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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Mar 07. 2019

노년에 접어든 강아지 예의 있게 모시기

그들의 노년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다들 강아지 있는데 나만 없어.’라는 말이 한창 유행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강아지를 분양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걱정이 밀려온다면 괜한 오지랖일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은 알고나 그럴까.

그들이 과연 강아지의 노년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봤을까?




내가 초등학생 때 아빠가 놀라운 선물을 가져왔다. 그날 저녁, 문을 열어달라는 아빠의 말에 대꾸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나가보지도 않았다. 열쇠가 있는데 왜 안 따고 들어오는지 보고 있던 만화가 한창 악당과 싸우는 중이라 동생과 서로 네가 나가보라고 다투고 있었다.

결국 엄마가 문을 열어줬는데 화들짝 놀라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결국 아빠를 맞이하러 갔다. 현관문에 서있는 아빠가 보라고 가리키는 품에 안겨있는 물체를 보고 왠 인형이가 싶었는데 글쎄 이게 움직인다. 한창 로봇 강아지 장난감이 유행할 때라 그건가 싶어 무심코 잡았는데 갑자기 낑낑거리며 움직이는 생명체임을 확인하고 놀라서 다시 손을 떼 버렸다.

그 날 내가 만진 그 녀석의 따뜻한 온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빠가 곧잘 우리를 위해 사 왔던, 식을까 봐 품 안에 고이 들고 온 호빵보다 더 조그맣지만 더 따뜻하고 큰 행복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새로운 가족은 슈나우저라는 종이였는데 잘 생긴 외모와는 어울리지도 않게 아빠는 이미 '복돌이'라고 이름을 지어버렸다. 동물 병원에도 이미 ‘김복돌’이라고 등록을 하고 예방 접종을 맞혀왔다고 했다. 이름이 무슨 대수겠는가. 그렇게 갖고 싶던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되었으니 암놈인지 수놈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5명이 되었고 나의 학창 시절은 온통 그 녀석과 함께한 추억이 많았다. 어디든 우리 가족이 가는 곳엔 복돌이가 함께였고 사진첩의 절반은 그 녀석이 차지했다.


한 번 산책을 나가면 웬만해선 지치질 않았다. 먼저 뻗는 건 나와 동생.


“눈은 점점 실명이 될 거고요. 안압이 세져서 안구가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 약 꾸준히 넣어주셔야 해요.”


동물병원 의사는 야속할 만큼 감정이 없었다. 하도 수많은 아픈 강아지들을 봐서 그럴까. 너무 덤덤하게 말하는 의사가 괜스레 미워 나오면서 병원을 바꾸자고 떼를 썼다.

엄마도 화가 나 보였지만 말이 없었다. 그 동물병원이 그나마 동네에서 알아주는 곳이었고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복돌이와 우리의 시계는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복돌이는 뭐가 급했는지 우리 가족보다 좀 더 빠르게 나이를 먹었다. 천국에 대체 뭐가 있길래, 뭘 두고 왔길래 그렇게 빨리 가려고 하는지 야속할 따름이었다.


시작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평범했다. 밥 먹으라고 복돌이를 불렀는데 하염없이 기다려도 오지를 않았다. 찾아보니 내 방 벽 앞에 앉아 있길래 그냥 밥 먹기 싫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번쩍 들어서 데려오니 밥만 맛있게 잘 먹었다.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왼쪽 눈이 점점 하얘지기 시작한다. 눈이 눈처럼 하얘진다.


이리 쿵, 저리 쿵. 슬랩스틱이 이렇게 슬픈 거였나.

움직일 때마다 온갖 벽과 가구에 머리를 부딪히는 그 녀석을 보는 건 지옥이었다. 집 안의 모든 동선을 알고 있는 앤 데 속절없이 부딪히는 걸 보는 순간 참지 못하고 곧바로 안아서 개집에 넣어버렸다. 배변을 누고 눈이 보이지 않아 그대로 밟아 버리는 걸 보며 짜증도 많이 냈다. 집에서 함께 있다가 발견하면 바로 치우면 됐지만 외출이라도 하고 돌아온 날엔 집에서 나는 온갖 악취와 배변의 향연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배변패드에 잘 누면 좋은데 그렇지 않고 내 신발 안에 싸고서 그걸 그대로 밟은 날은 아침부터 일진이 꼬인다고 생각하며 복돌이를 탓했다. 얼마나 영리하게 배변패드에 잘 가리던 녀석인데. 지금은 왜 이럴까.

