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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Feb 19. 2019

핸드폰 흠집은 별 거 아닙니다

몸과 마음에 난 흠집이 더 급합니다.

가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상하게 일들이 너무 잘 풀려서 나중엔 꼭 뭐하나 엇나갈 것 같은 그런 기분. 왠지 폭풍 전야의 고요 같은 그런 날.

그 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놓칠 뻔한 버스도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류장에 마침 서있었고, 지하철도 바로 내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사려고 했던 화장품도 정말 재고가 딱 하나 남은 걸 샀고, 약속시간에도 늦지 않게 잘 도착했고 이제 무사히 집에 가는 것만 남았는데


아뿔싸.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그럼 그렇지. 이럴 줄 알았어. 일이 너무 잘 풀린다 했다.


나는 유난히 잘 덤벙거렸다. 일명 '마이너스 손'이라고 잘 들고 있던 것도 이상하게 손에서 놓치곤 했다.

그래. 그런 이유로 내가 핸드폰을 떨어뜨렸으면 덜 억울하겠는데 달리다가 주머니에서 빠진 건.. 어찌할 방법이 없다. 엎어져있는 핸드폰을 다시 줍는다.

핸드폰 액정을 볼까 말까를 망설이다 속으로 '제발'을 수십 번 외치며 마주한 현실은 쓰라리다.  


역시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까진 무릎보다 남은 약정 기간에 맘이 더 아프다.


차라리 핸드폰을 바꿀까 하다가도 남은 약정 기간을 생각하며 그냥 관두길 수차례. 그리고는 하루 종일 깨지고 금 간 액정과 핸드폰만 보며 마음 아파한다. 결국 새로 강화 필름을 사서 액정을 덮어버린다. 그리곤 결심한다. 다시는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물건에 별 욕심이 없는 나도 이상하게 핸드폰 액정에 흠집이 나면 참기가 좀 힘들었다. 화면에 금이 가서 잘 안 보이는 건 둘째고 자꾸 화면에 보이는 흠집 그 자체로 힘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내 몸 보다도 소중히 다뤘던 건데.. 내가 놓친 것도 아니고 주머니에서 빠져서 떨어져 흠집이 났으니. 차라리 내가 넘어졌으면 했다. 내 무릎에 난 상처는 약을 바르면 다시 새 살이라도 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금도 글을 쓰는 이 순간. 나는 아차 싶다. 핸드폰 흠집은 그렇게 안타까워하면서 몸과 마음에 난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


어쩌다 나도 모르게 든 멍을 보며 '어디 부딪혔나 보지' 하고 넘기는 게 다반사. 성인이 되고 나선 웬만한 상처에는 약도 안 바른다. 피가 나도 '침이 약이지 뭐'라고 생각하며  한 번 쓱 핥아버리고 만다. 나라에서 정기검진 받으라고 오는 우편을 보고도 '받아야지 받아야지' 하면서도 술과 야식의 유혹에 빠져 전날 9시까지 금식을 지키지 못해 미루고 또 미룬다. 그렇게 내 몸은 방치된다.


상대방에게 받은 상처 한 두 개쯤은 누구나 다 있는거지 뭐. 다들 나랑 똑같은 고민일 텐데 뭐. 남한테 말해서 뭐해.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지. 말한다고 해결되나. 참자. 딱 3번만 참자. 할 말 다하고 살면 어떻게 일 하고 어떻게 돈 벌어. 


그렇게 당신의 흠집난 마음도 이렇게 방치된다.


차라리 핸드폰은 a/s를 받거나 기기변경이라도 하지. 몸과 마음은 내가 아무리 억만장자라고 해도 돈 주고 바꿀 수도 없다. 먼 미래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잘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핸드폰 흠집은 당연한 거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며 만져대는데 그러다 좀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당신의 몸과 마음의 흠집은 당연한 게 아니다. 몸의 흠집은 신경 써서 낫는다고 해도 마음의 흠집은 그보다 훨씬 깊게 새겨져서 오래간다.

 

까짓 거 몸에 난 상처는 옷으로 가리면 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아예 남에게 보이지 않으니 무관심하다. 어디서 생채기는 자꾸 나는데 보여주자니 발가벗은 기분이고 그냥 내버려두자니 하염없이 곪는다. 곪은 내가 나는데도 값비싼 향수 냄새로 덮어버린다. 그러고는 또다시 핸드폰에 흠집 난 부분만 만지작거리며 가슴 아파한다.


핸드폰은 소모품이지만 당신은 소모품이 아니다. 핸드폰은 당신에 관한 대부분의 데이터를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핸드폰이 당신을 대변하진 않는다. 핸드폰은 복제품이지만 당신은 유일무이하다.


물건이건 사람이건 무언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좋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당신을 완전히 넘어서선 안된다. 당신이 있기에 그 무언가가 소중하고 가치 있으며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이 온전해야 비로소 그 삶은 계속되며 그 안에서 소중한 것들을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간을 내서 당신의 얼굴부터 몸 구석구석을 한 번 살펴보길 바란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마음이 아프고 공허하다면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치유하고 채워야 하는지 한 번 고민해보길 바란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상처가 있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모른척해 곪을 대로 곪은 상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치유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당신은 무엇을 먼저 돌보겠는가. 액정에 흠집은 났찌만 기능엔 문제없는 핸드폰과 몸과 마음에 흠집은 났지만 겉만 멀쩡한 당신. 서둘러라. 상처난 몸과 마음은 a/s도 당신 스스로 해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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