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노부부의 느린 일상 함께 하기

by 팥님


경축!

팥님, 드디어 퇴원합니다.


3박 4일 동안 헤롱헤롱했던 병원 생활이 끝이다!

약을 이렇게 많이 탄 적은 처음이었다.

약봉지를 한 움큼 집어 들고 퇴원했다.


매일 아침 먹는 신지로이드 약.

부갑상선 회복을 위한 칼슘약.


어쨌든 이제 정말 현실로!

아니 집으로 간다.

퇴원하는 날


하지만, 오해는 금물!!

퇴원이 완치의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병원을 나서면서

엄마가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왔다.


"혼자 사는데 먹는 게 시원찮을 게 뻔하잖아..

내려와~"


그렇게 나는 목에 스카프를 동여 메고

다시 마치 요양 병원을 가듯

부모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내 집은 따로 있지만..

고향 집이 시골이라 그런지

올 때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평온한 걸까?

옛날엔 고향이 답답하고 서울이 좋았는데..

30대가 되면서 사람이 없으면 땡큐고,

적당히 있는 지역이 점점 좋아진다.


엄마에게 흉터 공개 거절 당한 날


집에 도착하니 우리 집 루틴이 나를 반겼다.

아침은 고구마, 감자, 계란을 항상 쪄먹는 우리 집.

쟁반에 구황작물이 고루 담겨 있다.

항상 그랬듯 생선 냄새도 슬며시 배어있다.


엄마는 밥 차리는 임무를 받은 사람 마냥

삼시세끼 내 밥을 차렸다.

나의 폭식도 꾸준히 이어졌다.


엄마가 손수 만든 제철 반찬, 심심한 된장국 등

제철 과일 등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아 엄마표 떡볶이도!..


평일에도 부모님 집에 오래도록 있어본 건

사실 언제인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 아빠의 나이는 70대신데

내가 늦둥이기 때문에

또래 부모님 나이보다는 많은 편이다.

그리고 아직 두 분 다 일을 하신다.


몇 년 전, 아빠도 대장암이었다.

그때 아빠는 한참 항암을 맞으시러 통원치료를 했었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는 그 이후 열심히 관리했다.

지금의 아빠는 매일 토마토를 먹고

항상 깻잎과 상추를 싸 먹는다.

열심히 관리하신 덕분에

깨끗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인지 아빠는 장 보러 가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먹고 자고 쉬고 있으면 아빠가 말을 걸었다.

"팥, 아빠랑 장 보러 갈래?"

"그래~"


아빠는 마트에서 꼼꼼하게 채소를 본다.

가격비교도 하고, 깻잎과 상추는 꼭 샀다. 마치 주부처럼..

"깻잎은 꼭 뒤를 확인해 봐, 퍼렇게 되어야 좋은 거야"

"아~ 그래?"

아빠와 이것저것 담아 장을 보고 집에 왔다.

밥을 먹을 때마다 아빠가 깨끗하게 씻어 온 깻잎과 상추들을 먹었다.

고추와 함께 된장을 푹 찍어서.

아빠가 신중하게 깻잎을 고르신다


엄마는 일이 끝나면 밤마다

아파트 헬스장으로 운동을 하러 가신다.

내가 온 뒤로 새로운 운동 메이트가 생기셨다.

"팥, 오늘도 운동하러 가자"

난 실내에 있는 게 답답하기도 하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이라서 걷기 운동을 택했다.

엄마가 운동 끝날 때까지 운동장 몇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저녁마다 집으로 같이 돌아왔다.


또,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인

커피 마시는 시간도 함께 했다.

소금빵이 맛있는 카페를 가기도 하고,

동네에 라테가 맛있다는 커피집도 엄마가 소개했다.

엄마와 출근길에 함께 한 날 (커피를 마셨다)

회사도 안 가고 평일에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부모님과 함께하니 행복했다.

일도 안 하고 계속 부모님 곁에 있다면 문제겠지만

'직장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할 때마다

휴식을 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 날, 아빠와 집 근처 산에 올랐다.

아빠와 평일에 산을 걷는 것이 얼마만이지?

아빠와 나, 둘 다 건강하지 않으면 이런 시간도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팥, 여기서 맨발 걷기를 하면 참 좋아"

"여기서 양말을 벗어?"


그렇게 아빠와 맨발로 걸었다.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아빠는 잘 걸어?"


아빠는 고른 바닥이 아닌 곳도

터벅터벅 잘도 걸어 다녔다.

아빠는 산에 갈 때 헬로키티가방을 좋아하신다


혼잡한 머릿속도 걱정도

모두 날려버리는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졌다.

암환자였던 우리 아빠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나도 집에 가면 혼자서라도

맨발 걷기를 해야지 생각했다.


부모님 집 근처 운동장에서 무료해서 걷고 있었는데

아빠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지금 집에 가고 있는데 커피 마실래?"

"커피? 지금 나 운동하고 있어서~"

전화를 끊고 보니, 아빠차가 공원 앞 커피숍에 주차되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커피숍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두 개의 커피숍이 있었는데

하나는 저렴한 커피숍, 하나는 젊은이들이 갈 것 같은 커피숍.


젊은이가 갈 것 같은 커피숍에서 아빠가 나왔다.

나는 아빠가 그곳에서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한 게 재미있었다.


난 당연히 저렴한 옆 집 커피숍으로 갔을 줄 알았는데..

아빠의 취향을 몰라보았다.

아빠가 나를 발견하고 허허허 웃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원 벤치에 앉게 되었다.

아빠랑 공원에서 나눠 먹는 커피 한 잔.

우연히 만나서 공원에 같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시간이 특별했다.


직장도 다니고 내 생활이 중요해지면서

기차를 두 시간 타고 집에 내려올 에너지가 없었다.

내려가도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고

잔소리도 듣기 싫은 날이 있었다.

가족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시간도 보내고

그러려고 열심히 일하는 건데 왜 그랬을까.

부모님과의 시간이 후순위로 밀려난 것 같은

미안함도 들었다.


집에 가도 항상 주말만 있다 오다 보니

밥만 먹고 오기도 부족한 시간.

왜 이렇게 바빴을까.

휴직을 하고 나서야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건강을 챙기며

열심히 살아내시는 엄마 아빠의 일상 속에

내가 함께 했다.

모든 게 건강해야만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두 사람.

부모님이 두 분 다 살아계셔서 감사하다.

그리고 건강하게 있어줘서.

또 한 번의 다짐을 하게 된다.



보란 듯이

잘 회복하겠습니다.




엄마가 처음 집에 들어올 때

내 얼굴색이 회색빛이였다 했다.

엄마는 엄마 밥을 먹고 혈색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정돈 아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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