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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Mar 05. 2019

어느 날, 친구가 사라졌다

당신은 모든 사람과 잘 맞을 수 없다.

2014년에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있다.

김수현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극 중 전지현이 맡은 '천송이'라는 여주인공에 빠졌었다.

그녀가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한 대사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이번에 바닥을 치면서 기분 참 더러울 때가 많았는데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사람이 딱 걸러져. 진짜 내 편과 내 편을 가장한 척. 인생에서 가끔 큰 시련이 오는 거, 한 번씩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라는 하느님이 주신 큰 기회가 아닌가 싶다.


나는 그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라는 기회라는 걸 언제 느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청첩장을 보낼 때였다. 물론 결혼이 큰 시련이었다는 게 아니라 나에겐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는 기회라고 느껴졌다. 기혼자들과 결혼 준비 중인 예비부부들은 매우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꼭 시련이 왔을 때가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이 가장 행복할 때도 진짜와 가짜가 가려진다. 진심으로 당신의 행복을 축하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인생의 어느 한순간, 그때 인간관계가 정리된다. 그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특히 '친구'가 정리된다.

친구인 척 내 곁에 머물면서 나를 그들에게 이롭게만 대하고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들 말이다. 아마 당신도 여태껏 살아가면서 이미 그러한 순간을 겪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퇴근길, 누구에게 연락 하나 오지 않는 잠잠한 핸드폰을 바라보다 급격히 줄어든 친구의 수 떠올리며 당신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혹시나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고민에 빠져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길 바란다. 절대 친구의 수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결정하진 않기 때문이다.


명심하길 바란다.

당신은 모든 사람과 잘 맞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흔히 말하는 집순이다.

한 번 나갈 때 모든 일을 봐야 한다. 은행 일, 쇼핑, 약속 등. 엄청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누구를 만난다던가 밖으로 나가질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고 지내던 친구들마저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딱히 슬픈 건 아닌데 딱히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내가 히키코모리인가?'라고 생각도 해봤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내 성격이 모나고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던가 우울증이 있던 건 아니었다. 어디 가서 나도 '싹싹하다', '곰살궂다' 소리는 많이 들었다.

꼭 집순이, 집돌이가 사회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된다. 그것도 그들의 선택이다.

집 밖에서 받은 수많은 상처와 고난들을 집 안에서 치유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쉼이자 하나의 레저(leisure)이다.


예전엔 친구도 관리라고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선 친구 관리를 잘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손가락으로 카톡 채팅창을 한 번 쭉 훑으면 사이즈가 나온다. 만나자고 나오라고 하면 나올 친구, 아예 그런 말 조차 못 꺼낼 친구.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 옆에 붙어있는 그 흔한 동네 친구는 없어진 지 오래다. 직장과 결혼 등 저마다의 이유로 이미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고,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도 남아 있는 친구들이 몇 없다. 다들 제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어서, 먹고살기 바빠서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는 바뀌는 메신저 프로필 사진과 별 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그들을 멀리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자책도 해봤다. 내가 더 이상 그들을 찾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도 나를 더 이상 찾지 않은 거라고.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온 메시지 한 통.


-야 나 배고파.


자연스럽게 맞받아친다.


-나 홍대에 맛집 알아둠. 언제 시간 돼?


나에겐 제일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녀석인데 내 성향과 성격, 취미, 가족사 등 까지 나에 대해 웬만한 건 모두 다 아는 친구다. 일 년에 많이 만나야 3-4번 만나지만 서로 가장 나 다워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사이다.

한 번은 그 친구와 거의 반년을 넘게 안 만났었다. 둘 다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주고받는 메시지에선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그냥 그 친구도 나도 서로 바쁜 걸 알고 내가 집순인 걸 아는 거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해하는 것도 그 친구라는 걸 이미 나는 느끼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변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만나던 친구와 안 만나게 되는 것도 친구가 많이 없어진 것도 다 내가 친구 관리를 못해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멀어진 친구와 나의 사이는. 딱 서로 그만큼만 상대를 알아가려고 노력했던 거다.


친구와의 관계도 밀당을 하듯 연애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가고 끌려서 자꾸 보고 싶은 상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썸을 타듯 알아가다 결국 그 친구와 성격이나 마음이 맞지 않으면 굳이 안 보는 거다. 회사 동료나 상사처럼 형식을 갖추고 감정은 숨기며 입에 맞지도 않은 점심식사 메뉴를 억지로 먹어야 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서로 마음이 맞아 잘 지내고 챙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친구까지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건 그 자체가 고통이고 시간 낭비다. 자신의 체형에 딱 맞는 옷을 골라 입듯이 친구도 자신에게 맞게 골라 사귀어야 한다. 인생은 그렇게 마음에 맞는 사람만 만나고 살기에도 매우 짧다.

우리는 하나둘씩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상대를 위해 나 자신을 포장하는 데 지쳤을 뿐이다. 각자 나 다워졌으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친구와 당신이 변한 게 아니다. 그냥 다들 '나 다워'진 거뿐이다. 그렇게 당신과 상대가 각자 나 다워짐을 선택하고도 당신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은 정말 가면을 쓰지 않은 친구다. 그리고 당신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며 남은 인생을 함께 해도 좋은 사람들인 거다.


우선순위 선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친구를 관리하는 것으로 우리의 소수의 진정한 관계를 희생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가장 나 다워지는 순간을 공유하는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에 집중하자. 이런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지금 인간관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이다.

물론 관계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욕망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욕구와 실제 당신의 모습에 대한 괴리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싶다면 집 밖으로 나가 누구든 만나고 교제하라.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의 잣대와 주변의 인식과 말에 흔들려 억지로 무거운 발을 떼며 집 밖으로 나가려거든 멈추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명심하길 바란다.

당신은 모든 사람과 잘 맞을 수 없다는 것을.


유희열이 말했다. 연극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라고. 지금 남아있는 친구는 인생이란 연극을 함께 마무리할 사람이니 그 친구에게 잘하면 된다. 지금처럼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허물없이.


내 결혼식 부케를 받은 친구가 있다. 위에서 말한 그 고등학교 친구인데 그 녀석이 부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우리나라 미신으로 말하길 부케는 6개월 내에 결혼해야 하는 사람이 받아야 된다고 하더라.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당장 결혼할 계획이 전혀 없는 친구한테 부탁하는 건 좀 아닌가 싶었다. 그 친구가 그런 걸 신경 쓸 수도 있지 않은가. 내 욕심인가 싶어 내키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친구, 그런 미신보단 나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나 보다. 높이 던진 부케를 멋지게 받아냈으니.


당신도 그런 친구 한 명이면 된다. 부케든 뭐든 당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온몸으로 당신을 받아주는 친구.

그렇다면 당신도 이미 썩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으니 기뻐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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