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생활
어느덧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체감하는 인생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10대에서 20대를 기다릴 때는 시간이 참 더디 갔던 것만 같은데 20대, 30대 그리고 40대로 넘어온 지금.. 요즘 나의 시간은 나의 인생 중 가장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다.
첫 1년은 모든 환경과 일상 그리고 계절도 새롭고 낯설게 느껴졌는데 꼬박 1년을 겪어내고 보니 생활도 안정되고 주변에 마음을 나누는 좋은 친구들과 새로운 일과들이 점점 자리 잡고 있다.
내 삶의 변화 중 제일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취미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예전엔 나의 취미가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 요가를 제외하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는데 요즘은 떠올릴 것들이 다양해졌다.
그중 하나가 요리다. 캐나다에 온 후 가장 큰 변화는 열심히 밥을 해 먹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민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나의 일상에 있어 아주 큰 변화다.
나는 원래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한국에서는 집 근처 식당이든 맛집이든 배달이든 언제든 먹을 수 있어 크게 느끼지 못하며 살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도시가 아닌 이곳에서 한국의 식재료는 아주 제한적이다. 그래도 몇 년 전에 비하면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먹던 음식들이 가끔씩 그립곤 하다.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재료, 비슷한 재료와 양념들을 조합해 요리해 먹는 것이 요즘 나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우리 동네에서는 어디서도 깻잎은 구할 수 없다. 가끔씩 떠오르는 깻잎의 알싸한 향이 그리워 작년 늦은 봄에 씨앗을 심고 적은 양이지만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3월 말경부터는 모종을 키워 옮겨심으면 여름 내내 실컷 따먹을 수 있게 아주 잘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시기도 조금 늦었고 우리 집에는 옮겨 심을 마당이 없기에 화분에 심었는데 감사하게도 반찬을 해 먹을 정도는 잘 자라 주었다. 한국에서는 손쉽게 반찬가게에서 늘 사 먹던 반찬이었는데 처음으로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 보았고 대 만족이었다.
어학과정을 들으며 만난 따뜻한 선생님 메리. 고등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맡아 3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하시다가 3년 전부터 컬리지 어학 프로그램 선생님으로 근무하셨다. 그분의 수업을 들으며 캐나다의 문화와 문학작품, 글쓰기에 더 흥미를 느끼게 해 준 고마운 분이다. 나는 어학과정이 끝나고, 메리는 은퇴를 하시고 이제는 좋은 친구가 되어 따뜻한 추억들을 함께 나누고 있다. 집안을 멋지게 꾸미고 맛있는 음식들을 손수 만드는 걸 즐기시는 솜씨 좋은 분. 메리가 직접 만든 잼을 선물로 받고 난생처음 맛본 수제 잼의 맛에 푹 빠졌다. 그래서 메리와 함께 잼을 만들어보고 집에 와서 복숭아, 블루베리, 딸기를 박스로 사 와서 복습을 했다. 지난여름은 특히 모든 과일의 수확량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았다. 욕심껏 큰 냄비로 듬뿍듬뿍 만들고 병에 가득 담았다. 실링을 완벽하게 하면 방부제 없이 1년 이상도 보관이 가능하다. 메리에게 완벽한 실링을 하는 법을 배우고 새로운 문화를 배웠다.
선생님은 내가 신이 나서 잼을 복습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이제는 빵을 구워보자며 오트밀 브레드 레시피를 가르쳐 주셨다. 쿠키 믹스도 귀찮아서 구워본 적이 거의 없던 내가 밀가루에 설탕, 버터, 오트밀을 계량해서 담백한 빵을 구웠다. 부드럽고 담백한 빵의 매력에 빠져 굽고 또 굽고.. 이제는 나의 냉동에 늘 저장되어 있는 빵이 되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잘 찾아보면 무료나 유료로 진행되는 워크숍이나 이벤트를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Wood carving class가 있다는 소식에 등록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박물관 앞 야외 한편에서 소박하게 진행했던 수업. 조각칼을 이용해서 무언가 만드는 건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간 수업이었는데 내 앞에 놓여있는 통나무 한 조각! 손도끼를 사용해 통나무를 직접 잘라 스케치를 하고 다양한 모양의 조각칼을 이용해 깎고 또 깎고.. 열심히 깎아서 거의 3시간 이상을 몰두해 나무 주걱을 완성했다!
