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건 오히려 더 나아간다는 생각
너무 바빠서 화장실도 갈 시간이 없는 날엔 머리가 띵 울릴 정도의 시원한 생맥주가 매우 간절하게 끌리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정작 내 입으로 들어가는 사무실의 답답한 공기는 한 번 들어오면 고속도로 위의 정체된 차들처럼 좀처럼 빠져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무심코 바라본 이곳 밖의 풍경은 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모두 소스라치게 똑같다. 빽빽한 창문들이 젠가를 하듯 높이 쌓인 빌딩과 저마다 분주한 사람들.
이미 다 녹아버린 아이스커피를 깊게 쭉 빨아들이고 다시 모니터를 응시한다.
연차가 있어도 없는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신입이 할 수 있는 말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일뿐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보통 회사보다 한 시간 반이나 빠른 출근시간은 인천의 끝에서 사는 나에겐 매일 아침이 극한의 시간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빠르게 들이마시는 차가운 새벽 공기는 상쾌하기보단 시리고 날카로웠으며 내 정신과 온몸을 난도질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보내는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은 더 이상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 밥을 먹듯 당연한 하루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매우 당연하다시피 느꼈던 것도 '그날'이 있던 후로 달라졌다. 마치 지퍼 열린 가방처럼 잔뜩 담고 있던 게 하나둘씩 빠져나가 결국 다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제의 ‘그날’은 배고파 죽겠는데 아직 주문이 안 들어간 걸 알게 된 사람처럼 대표가 유난히 히스테리를 부린 날이었다. 대기업이 아니다 보니 대부분 직접 대표와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이 곳에서 그의 작은 신경질도 모두가 온몸으로 받아내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신발에 붙은 껌처럼 누가 나의 발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듯한 온몸의 피로함을 느낀 날이었다. 이 피로함은 결국 내 면역 체계를 무너뜨렸고 그날의 새벽 공기와 합세해 불친절한 손님인 몸살감기를 데려왔다.
의자에 기대 몸을 젖히니 정신이 밑도 끝도 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과 함께 흐르는 식은땀은 더 이상 대표의 히스테리를 받아내기엔 무리라고 느꼈다. 5개월 차 된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겁도 없이 하려는 조퇴는 대표도 아닌 직장 동료의 말 한마디에 가로막혔다.
"진실씨, 우리 연차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대표가 안 보내줄 텐데. 신주임도 저번에 토하고 아팠는데도 결국 정시 퇴근했잖아. 그냥 약 먹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좀 쉬다가 퇴근해."
내가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집인데. 회사가 아니라 집에서 약 먹고 쉬는 건데. 그걸 잘 아는 사람이, 그것도 같은 팀 상사라고 하는 사람이 막아서니 더 이상 연차가 있어도 없는 이 회사에서 숨 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상사도 버티니 신입은 무조건 아파도 참으라는 건가 싶어 속은 더 끓어갔다.
점점 메슥거리고 앉아있는 시간보다 화장실에 들락날락 거리는 시간이 더 많아지니 이러다 집에 가지도 못하고 지하철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에 바로 대표님께 메신저를 보내버렸다. 내가 비록 죽더라도 회사에서 죽느니 차라리 지하철 종점역에서 죽는 게 낫겠단 생각이었다.
"대표님, 제가 오늘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약을 먹었는데도 나아지질 않아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이윽고 답장이 왔다.
"들어오세요."
최면을 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아파 보인다, 제일 아파 보인다.
모두의 부러움 반, 걱정 반을 뒤로하고 얻은 해방. 대표실에서 마주한 의심의 눈초리와 썩 유쾌하진 않은 그의 말투를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 괜한 기분 탓일까. 회사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아지고 있는 기분이다. 발걸음이 이보다 가볍고 상쾌할 수가 없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급격한 피로로 인한 탈진 상태와 겹친 몸살감기로 팔뚝엔 주사를, 손목엔 링거를 차례대로 꽂아준다.
벽으로 꽉 막혀 창문 하나 없는 병동에서 이제야 숨이 좀 쉬어진다.
하, 살 것 같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땐 너무 뿌듯했다. 이 회사에 뼈라도 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내가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과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고 느끼게 했다.
회사의 프로세스는 어딜 가든 다 똑같다는 상사의 말에도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하루에도 대표의 기분에 따라 수십 번씩 엎어지는 기획안도 원래 회사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 업무가 아닌 일을 갑자기 이중으로 떠맡게 되고 억지로 급하게 모르는 걸 배우며 알아가는 것도 원래 회사는 그런데니깐 당연하다고 믿었다. 대표의 말 한마디에 급하게 결정된 회식으로 막차를 놓쳐도 다 사회생활의 일부분이니 술자리도 배우는 거라고, 회사는 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었던 내 가방에 주섬주섬 무언가를 채워 넣는 느낌이 들어 무게가 무거워져도, 심지어 나보다 가방의 크기가 커져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가방의 크기에 짓눌려 숨을 못 쉬는 나를 발견했다.
심지어 그 가방, 내 것도 아니다. 가방 안을 들춰보니 죄다 쓸모없는 잡다한 물건 투성이다.
난 여태까지 여기서 무엇을 담은 걸까.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어가고 있었고 내가 그걸 알아차릴 때쯤 사업 확장을 위해 회사를 이전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리를 계산해보니 자그마치 왕복 5시간이 걸린다.