이기적인 내 맘은 복돌이가 아파도 배변도 잘 보고 그냥 가만히 움직이지 않길 바랬다.


그런 내 못된 마음을 알기라도 한 건지 이제 복돌이는 움직이지도 않는다. 하루 24시간 중 23시간을 누워만 있는다. 정말 잠만 자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억지로 밥을 먹이려 일으켜 세우거나 나가서 산책을 시킬 때 외에는 누워만 있는다.

몸에 생긴 검은 반점들은 복돌이가 슈나우저인지 달마시안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많이 생겼고, 그 반점의 개수만큼 복돌이는 늙어갔고 백내장은 더욱 심해져갔다.

그나마 좀 움직인다고 하면 복돌이는 이제 일직선으로 걷지 않고 하염없이 뱅뱅 제자리만 돈다. 늙어가는 나이만큼 백내장과 더불어 치매가 왔다. 올 것이 와버린 것이다. 이제는 몸에서 노인들에게서 난다는 냄새보다 더 심한 냄새가 씻겨도 씻겨도 없어지지 않는다. 정말 그 녀석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멀리 갔다는 걸 느꼈다.


힘 없이 엎드려서 눈만 뜨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일까.


꿈에서 복돌이가 해변가를 달린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복돌이를 부르고 있고 나는 복돌이와 함께 해변을 뛰어다닌다. 별 다른 건 하지 않고 오직 달리기만 한다. 그리고 꿈에서 깬다. 복돌이는 여전히 누워있고 난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복돌이의 생사를 확인한다. 다행히 아직 살아있다.


아빠는 안락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이 오히려 그 녀석을 힘들게 하는 거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나와 동생 그리고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감히 누가 누구를 죽일 수 있으며 그런 권한이 누구에게 있냐고 아빠에게 따진다. 그런 나에게 아빠는 말한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살고자 하는 의지는 누가 결정하는 거냐고. 할 말이 없지만 아직도 안락사는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는 비겁한 변명에 숨어서 그 녀석이 이대로 살아있기만 바란다.


집에 한 번도 뵙지 못한 외할아버지와 몇십 년 전에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계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예의 있게 모시려고 노력했다. 그게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있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살피려 했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쓰다듬고 안아 올리기, 밥이 어디 있는지 천천히 알려주며 먹여주기, 부딪히기 전에 재빨리 달려가 안아 올리기 등. 백내장과 더불어 온 치매는 노년에 접어든 강아지에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복돌이가 병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운 좋게 피해 간다 한들 누구나 육신은 점점 하나씩 하나씩 고장 나기 마련이니까.


얼마나 더 살 수 있냐는 물음에 의사는 말을 아낀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오래 산거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욕심을 버리기가 힘들다. 애완동물은 그런가 보다. 데려올 땐 맘대로 데려와놓고 보내줄 땐 맘대로 보내줄 수 없는, 사람의 이기심을 만드는 존재인가 보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면 결국 보내주는 연습을 하게 만드는 존재인가 보다.


개인적으로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사진이다.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 같은 모습 같다며.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강아지와 함께 보내는 17번째 봄이 온다. 결혼을 하고 나서 부모님 댁에 있는 그 녀석을 한 달에 한두 번 볼 때면 성큼 긴장감이 엄습한다. 어김없이 똑같은 자리에 누워 있는 그 녀석을 보며 코에 손을 갖다 대 숨은 쉬는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안아 올린다. 그리고 고마워한다.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내가 겪은 슬픔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 말을 다시 내려놓길 바란다. 그리고 겪어본 사람이라면 나의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라 조금이나마 빌어본다. 아직 산책을 나가면 그나마 활기차게 조금씩 앞을 향해 걷는 녀석을 보며 갖는 작은 희망은 우리 가족을 지금까지 웃게 하니깐.


우리는 결국 언젠간 헤어진다. 다만 우리는 함께 사랑하면서 알아간다. 그 녀석이 어떤 걸 좋아했고, 어떤 걸 무서워했고, 어떨 때 행복했었는지. 그리고 우리 가족도 그 녀석으로 인해 행복과 사랑 그리고 슬픔을 배우며 평생 알지 못했을 수도 있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느끼고 배워가며 알아간다.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함께 살아가면서 아직도 사랑하고 늘 알아가는 것. 

그것이 노년에 접어든 강아지를 예의 있게 보내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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