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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Sep 09. 2019

빵 정도는 제가 고를게요

시간이 좀 걸려도 그건 제 사정입니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어도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고 하지들 않나. 나도 그 부류에 속했다. 

아주 거하게 잘 먹어도 뒤돌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빵집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날도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아직 20분의 시간이 남았고 그거면 충분했다. 빵을 사고 올라가도 절대 늦지 않을 시간이었다. 

같이 점심을 먹은 사람들에게 빵집에 간다고 했더니 몇몇의 사람들이 자기도 간다고 해서 함께 빵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빵을 고르기 위해 집게를 잡았다.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다 맛있게 생겨서 다 먹고 싶은데 다 살 수는 없을 때, 우리는 슬프지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이건 먹어봤으니 다른 걸 먹어봐야지. 

그렇게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동안 아직 내 쟁반 위에는 아직 어떠한 빵도 담지 못했다. 그리고 같이 온 회사 선임이 내 쟁반에 빵 하나를 툭 올려놓았다.


“트루씨, 뭘 그렇게 고민해. 이거 먹어봐. 맛있어.”


그리고 바라본 쟁반 위로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크로켓이 놓여 있었다.


“아, 그래요?”


애써 성의를 무시하고 싶진 않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아빠가 크로켓을 좋아하니 퇴근 후에 아빠를 주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 선임과는 좀 더 거리를 두고 차근차근 내가 먹을 빵을 고르고 있었다. 갈색과 황금빛 색깔의 향연, 그리고 너무나도 향긋하고 기분 좋은 빵 냄새에 젖어 들어 갈 때쯤, 또 그 선임이 나에게 다가와 자신이 집은 빵을 내 쟁반에 올려놓는다.


“이게 여기 인기 메뉴인데 진짜 꼭 먹어봐. 강추야 강추.”


이번에는 깨찰빵이다. 다행히 깨찰빵을 싫어하진 않아 그것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원래 깨찰빵을 좋아하는데 인기 메뉴라고 하니 얼마나 더 맛있으려나 싶으면서 좋게 좋게 넘어갔다. 그런데 도저히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트루씨, 근데 너무 못 고르는 거 아냐? 얼른 골라.”


드디어 선임은 넘으면 안 될 선을 넘었다.



차라리 반가웠다. 선임의 불편한 호의를 어떻게 끊어야 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기 때문이다.


“저는 좀 더 걸리 거 같은데 그냥 먼저 올라가세요. 빵 안 사실 거죠?”


“그래? 그러면 사고 와. 나 먼저 갈게.”


네, 제발 좀 가세요. 안 붙잡습니다. 드디어 불편한 호의가 사라지고 온전한 내 행복의 시간이 왔다.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한번 찬찬히 빵 진열대를 훑어본다. 그래, 오늘은 너를 먹어야겠다. 내 쟁반에는 어느새 내가 먹고 싶은 빵들로 수북이 쌓여간다. 내 행복도 같이 수북이 쌓여간다.



남들이 보기에 별 거 아닌 일에도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게 빵을 고르는 일이던, 자판기 앞에서 무슨 음료를 마실까 고민하는 일이던, 어떤 옷을 살까 둘러보는 일이던 나는 그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얼만큼 행복을 느끼고 얼만큼 나만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누구도 아닌 온전히 나에게 그리고 나의 행복에 시간을 쏟고 있는 지금, 불편한 호의와 관심은 절대 사양이다. 이런 나에게 '선택 장애가 있다', '너무 오래 걸린다'와 같은 말도 절대 사양이다.


퇴사를 하지 않거나 그 선임과 손절하지 않는 이상, 아마 이런 식의 불편한 호의는 계속 됐을 거다. 언젠간 입 밖으로 당당하게 말할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뇌어 본다.


빵을 고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제 사정이고 제 행복입니다. 점심시간엔 늦지 않게 알아서 잘 들어갈 테니 빵 정도는 제가 좀 고르게 내버려 두시죠.

자꾸 그러면 이따 제가 사 온 빵들 안 나눠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때요, 겁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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