이건 필히 하늘이 주신 기회다. 더 멀어지니 얼른 도망쳐라. 충분한 이유를 들어 먼저 상사에게 그만둔다고 말하니 1년도 안된 신입은 어딜 가든 좋게 보지 않는다며 좀만 더 버티다 그만두라고 설득한다.
'지금 내 눈엔 이 회사가 좋아 보이진 않네요'라고 속으로 대답한다.
그렇게 회사에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그만뒀다. 그리고 대표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올 때 일 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연락하라고 받은 그의 명함을 다시 고대로 인사과에 반납하고 나온다. 까스활명수를 원샷한 것 마냥 얹힌 게 내려가는 것 같이 속이 후련하다 못해 설레서 배가 살살 아프다.
이거야말로 쇼생크 탈출이 아니라 사무실 탈출이다.
그렇게 백수로 근 5개월을 보냈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게 절대 내 인생이 멈췄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곳에서 지낼 1년이 백수로 지낸 5개월보다 더 나을 거란 믿음도 없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회사에서 잘렸다면 백수로 지낸 5개월은 아마 고통스러웠겠지만, 회사에 문제가 있어서 내가 스스로 퇴사하고 지낸 5개월은 재정비와 쉼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회사를 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실제로 그다음 회사는 내가 내 업무를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능동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잠시 멈춘 게 오히려 나를 더 나아가게 만들어준 것이다.
1년도 안되고 그만뒀다던 회사에 유능한 해외파 대리가 있었다. 나보다 먼저 그만뒀었는데 대표 눈엔 그 대리가 그저 미국 물에 젖어 잘난 척하는 겁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훌륭한 인재를 놓칠 것 같은 대표를 보며 참 인복도 없다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만둔다는 대리에게 화를 내며 회사가 장난이냐고 소리를 치더라. 무튼 그 대리가 그만두면서 말한 게 아직도 기억한다.
"company는 '회사'지만 또 다른 뜻은 '함께 있음'이라는 게 있어요. 함께 일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 안 되는 회사는 회사가 아니에요."
그렇다. 회사는 개인이 아닌 '모두'의 회사여야만 한다. 직원들은 회사에서 감정 노동 보단 업무 노동을 해야 하며 그것은 합법적인 프로세스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권리는 절대 누군가의 기분으로 망가지고 없어질 순 없으며 그중에서도 쉴 권리는 당연코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들을 빼앗겼단 느낌을 받았다면 정말 그곳은 회사다운 회사가 아닌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달리 당신만의 가방에 제대로 된 무언가를 담을 수 있고 당신만의 업무가 보장되며 성취감을 제공한다면 그래도 당신은 참 해볼 만한 곳에 다니고 있다고 보인다.
'퇴사'와 '트렌드'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조합도 이젠 전혀 이상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금은 현실이 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백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채용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무려 27.7%로 나타났다. 취직 전 '나 회사 가고 싶다' 생각했던 젊은이들이 취직 후 '나 회사 나가고 싶다'로 바뀌는 것이다. 어렵게 직장을 얻었지만 입사하자마자 나갈 준비를 하고 1년 안에 회사를 떠난다는 얘기다.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직장을 다니는 모든 세대가 어느 순간 '퇴사'를 고민하고 결심한다.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금, 당신의 퇴사 고민은 이상할 게 없다. 더 이상 개인의 성격과 문제로만 생각하기에 퇴사라는 건 점심 메뉴 고르듯이 지극히도 평범한 고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요즘 젊은것들'이 끈기가 없고 의지가 약해서 퇴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궁극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좇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에 '퇴사'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일이 아니어서, 야근이 많아서, 연봉이 낮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과 안 맞아서 등등의 저마다의 퇴사 이유는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어서'라는 목적으로 귀결된다. 더 이상 개인의 희생으로 직장에 발을 붙이고 그곳에서 당신의 인생을 버티며 살아갈 의무가 사라진 것이다. '퇴사'라는 단어가 자꾸 '트렌드'와 엮이고 떠오르는 이유는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삶은 무엇인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이제는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무조건적인 퇴사가 아닌, 더 행복하게 일하기 위한 퇴사를 생각할 때이다.
지금 나는 회사가 아닌 나만의 사무실에서 나만의 목표를 세우고 나만의 업무를 실행한다. 아주 가끔 그 답답한 사무실 안에서 이뤄낸 직장 동료들과의 성공적인 팀 프로젝트가 그리울 때가 있다. 스트레스는 받았어도 서로 응원하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흘린 땀들이 밤하늘에 박힌 별처럼 반짝거려 내 머리 위에 찬란히 떠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밤이 끝나면 결국 별은 사라지고 다시 해가 뜬다. 세상엔 별만 있는 게 아니다. 해도 있고 구름도 있고 무지개도 있다. 그렇게 또 다른 새로운 의미와 진정한 목표를 찾아서 내 삶을 채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내일의 새로운 햇살을 받으며 나는 그렇게 행복하게 일하며 나만의 길을 나아가면 된다.
적절히 광합성도 맞고 쉬어가며 마치 내가 그동안 누리지 못한 햇살을 온몸으로 열렬히 받아내듯이. 멈춤이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듯이.
무엇보다 나와 당신이 '행복하게' 일 할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