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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을 Mar 29. 2024

남겨진 아이

상실감

죽음의 시간은 리허설이 없다.

생을 다한 주인공의 인생 대본을 떠올리며 조연들은 대사와 표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한다.


상실의 시간은 연습할 수 없다.


관계의 친밀도는 시간과 공간, 행동의 공유량에 비례한다. 애도는 관계마다 개별적이다.


추모 앞면에는 떠난 이가, 뒷면에는 남겨진 이가 그려져 있다.


떠난 이에게 예를 갖춰 애도를 표하고, 남겨진 이의 슬픔과 두려움에 위로를 전한다.


나는 부고 소식을 접하면 뒷면을 먼저 본다. 뒷면에 그려진 이들의 남은 삶이 가련하지 않기를, 눈물겹지 않기를 기도한 후 이들의 누군가로 살았던 생을 위한 명복을 빈다.


​36년 전 추모의 뒷면에 새겨진 이후 나에게 생긴 후유증이다.


6살의 어느 날, 엄마라고 불렀을 사람이 사라졌다. 울지 않았다. 울어야 하는 건지 몰랐다.


10살 봄의 그날, 어찌 된 영문인지 밥을 며칠째 먹지 못하던 아빠가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무서워 울었다.


아빠가 쓰러진 그해 여름 초입, 굽은 등이 가슴 위로 솟아오를 만큼 천장을 보고 누워만 있던 할머니는 누운 채 그대로 관으로 옮겨졌다. 무감각해져 아무 느낌이 없었다.


세 번의 죽음이 왔다 간 후 나는 홀로 되었다. 남겨진 아이가 되었다.


죽음은 고인을 향한 슬픔의 눈물을 강요하지만 죽음의 뜻과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던 나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불리는 호칭에 따라 제각기 어울리는 역할을 해냈던 고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흘릴 눈물의 양을 계산할 수 없었다. 모성애를 품은 눈빛을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빠의 가슴 품은 열려 있지 않아 나에게 달려드는 위험을 피해 숨을 곳이 없어서 불안하고 두려웠던 날들만 튀어나와 있었다.


밤새 불을 켜 놓고 고인의 마지막을 지키는 어른들이 마치 나를 보호해 주는 호위무사들처럼 든든하여 생존을 향한 본능은 안도했고 상실감을 덮어버렸다.


눈물 한 방울 앞에 철저히 계산적이던 나는 애초에 부모라는 단어에 들어 있던 천륜의 의미를 배우지 못했기에 어떠한 변명도 설명도 사과도 없이 내 곁을 갑자기 떠나버린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서운하지 않았다. 원망하지 않았다.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 누구에게도 입 밖으로 꺼내어 부를 수 없게 되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있는 것이 나에게는 없어 억울한 적도 더러 있었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들이 나를 열렬히 사랑해 주었다면, 내가 그들을 지독히 사랑했다면 내가 세상에 내린 뿌리는 아마도 원망이었을 것이다.


끌려간 건지, 따라간 건지 모르지만 나는 빼앗겼다고 여기며 나의 생에서 너무 일찍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린 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내가 가는 곳마다 제일 앞줄을 차지했을 것이다.


감정은 나이의 숫자에 따라 늘어났다. 상실감의 자리에 죄책감을 끼워 넣었다.


아빠의 입에 밥 한 숟갈 넣어주지 못한 철이 없는 불효녀로, 죽음이 두려워 병간호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겁쟁이가 되어 나 때문에 아빠가 그리 허망하게 죽게 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할머니가 그날보다는 조금 더 내 곁에 머무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를 괴롭혔다. 어리바리했던 10살의 나를 자책했다.


기억 속에 머물던 얼굴은 지워진 지 오래다. 사진 속의 얼굴마저 닳아 희미해졌다.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는 나를 책망했다.


급히 덮어버린 상실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 발생하는 관계의 모든 것을 쉽게 덮었다. 보호막이 없던 나는 누구와 이야기해야 할지, 나의 말을 들어줄 여유와 이해가 있는 사람인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나를 나쁜 길로 끌고 갈 사람은 아닌지 따져봐야 할 게 많았다. 나의 처지가 약점이 되어 돌아올까 봐, 값싼 동정의 대가를 요구할까 봐 겁이 났다. 구김 없이 깨끗한 얼굴을 덮어 씌워 겁 많고 소심한 나를 숨겼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상실감은 서글픔을 동반했다. 처음 만난 세상이 산산조각 깨져버린 충격이 몸에 새겨져 나의 조그마한 손짓에도 균열이 생길까 두려워 나를 감추고 다가가지 않았다. 말라 비틀린 관계에 물을 주지 않고 숨을 불어넣지 않았다. 20살 성인이 되어 다가온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있는 척, 행복한 척, 사랑받는 척 연기하던 나의 이면을 보여줄 테니 당신이 나를 감당할 수 있을지 시험하고 통과하면 나의 곁에 머물게 해 주겠다. 그렇지 못하면 한시라도 빨리 떠나라.라는 체념의 마음으로 내가 수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애써 감춰왔던 쓸쓸함과 외로움을 꺼내놓았다. 그는 옹졸한 속내를 가진 나를 떠나지 않았다. 이후 긴긴 검증의 시간을 보내고 그를 지켜보던 불안한 눈빛은 내가 그를 다치게 할 것 같지 않고 그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신뢰감으로 바뀌었다. 오랜 기간 없었던 나의 보호자가 생겼고 작은 아이의 보호자가 되었다.


남겨진 아이는 온전한 가족의 모습을 갖춘 완전한 세상의 어른이 되었다.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들이 나를 지켜주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머무는 고마운 삶을 지켜낼 것이다.


​나의 부모였던 사람들처럼 훌쩍 떠나지 않을 것이다. 떠난 이들의 심정은 알 수 없다. 먼저 떠나게 되어서 미안했을까. 힘든 세상살이를 놓을 수 있어서 홀가분했을까. 인생 여정에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라 당황했을까. 추측과 짐작만 해볼 뿐이다.


​절대 아무 말 없이 무책임하게 죽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미처 못 한 채 떠난 건 아닐까.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주었을까 이런 일방적인 물음만 늘어놓은 채 아무 말도 없이 떠난 이를 놓아주지 못하는 질질 끄는 죽음은 싫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비겁하게 죽지 않을 것이다.


내 잘못인가.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남겨진 이가 자기 검열과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해 비탄에 빠져드는 죽음도 싫다.


​환히 웃으며 덕분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며 죽고 싶다. 죽는 순간 말하지 못할 것 같으면 미리, 자주 해놓을 것이다. 덕분에 인생이 재미있다고, 즐겁다고, 행복하다고. 감사하다고. 소중하다고. 외롭지 않다고. 무섭지 않다고….


퇴근 후 집의 현관문을 열고 아이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오래오래 으스러지게 안아주며 속삭일 것이다. 무수한 세월이 흘러 흐릿한 눈빛의 탁한 회색 눈동자끼리 마주 보는 마지막 날까지 자주자주 말해줄 것이다. 내가 볼 수 없는 남겨진 이의 삶이 그저 순탄하고 무탈하길 바라는 염원을 그의 생 전부에 가득가득 들어차도록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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