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시간에 엄마들이 어린이집에서 각자의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그럼에도 우린 알 수 있다. 곧 다시 만나리라는 걸.
어디서?
바로 놀이터다.
정말 기상 악화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비가 거세게 오거나 지진이 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한 아이들은 하원 후에 꼭 놀이터를 거쳐간다.
우리 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분명 어린이집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놀이터에서 만나면 더 반갑나 보다.
언제 헤어졌냐는 듯이 또 까르르거리면서 숨바꼭질, 벌레 잡기, 열매 모으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는 다한다.
물론 재밌고 신나게 뛰어노는 게 아이들의 할 일이라 놀이터를 가는 게 문제가 된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문제는 놀이터 뒤에 일정이 있을 때다.
이때는 엄마가 머리를 잘 굴려야 한다.
무턱대고 노는 애한테 갑자기 다가가서
라고 말하는 순간 재앙이 시작된다.
우는 건 둘째고 모든 친구들과 엄마들의 이목을 받는다.
전략을 잘 짜야한다.
놀이터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에게 잘 설명해 준다.
"우리 오늘 할머니 뵈러 가야 해서 딱 30분만 놀다가 가야 해."
여기서 아이가 순순히 수긍을 하면 큰 탈은 없는데 벌써부터 '싫다' 소리가 나오면 빠르게 다음 작전으로 가야 한다.
"엄마도 네가 많이 놀면 좋겠는데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도 놀고 할머니댁 가서도 할머니, 할아버지랑도 또 신나게 노는 건 어떨까?"
그러면 아이가 잠시 멈칫한다. 할머니댁이라는 단어가 조금 매력적으로 들렸나 보다.
하지만 이 효과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친구 한 명만 와도?
바로 끝이다.
방금 전까지는 순순히 "알겠어요."라고 했던 아이도 갑자기 말을 바꾼다.
"싫어요. 조금만 더 놀래요."
여기서 엄마는 다시 고민한다.
'조금만'이 정확히 몇 분인지, 도대체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계산되는지 알 길이 없다.
예상컨데, 브레이크 걸지 않는 한 대략 무한대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결국 엄마들의 만국 공통 전략을 꺼낸다.
슬쩍 시계를 한 번 보고 마음속으로 대사를 정리하고 외친다.
하원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 중 하나다.
마치 놀이터의 평화를 깨는 '최종 보스'가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대체로 못 들은 척한다.
그럼 백 번이고 다시 말해줘야 한다.
그럼 여기서 정말 감사하게도 같이 나서주는 같은 반 엄마가 있다.
"ㅇㅇ도 간다니까 우리도 가자~"
여기저기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언젠가 자신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지금 나의 상황을 모두가 도와준다.
이렇게 육아 동지들의 성원에 힘입어 아직도 망설이는 아이에게 마지막 쐐기를 박는다.
그제야 아이는 슬금슬금 미끄럼틀에서 내려온다.
아쉽게 놀이터를 빠져나오며 마지막 발걸음에 미련 한 스푼을 얹는다.
그리고 뒤를 돌아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아이들의 체력이 다하거나 지구가 뒤집히지 않는 한,
내일도 우리는 또 이 놀이터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도 개근상이 없어지는 세상인데 놀이터에 개근상이 있다면 그건 분명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받아야할 거다.
아이가
를 외치는 그 무수한 순간들을 견뎌낸 진짜 개근자들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