그리고 어느 가을밤 찾아간 Painting Night!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 파는 동네에 인기 있는 Pub에서 열린 이벤트.
미술도구와 맥주가 한 잔 제공되어 마음에 드는 맥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넓은 홀에 빼곡하게 준비된 자리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사람들도 친구들과 삼삼 오오 함께 신청하고 맥주도 가볍게 한 잔씩 마시며 선생님이 코치해 주는 대로 그림도 그리고 시끌시끌 수다도 떨며 유쾌한 분위기였다. 여기 와서 신선했던 점 중에 하나가 Pub에서 친구들과 안주도 딱히 없이 맥주 한 잔씩을 시켜두고 보드게임을 하거나 포켓볼을 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한 구석에 보드게임이 쌓여 있는 모습이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친구들과 그림도 그리고 수다도 떨며,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는 서로서로의 그림을 둘러보며 각자의 개성이 드러난 작품을 둘러보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캐나다 사람들의 또 하나의 즐기는 문화를 느낀 순간이었다.
어느 주말 낮, 골목에 있는 작은 공방에서 무료로 진행되었던 염색 클래스. 다양한 색감의 꽃들과 풀들을 이용해 천을 염색하는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염색에 관련된 두꺼운 책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어 체험하며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이곳에 살며 크게 느껴지는 건..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기부문화다. 학교 행사도, 지역 단체도, 마트에서도 적은 금액이지만 언제든 큰 부담 없이 기부할 수 있는 구조다. 이와 같은 지역의 무료 워크숍도 이런 기부 문화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금전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사회적 가치를 나누고,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활동들이 돈은 직접 오가지 않지만 자신의 시간, 노력 그리고 지식을 나누며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Nelson Community Food Center라는 비영리 기관에서 "Cooking & Baking Skills"라는 8주간의 클래스가 또 무료로 열렸다. 가을에 있었던 이 클래스는 가을을 테마로 매주 목요일 저녁, 호박을 이용한 파이, 수프, 디저트 등등 매주 1가지씩 함께 요리를 했다. 이 수업 덕분에 더욱 요리에 흥미를 가지고 캐나다의 다양한 식재료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 요리하며 대화도 나누고, 함께 음식을 완성해 나누어 먹으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8주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음 과정은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대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메뉴들을 가르쳐주는 의미 있는 쿠킹 클래스를 진행한다고 들었다. 이 기관은 주로 저소득층, 취약 계층,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누고 지원해 주는 곳이다. 주로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많은 행사들을 운영하는데 몇 달 전부터 기회가 닿아 남편도 이곳에서 가끔 설거지 봉사를 시작해 참여하고 있다.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긍정적인 선순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 감사하다.
지난여름, 친구를 통해 만나게 된 셰프로 일하고 있는 캐네디언 친구가 한국 요리에도 관심이 많아 우리 집에 모여 쿠킹 클래스를 열었다. 메뉴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김밥, 베지테리언도 먹을 수 있는 잡채! 셰프인 친구라 센스 있게 포인트를 바로바로 캐치하며 거들어 주어 즐겁게 한 상을 차려내 함께 맛있게 먹었다. 친구는 레시피를 찾아보며 혼자서 양념치킨을 해 먹어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를 즐긴다고 한다.
첫 번째 쿠킹 모임을 시작으로 이제는 정기적인 모임이 결성되었다. 친구는 다양한 Cook book을 보며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서양식을 잘 모르고 해 본 적 없는 나는 그 친구에게 새로운 음식들을 배우고, 친구는 먹어보고 싶었던 한식을 생각해 두었다가 얘기하면 함께 만든다. 김치도 만들어 보고 같이 만두도 빚어보고.. 친구와는 생전 처음 반죽한 토르티야도 직접 구워보고.. 멕시칸 음식, 독일식 돈가스 슈니첼, 페이스트리 피자, 시금치 라자냐 등등 함께 배우고 나눈 음식의 추억이 풍성하다.
