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모임에 딸이 따라가 봤습니다

by 팥님



여기는 평온한 충남시.

멀쩡한 집 놔두고 부모님 집에서

팔자 좋게 쉬는 중이다.


아빠가 갑자기 제안을 해 왔다.

“내일 아빠 모임 가는데 지리산에 갈 거야. 같이 갈래?”

“엥? 그게 뭐야?”


“청학동을 당일치기로 짧게 가는 거야”

아빠는 한자 모임을 하고 있다.


옛날부터 한자책도 많았고 관심이 많았던 건 알았지만

이런 모임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빠 말로는 나이 드신 분들만

가는 자리라 따라가도 괜찮다는데..

아마 딸내미를 데려온 사람은

아빠가 처음 일 것이다.

엄마도 하필 그날 다른 모임이 있었기에

내가 대신 가게 된 셈이다.

아빠와 짝꿍이 되어

"재밌겠다!"

그렇게 나는 제안에 호기롭게 응하고

아빠는 총무님에게 딸내미를 데려간다며

허락을 맡았다.


어린 시절, 매년 여름마다

엄마 아빠 모임에 자주 따라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이차이가 나는 언니들은 다 커서

시시하다며 같이 따라가지도 않았지만

나는 유일하게 순수하게 따라가서

계곡물에서 혼자 놀던 기억.

우리 엄마 아빠 나이 또래엔 다 아이들이 커서

나랑 같이 놀만한 아이들은 없었다..(ㅠㅠ)

그 후로 아빠의 일정을 따라가 본 경험은

거의 전무했는데 이렇게 다 큰 성인이 되어

따라가다니..

‘재밌겠다!‘


드디어 답사 가는 날,

아빠랑 나는 집결지인 도서관 앞에 내렸다.

막상 도착하니 아빠랑 나는 서로 웃음이 나왔다.

지긋하게 나이 드신 한 아저씨가

나를 반겨주셨다.

"오~ 딸내미구나~"


총무님은 마이크를 드시고

오늘의 일정을 간단히 말씀하셨다.

"아아.. 예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일렬로 앉은 분들에게 간식을 하나씩 나눠주셨다.

버스에 올라서니

한편에 커피존이 있다.

바로 믹스커피존.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커피존


나름 이 모임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다.

평소엔 한자 선생님의 수업으로 공부를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함께 현장 답사를 가신다고 한다.


총무님과 반장님이 있어서

어디를 갈지 어떤 것을 먹을지

모두 준비를 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이번엔 청학동 지리산을 계획하셨다.


버스에 오를 땐

왠지 시선집중이 된 것 같아

부끄러운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딸내미를 데려온겨?"

"예쁜 딸내미를 데려왔네~"


나는 조용히 인사하며

아빠 자리 옆에 나란히 앉았다.


큰 글씨로 써져 있는 한 장의 프로그램 일정표와

간식 꾸러미를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왜냐하면 나도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준비를 많이 해봤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에게

내가 이런 걸 받는다는 게

조금 무안했기도 하고

괜스레 기분이 좋기도 했다.


총무님은 이 답사를 위해

혼자 현장 답사도 가보셨다고 했다.

이런 총무님을 다들

신뢰하고 고마워하는 분위기였다.


내 뒷자리에는 노부부가 탔다.

중간중간 큰소리로 투닥거리셨는데

그 소리는 의외로

버스 안의 분위기를 웃음꽃으로 만들었다.

"졸혼당혀~ 그러다 졸혼당혀~"

사람들은 두 분이 아직도 사랑하시니

사랑 싸움 하신다며 웃어넘기셨다.

지리산 산자락을 구경하느라 창문을

보다 보니 어느새 첫 번째 방문지 삼성궁에 도착했다.


삼성궁은 난생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버스에 내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과

돌탑이 즐비한 삼성궁을 걸었다.

꽤 경사가 있어서 등산하듯이 올라갔다.


아빠에게 듣기로

반장님은 91살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았다.

반장님은 잘 걸으셨고

전혀 91살처럼 보이지 않으셨다.

삼성궁 모습

아빠가 말했다.

"어디든 다니려면 건강해야 갈 수 있어."

"90세에 이렇게 다니실 수 있다는 건 반장님이 대단하신 거야."


정말 그랬다.

아빠도 70대 노인인데

산도 잘 타고 잘 걷는 걸 보니 내심 안심이 되었다.

무릎이 안 좋으셔서 중간에 멈추신 분들도

더러 계셨지만 맑은 산공기를 마시면서 모두 즐기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직 찍는 게 취미인 작가님이라 불리는 분도 계셨다.

전문가의 냄새가 나는 대포 카메라를 목에 거시고

사람들을 찍어주셨다.

나를 찍어주시겠다고 하셔서

아빠와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나는

"아빠 여기 서봐. 저기 서봐" 하면서

아빠를 모델 삼아 사진을 마구 찍어주었다.

함께 찍는 셀카도 잊지 않고.


그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같이 오신 분들이

"아유~딸내미가 잘 따라왔네." 하면서 지나가셨다.


그리고 다 함께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류와 비주류 식탁으로 나뉜다고 하셔서

잠시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아빠랑 떨어져 앉아있으니 내가 아빠를 많이 의지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mbti가 E라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누가 봐도 낯가림이 심한 사람처럼 조용히 밥만 먹었다.

왁자지껄 분위기도 아니었음에도

갑자기 현타가 와서 집이 생각났다.


그다음 일정은 최참판댁에 갔다.

이곳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기도 하다.

두번째 코스


언덕 위 고택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멋졌다.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은

각자 구경하다가 하나 둘 모여

자유롭게 감상평을 나누기도 하셨다.

"박경리 작가가 사실은 하동에 와 본 적이 없대요~"

"최참판댁이 이 쪽에서 보면서 일을 잘하고 있는지 한눈에 다 보였겠어요~"


마지막으로 화개장터를 끝으로

다시 버스에 올라 집을 향했다.

어리게 봐주셔서..



아빠는 커피존에서 따듯한 커피를 한잔

뽑아 들고 마시더니 피곤하셨는지 눈을 감았다.


잠든 아빠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나중엔 아빠처럼
좋아하는 걸 배우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아빠의 하루에 함께한 이 짧은 동행이
나에게는 오래 남을 긴 기억이 될 것 같다.


아빠의 세계, 7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분들이 함께 하는 이 모임이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갈수록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음에 또 함께 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엔 나도 믹스커피 한 잔 타서 아빠 옆에 앉아야겠다.


이젠 내 보금자리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에 갈 때

반장님께서 말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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