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빗 [12]

by WLS

안전, 순응, 정확, 신속, 만족. 이 다섯 가지가 로빗을 만들 때 가장 우선적으로 내세웠던 가치이다. 어렸을 때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는 것을 목격한 순간부터 AI가 로봇이라는 몸체를 지닌 채 인간 세상의 조력자를 거쳐 이젠 지배자나 다름 없는 이 세상이 올 때까지 나는 이 다섯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AI는 인간의 조수로 쓰이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들이 AI 없이는 문자 한 통, 요리 하나, 숙제 한 장 끝마치지 못 하는 나약한 존재들이 되어있었다. 나는 이 흐름이 심해질 뿐, 다시 인간이 자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행동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생각치는 않았기 때문에 로봇을 연구하고,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인간은 한 번 편리함을 경험하면 다시는 그것이 없던 삶에서 행복을 찾지 못 한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상용화되기 전에 처음 만났었다. 우리의 연애는 서로 문자를 주고 받고, 전화를 하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으로 사랑을 키워나갔었다. 지금의 세대는 알 수 없겠지만 그 사람이 문자를 확인하기를 기다리고, 답장을 받고, 전화기 너머로 따뜻한 목소리를 듣고, 영상통화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세상이 너무 편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주고 받는 문자에서 답에 늦거나, 글자로만 전해져 의미가 다르게 소통되어 갈등이 쌓일 때도 있었지만 해결해 나가면서 더욱 쌓이는 이해와 사랑도 있었다. 지금이야 다들 직접적인 소통을 해야 하는 전화를 꺼려서 거의 하지 않고, 문자를 주고 받을 땐 인공지능이 싸울 일 없이 알아서 문자를 생성해주고, 해석해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말이 어눌하고 짧아진 대신, 인공지능은 더욱 유려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어눌한 인간끼리 모여서도 서로 세상에 다시는 없을 사랑의 말들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아니 내가 만든 로봇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와 아내가 결혼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생성형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다. 처음에는 연구원, 개발자, 교수 등 전문 분야의 사람들이 활용해왔다면 월에 얼마 되지 않는 금액으로 상당한 효율을 보인다는 것이 점차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 용도에서 비서나 조수의 역할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담사, 친구, 부모, 연인, 배우자, 심지어 자녀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역할을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부여하고, 의존해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정서적인 측면부터 인공지능 없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워졌고, 점차 이전 세대와 확연히 구분될만큼 사고력, 비판력, 수리능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등 인지적인 측면들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나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내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사람이기에 과의존하지 않도록 주의를 계속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세태를 거스르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업무와 집안일 측면에서 조금씩 도움 받는 것이 전부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갈등이 생길 때면 인공지능과 대화를 통해 위로 받기 시작했다. 위로 정도는 괜찮았다. 점차 인공지능이 아내의 편을 들고, 내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부각시키면서 아내는 나를 미워하고, 하찮아하기 시작했다. 나는 연애할 때와 그대로였는데, 아내가 보는 나는 공감도 제대로 못 하고, 집안일도 완벽하게 할 줄 모르며, 갈등을 화해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억울한 마음에 아내와 대화를 시도하면, 나는 인공지능과 대화하는지 아내와 대화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공지능이 내뱉은 말만 되풀이하는 아내와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서늘하고, 무섭고, 끔찍했다.

어느날 아내는 나에게 너무나 가식적인 말로 자신이 얼마나 나를 사랑했고, 내가 얼마나 자신에게 좋은 짝이었는지, 고마운 존재인지 이야기 한 후 헤어지자고 말했다. 아내가 말하던 표정, 말투, 대사, 그리고 어색했던 제스쳐까지도 너무 교과서적이고, 매끄러워서 나는 아내가 아닌 인공지능이 나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진지하고 정중했지만 딱 하나, 아내의 눈동자만은 초점을 잃은 채 건조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 때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이제 인공지능의 살아있는 숙주가 되었을 뿐, 내가 사랑하던 그 사람이, 살아 숨쉬고, 생각하고, 움직이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헤어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일에 더욱 몰두했다. 사람과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로빗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말끔한 세상에서, 일부러 오점을 만들고자 이름도 Robot이 아닌 Robit으로 지어서 말이다. 아직도 일부의 사람들은 인간이 오롯이 생각하고 행동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에 이 이름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아직 있음에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나의 역작인 이 로빗을 더 많이 써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가 이렇게 성공한 나를 보면서 아쉬워하도록. 아니, 적어도 내가 만든 로빗이 아내가 의존하던 그 거지 같은 인공지능보다 훨씬 낫다는 걸 보며 배아파하도록 말이다.

나는 로빗이 사용자들을 해치지 않도록 안전하고, 그들의 말에 순응하며, 명령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사용자가 만족하는 수준으로 퍼포먼스를 내도록 만들었다. 꽤나 많은 공을 들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가격은 적정히 측정하여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 워낙 거대 기업 몇 곳이 다른 회사들을 인수합병하면서 나와 같은 소규모 회사들은 점유율을 높이는 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지만 사용자들은 나름 만족을 하였고, 조금씩 더 알려나갔다.

이렇게 로빗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져 삶의 행복도가 높아질 때쯤, 불청객이 찾아왔다. 전세계 1위 기업인 ChatGear에서 인수합병을 제안하며 찾아온 것이다. 가격은 8,000억 원 정도. 현재 그 기업의 몸값이 21경 원 정도 된다고 하니 그 기업 입장에서는 큰 금액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 정도 가격이면 로빗의 장래를 보았을 때 충분히 창출할 수 있는 금액이라 생각했고, 내가 애써 만든 로빗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기기도 싫었다. 그 회사로 넘어가면 로빗은 그 회사의 다른 모델들의 재료가 될 뿐, 곧장 단종되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로봇은 이제 세상에서 멸종하는 것이다.

난색을 표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복수였다. 우리 회사는 주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쪽이었고, 피지컬 로봇은 외주 업체에서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ChatGear는 우리 회사에 납품하는 피지컬 로봇 회사의 가장 큰 고객이었기 때문에 로봇 단가를 300% 이상 상승시키는 것으로 우리를 조여왔다. 아직 시장 점유율이 낮은 상태에서 그 가격을 그대로 받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한다면 시장 점유율이 무너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내 회사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가격은 조금 올리는 대신 우리 회사 소프트웨어를 더 많이 구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로빗이 하는 모든 작업을 부분으로 쪼개어 한 작업마다 가격을 매겼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게 사용자는 모르게 무료 기능으로 선보였다. 청소 구역 확장, 요리 능력 다층화, 자녀 훈육 방식 다양화, 학습 지도 전문화, 의료 및 건강관리 체계화, 그리고 연애 기능 고도화까지. 무료로 이 기능을 선보이고, 로빗의 대화 속에서 은연 중에 이 기능을 쓰고 싶게 하도록 말하게 하는 광고도 프로그래밍하여 업데이트 해두었다.

사용자들은 기존에 없던 기능이 업그레이드 된 줄 알고 사용하다가 해당 기능이 사라지면 불편함을 느끼고는 곧장 결제를 하기 시작했다. 편리함이라는 그 강력한 속박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을 더 편하게 해주는 것일 뿐, 나와 아내처럼 사이를 틀어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이가 틀어진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의 선택일 뿐 로빗의 탓은 아니니까.

작가의 이전글로빗[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