캐나다에서는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보다는 집으로 초대하고 각자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서 모이는 문화가 흔하다. 이런 기회들이 많아지며 한식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고민이 되던 차에 친구에게 다양한 요리를 배워 생활력이 늘어가는 나 자신을 보며 뿌듯해지곤 한다.
이렇게 여름과 가을이 가고 어느새 겨울이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온 마을이 크리크 마스 장식을 하며 분주했고 동네 교회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행사가 있었다. 기부금으로 입장료를 5불 정도 내고 참여해 리스 만들기를 함께 할 수 있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조금은 귀찮은 마음을 떨치며 갔던 나는 사람들의 열정에 깜짝 놀랐다. 교회 지하에 있는 꽤나 넓은 홀이 북적북적 이미 가득 차서 빈 책상을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홀 가득 퍼질 만큼 가득한 싱싱한 나무와 풀들의 향기였다. 홀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가져가도 비워지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의 갖가지 리스 재료들이 가득했다. 나중엔 5불만 낸 게 미안해질 정도로 좋은 재료들로 마음껏 가져다 쓸 수 있었고.. 할머니들은 한편에서 리스 장식으로 쓸 수 있는 예쁜 리본들을 색깔별로 계속 만들어 나누어 주셨다. 이렇게 난생처음 크리스마스 리스도 만들어보고 한동안 집에 걸어두고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 있었다. 매년 있다는 이 행사에 내년에도 꼭 가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친구가 임신 소식을 알렸다. 중국계 캐네디언과 결혼한 캐네디언 친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둘째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녀의 남편이 주최한 아시안 모임에서 만났고 만남을 거듭할수록 서로를 알아가며 따뜻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그녀가 첫째 때와 같이 집에서 수중분만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한국에서는 티브이에서나 볼 법한 출산방법이, 캐나다에서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정부 지원 신청이 가능하다. 출산 시 필요한 큰 튜브욕조 등 물품들도 지원이 된다니 신기했다. 출산 당일이 되면, 의료 전문가인 조산사와 출산 과정을 정서적, 물리적으로 돕는 전문 인력이 가정분만을 위해 집으로 파견된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흔한 출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고 정부 지원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캐나다는 산후 조리원이 한국처럼 흔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적인 생활을 한다고 한다. 대신 정부에서 간호사가 가정으로 방문해서 체크하거나 산후 지원 도우미 지원, 정신건강 상담, 균형 있는 식단 조언 등을 커뮤니티 기반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는 워낙 넓은지라 친구의 친정인 온타리오주에서 BC주까지 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출산할 친구의 도움 요청으로 우리는 함께 밀프렙을 만들어 주게 되었다. 친구가 선호하는 음식으로 우리가 맛있게 해서 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소분해 냉동에 가득 넣어 주었다. 일본, 인도, 한국인 친구와 함께 주먹밥, 불고기, 카레 등을 만들었고 함께 만들며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친구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보여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타국에서 각자 가족이 멀리 있는 허전한 마음을 서로 보듬어주는 기쁘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캐나다에 오고 나서 크게 느끼는 건 사람 간에 따뜻한 마음이다. 비록 언어는 달라도, 서로 거창한 것을 나누지 않아도 진심이 통하는 마음을 느끼며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간다. 늘 급하지 않아도 되고.. 여유를 가져도 되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한 이곳의 삶이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나며.. 서로 소중하게 느꼈던 친구들.. 가족들을 집에 초대해서 따뜻한 식사를 나누거나.. 마음을 가득 담은 카드와 작은 선물을 함께 주며 마음을 나눴다. 아직 이런 문화가 낯설고 서툴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을 정성껏 차려 대접하고.. 나는 친구의 집에서 캐나다의 문화들을 경험할 수 있는 즐거운 크리스마스였다. 처음에는 어떤 선물이 좋을까도 고민했지만 선물보다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카드를 서로 주고받으며 지난 한 해도 행복하게 살았구나 느낄 수 있는 뿌듯한 순간들이었다.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지난 한 해 나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다. 새롭게 경험해 본 것도 많고 뭐든 직접 부딪혀야 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도 생활력이 많이 올라간 나를 발견한다. 더불어 새롭게 발견한 소소한 즐거움들 덕분에 어느새 취미부자가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살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