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꿈이 공무원이었습니다.” 면접 심사위원 앞에서 말했다.
나는 17년 전 11월 정장을 입고 공무원 시험 면접장에서 두근대는 가슴을 눌러대고 있었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도망가고 싶은 순간에 이 말을 읊조리며 살았다.
나에게는 17년 전 12월 공직에 첫 발을 들인 후 제발 꿈이었으면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꿈을 이루었지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는 희열, 사회적 평판이 후한 공무원 타이틀 획득, 4년간의 대학 공부가 헛되지 않은 취업 성공, 지루하고 막막했던 수험 기간에 대한 보상.
“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7개의 글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합격자 발표일 “... 합격하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이 문장은 아름다운 동화 마지막 페이지의 대미를 장식하는 “...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내 인생도 행복하게 마무리 지어졌다고 착각했다. 기쁨에 취해 합격이 종착점이 아니라 시련과 고난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단지 준비 운동을 열심히 한 후 출발선을 통과해 줄지어 서 있는 허들 중 가장 앞에 있던 허들을 한 개 넘은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12월 임명장을 받아 들고 6시 땡 퇴근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의기양양 출근했지만 내가 알던 꿈의 직장이 아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너무 컸다. 믿기지 않겠지만 단 10일 만에 나는 모멸감에 몸서리쳤고 자괴감에 생을 포기하고 싶었다.
사회복지는 『국민의 생활 향상과 사회 보장을 위한 사회 정책과 시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사전의 뜻만큼이나 내가 실제 현장에서 만난 사회복지 업무의 범위는 너무 다양했고 방대했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국민기초생활보장, 영유아 복지, 아동. 청소년,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한부모가족, 주거복지, 사회서비스이용권....... 단위업무 하나에 기본적으로 따라붙는 세부 업무 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주민과 접근성을 이유로 각 부처의 업무들을 깔때기에 쏟아붓듯이 동으로 부어댔고 달랑 직원 2명이 처리하기 과도한 업무량에 정신이 혼미했다. 일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려주는 교육시스템이 없었다. 사수의 입에 의존했다. 하지만 사수는 말도 못 걸만큼 바빠 나는 지침과 세부사항을 공부할 틈 없이 민원에 시달렸다. 계속 근무하고 있던 사람처럼 그들이 묻는 것은 다 알고 있어야 했다. 사회복지 전반 업무의 흐름을 파악하기도 전에 세세한 것들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아는 게 없다 보니 민원인에게 무시를 당했고 사수의 눈치를 보았다. 내가 업무를 지시해야 하는 보조 도우미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고 내 흉을 보는지 귀를 쫑긋한 채 긴장의 연속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미련하고 멍청했나 자괴감에 빠져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완으로 끝났지만 업무가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 사회복지공무원들의 소식이 보도되던 때였다.
나는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다른 곳 가서도 버텨내지 못할 거란 일념으로 모멸감을 참고 견디었다. 오기로 죽을 둥 살 둥 6개월이 지나 시보를 떼고 정식 9급 공무원이 되었다. 1년 9개월이 지나 구청으로 두 번째 발령이 났다. 구청의 과 업무는 이것저것 잡다하게 쏟아지는 깔때기 현상은 없지만 하나의 단위 업무를 전담하는 업무 방식이었다. 첫 발령에서 호된 신고식 탓에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호기롭던 자존감은 본인보다 뒤에 발령받은 직원의 의견은 불신하여 담당자를 앞에 세워두고 전임자에게 확인을 받는 일 처리 방식을 가진 팀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나의 부족한 깜냥 탓을 하며 바닥에 던져져 산산박살 났다. 비록 팀장보다 늦게 그 팀에 들어갔지만 '나도 조금만 기다려주면 잘할 수 있는 데.. ' 소심하게 속으로만 울분을 토했다.
입 밖으로 뱉지 못하고 속으로 삭인 소심한 반항은 썩은 피해의식이 되었다. 첫 발령지에서부터 누적되어 온 나를 만만히 봐~? 가 버전이 업그레이드되어 세상에는 내가 복수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로 나뉘었다.
가만히 있는 나를 사방에서 괴롭혔다. 시비를 걸고 욕을 하고 딴지를 걸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무서웠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해하려고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정신이 피폐해진 나는 사람 눈을 2초 이상 바라보고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되어 사람을 피했다. 정신질환을 얻은 채 세 번째 발령지로 전보가 났다.
여기까지가 임용 5년 동안의 일이다.
12년이 흐른 지금 나는 자칭 반 타칭 반 친절하고 성격 좋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소유한 17년 차 사회복지직 공무원이다.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을까?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을까? 단박에 모든 걸 깨달아 한순간에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직이 변하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하나씩 변화를 꾀했다. 햇수가 늘어날수록 내공이 쌓이고 맷집이 세진 비결이다.
첫 번째는 자신감 쌓기. “나는 신규니까. 이 업무 처음 들어봤는데. 처음 하는 것이라 아무것도 모르니 나의 업무지만 당신이 알려줘야 해요. 해결해 주세요.” 무지를 합리화하며 상대에게 나의 권한을 넘겼다. 일 앞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해지기 위해 지침을 항시 옆에 끼고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를 익혀 의존 습성을 버리고 자신감을 키웠다.
두 번째는 능동적. 긍정적으로 일하기.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부딪쳐보기로 했다. 시도해서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시도해 봤으니 경험이다는 마인드로 우선은 두드려보기로 했다. 안될 이유가 아니라 되는 이유를 찾아 접근했다. 긍정은 항상 부정을 이긴다는 자세로 힘들고 짜증 나는 상황에서 짜증 나 미치겠네 대신 재미있네로 관점을 비틀어 바꾸어 표현했다.
세 번째는 배려하는 마음. 나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백번 해도 민원인은 늘 처음이다. 나에게는 백 번, 천 번 넘는 비슷한 어려움의 사연이지만 그들에게는 세상 유일한 자신만의 사연이었다. 이 사실은 역지사지와 측은지심과 함께 “아 그러세요”라는 말로 시너지를 발휘하며 나를 친절하게 만들어줬다.
네 번째는 나를 바로 세우기. 복수극의 주인공이 되어 경직된 근무 환경, 악덕한 직원들 사이에서 일하는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세상을 탓하고 있었다. 나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을 요구하는 기울어진 잣대를 들고 혼자 만들어 낸 피해의식이란 걸 인지하고 남을 탓하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옆에 있는 사람, 인연의 소중함을 모른 채 하찮고, 함부로 대하면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힘든 하루다. 하루의 에너지는 연결되어 돌고 돈다. 좋은 기운이든 나쁜 기운이든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진귀한 깨달음들을 얻은 후 이제 나는 더 이상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되뇌지 않는다. 또한 시간이 흐르고 보니 17년 전의 "꿈이 공무원입니다."라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그 꿈은 하나의 직업이다. 가짜 꿈을 꾸었던 거다. 직업인 사회복지공무원을 통해 사회를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미약하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사는 것에 지친 누군가가 공공의 영역에서 내 손길이 닿아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빛을 발견할 수 있다면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 부여받은 사명과 소명의식의 무게를 감내하며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닌 나도 당신도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 이것이 진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