. 그냥 넌 내니랑 비서 역할만 할 거야. 아니다 변호사 프로그램까지만. 그리고 본사 쪽에 구독 프로그램 때문에 생긴 가정 불화로 민사 소송 걸 거니까 연락해두고. 안 들킨다더니 개뿔. 위자료랑 나랑 아이 정신 상담이랑 치료까지 모두 청구해. 변호사 프로그램 제일 성능 좋은 걸로 해. 니네 본사라고 봐주기만 해봐. 바로 너도 프로그램도 다른 회사로 다 바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