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달리는 게 좋았을 뿐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 친구들이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하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엄마가 교문으로 데리러 온 아이는 나처럼 운동장을 질러 뛰어갔다. 똑같이 뛰고 있는데 나와 그 아이의 표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표정으로 운동장을 계속 달렸다. 난 운동이 너무 싫었다.
“트루야, 너 이번에 전국 소년체육대회에 나가자.”
“네? 그게 뭐예요?”
“그냥 달리기 시합이야.”
체육 선생님은 이상한 재주가 있었다. 일을 굉장히 일사천리로 진행하면서 정작 당사자의 동의는 묻지 않는 이상한 재주 말이다.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작년에 새로 부임하신 체육 선생님의 눈에 띄어 육상부에 들게 되었다. 5학년 체육대회 때, 나는 계주 마지막 선수로 뛰었는데 꼴찌로 들어온 우리 반 친구의 바통을 받고도 그대로 역전하여 1등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걸 본 체육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에게 나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때 체육 선생님은 육상부에 들어오면 듣기 싫은 수업은 안들어도 된다고 나를 꼬셨는데, 나는 순진하게도 수업을 빼준다는 소리에 넘어가 체육부에 들어갔다.
“트루는 앞으로 하교하고 남아서 트랙 돌고 가.”
그냥 달리는 게 좋았고 남들보다 빨랐고 수학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육상부 아이들과 함께 전국 소년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너무 진지했다. 대회에서 1등을 목표로 누구보다 악착같이 훈련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싫었다.
“선생님, 저는 안 나가면 안 될까요?”
용기 내어 건넨 한 마디.
“재능을 왜 아깝게 썩혀. 우승이 목표가 아니더라도 경험 삼아 한 번 나가 봐.”
내가 가진 빠르게 달리는 능력이 재능이라는 말에 나는 또 어김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운동장 트랙을 돌게 되었다. 칭찬에 대한 약간의 설렘과 아직도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뛰었다. 발이 가벼울 리 없었다.
달리는 건 너무 좋았다. 달릴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가끔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내 앞에서 뛰고 있던 친구들이 어느새 보이지 않고 내 뒤에서 거친 숨을 쉬며 골인점을 들어올 때의 기분은 정말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운동회 계주의 마지막 선수를 뽑을 때 내 이름을 외치는 반 아이들의 함성이 좋았고,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학교 운동장의 트랙이 아닌, 대회 운동장의 트랙에 가장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대회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이 대회에서 메달이라도 하나 들고 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서로를 경계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하얗게 선으로 표시해 놓은 그 선 안에서 똑바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건데, 나는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체육 선생님의 응원도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알아들은 척 고개만 끄덕였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신발과 옷을 입고 자세를 잡으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트랙 안에서 나는 뛸 준비를 마쳤다.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와 뒤 친구의 기도 소리가 내 귀로 들어와 나를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어김없이 휘슬은 울리고 경기는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앞만 보고 뛰었다. 점차 가까워지는 아이들의 숨소리와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내 귀를 사정없이 때렸다. 그리고 나는 골인점에 들어왔다. 꼴찌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운동을 그만두었다. 정말 칼 같이, 아무런 후회와 미련 없이 말이다.
난 전국 소년체육대회 200m에서 2등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1등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달리 육상 선수가 되어있을까 생각해본다. 다행히 나는 2등을 했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쓴다. 글로 나만의 레이스를 달리고 있다.
왜 나는 육상을 그만뒀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마도 나는 달리는 그 자체의 행위를 즐겼던 것이지,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달리는 행위까진 즐기진 못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달리는 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내 머리 위로 새겨지는 순위라는 무서운 세상에 지레 겁을 먹었던 걸 수도 있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달리는 행위의 즐거움을 그렇게 잃고 싶진 않았다.
육상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처음보는 나의 단호한 표정을 체육 선생님은 알아보셨던 걸까. 그 이후로 나에게 어떠한 권유와 제안도 하지 않고 내 의견을 받아주셨다. 아마 체육 선생님은 느끼셨을까. 내가 경기장 안에서 느꼈을 불편함과 소외감을. 그리고 재능이 꼭 그 사람의 갈 길을 결정해주는 건 아니라는 걸.
누가 들으면 참 건방진 소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겐 그토록 간절한 재능이 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편한 재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 나에겐 잘 달리는 재능이 그때 당시에는 그랬던 것 같다. 재능이란 이름으로 무기삼아 남들과의 경쟁에 휘말려 온전한 나의 즐거움을 잃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그때 그 경험과 추억으로 나는 나의 유년 시절의 한 페이지를 잘 장식했다고 생각한다. 꽤나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아직까지 그 깨달음으로 잘 살고 있으니.
가끔 신호등의 초록 불이 깜빡거릴 때, 내 앞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려고 할 때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려고 할 때 나는 달린다. 그때 나는 정말 잘 달린다. 이렇게 잘 달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달린다. 아직 그때의 달리기 실력은 내 몸 안에 잘 남아서 이렇게 나에게 도움을 준다. 그래, 나는 이걸로 만족한다.
나의 달리기 재능은 육상 트랙이 아니라 이렇게 나의 인생 트랙에서 간간히, 소소하게 빛나면 된다.
그래, 그거면 된다. 나는 육상이 아닌 다른 걸로 나만의 인생 레이스를 즐길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