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면 다들 한 번쯤 공감할 것이다. 내 옷은 안 사더라도 애 옷은 사야 한다는 그 묘한 법칙.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을 하다 보면 애 옷은 이미 장바구니에 한 움큼이다. 마지막에 가서 진짜 이 옷이 필요한지 몇 번이고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에는 내 옷을 안 사더라도 애 옷은 사게 된다.
그렇게 매장을 구경하다 보면 저기 한편에 굉장히 눈부시고 반짝거리는 옷들을 보게 되는데 특히 여아 옷은 정말 광채부터 다르다.
그도 그럴게 여기저기 붙어있는 반짝이들과 세탁 몇 번에 망가질 것 같은 망사까지 달려있다.
인기 만화와 영화의 주인공들이 가운데 떡하니 새겨져 있는데 마치 이걸 입으면 너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우리 애는 애니메이션을 보지는 않아서 그런 옷을 사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딱히 옷에 기호도 없는 것 같았다. 아침에 어린이집 가기 전에 내가 꺼내놓은 옷을 그냥 군말 없이 입었다.
분명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그날, 아이 입에서 처음으로 ‘싫어.’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확히 거부의 단어였다.
"엄마가 소파 위에 입을 옷 올려놨어요. 한 번 혼자 입어보세요."
"음.. 싫은데.."
순간 놀래서 나도 모르게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물어봤다.
"이거 싫어? 이거 예쁜 꽃무늬인데? 서우 저번에도 이거 예쁜 꽃이라고 좋아했잖아."
"싫어.. 다른 거 입을래."
그리고 난 직감했다. 이제 쉽지 않다는 걸.
너도 여자아이였고, 너만의 옷 스타일이 슬슬 생겨날 시기라는 걸.
그리고 엄마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걸.
그 후로 나는 아침마다 조마조마하다. 내가 생각해 놓은 완벽한 코디를 거절하고 다른 옷을 입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플랜 B를 준비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모든 조합의 옷을 골라낸 뒤,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고 고르는 식으로 옷을 입히기로 했다.
둘 중에 하나 골라서 입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옵션들로 말이다.
그러면 아이는 고민한다. 엄마의 완벽하게 짜인 플랜 속에서.
역시, 호랑이가 그려진 티셔츠를 고를 줄 알고 그게 어울리는 바지를 준비했지.
와, 이게 말로만 듣던 내 아이의 자아가 생겨나는 순간인 걸까. 그렇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눈앞이 아찔하다.
보통은 티셔츠만 고르길래 바지는 생각 안 했는데 바지마저 거부할 줄은 몰랐다.
예상 밖의 단호한 '싫어요.' 소리에 바지를 꽉 움켜쥐고 다시 옷장으로 향한다.
그래, 엄마가 호랑이 티셔츠에 어울리는 바지 또 찾아주지 뭐.
대신 제발 아침마다 작은 패션쇼는 열지 말자.
어린이집 지각만은 피하고 싶으니까.
*Pick (수량 ) (대상)을 이용해서 아이에게 '몇 개만 골라'라고 말해볼 수 있어요.
-> 이 과정에서 두 개 이상이 되면 물건은 '여러 개'가 되기 때문에 물건 뒤에 's'(스)를 붙여서 복수화 시켜줍니다.
** 더 나아가 'Take your pick' 으로 아이에게 '골라봐'라고 권유해 볼 수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