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좋아 3
책을 읽는 건 가장 조용한 대화다
조용한 대화가 좋아서 자주 책을 읽었다. 사람들과의 이야기처럼 나에게 독서는 깊은 대화, 재밌는 대화였다. 독서율이 저조한 사회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조금 재미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지적허영심이 있는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기도 하다. 부정적인 측면 말고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독서가 대화라고 하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초리를 벗어나기란 어렵다. 그런 눈초리가 아니라면 '너니깐, 그런 이야기하는 거지'라는 말을 듣곤 한다.
<대화가 좋아>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어떤 대화를 하면서 살아왔는지 돌아보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또 하나 떠올랐던 건 사람이 아닌 다른 명사들이었다. 책, 음악, 자연과의 대화와 호흡이었다. 대화가 꼭 사람과의 소리를 내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 말고도 포함된다고 본다. 그중에서 내가 사람과 대화 다음으로 가장 많이 하는 건 언제나 독서였다.
독서를 하다 나의 마음에 딱 맞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그 감정은 격상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기쁘다면 그 표현을 책에 하고 싶다. 책이라는 매체를 정적이라고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내면의 깊은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창구이기도 하고 몇 시간이나 깊은 대화를 오가는 친구이기도 하다.
대충 보니까 대충 생각할 수밖에
나는 산만하고 너는 바쁜 세상이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중에서
책 중 이 문장을 읽고는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어려운 단어도 하나 없는 이 문장이 좋았던 건 시대에 대한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쉽게 읽히지만 어렵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문장들은 내 마음을 울린다. 다음 문장이 기다려지는 그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과도 같다.
작가의 프레임으로 인생을 바라보면 삶의 매 순간이 문장이다.
문장이 살아 있어야 삶에 생명력이 있다.
글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이지, 부사가 아니다.
<프레임> 중에서
"삶의 매 순간이 문장이다"라는 문구를 읽으면서도 비슷했던 것 같다.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해서 몇 십 명의 사람을 붙잡고 대화를 해도 이런 문장 하나 건지기 힘들다면 무슨 소용일까. 책이 사람과의 대화보다 낫다는 말을 전하고픈 게 아니다. 지나칠 수 있는 책 속 구절 하나에도 '깊이'를 던지면 그대로 가지고 올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책은 성장의 도구에 불구했다. 친구이자 연인이었다는 말처럼 애틋하지 못했다. 성장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치를 망각하며 지내왔다. 대화를 걸어오는 책의 외침을 무시하고 질주하듯이 새로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책에 체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 해씩 여러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책과의 대화 속 성장'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급등한 성장을 볼 수 없었지만 대나무처럼 오랜 시간을 걸쳐 성장한 걸 볼 수 있었다. 매일 여러 사람과의 대화만큼 책과의 대화를 사랑하게 되니 그 시간을 고대하였다.
이 글도 책을 읽다가 떠올라 쓴 글이니,
나는 오늘도, 책과 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