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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Mar 14. 2019

연필로 감정을 꾹꾹 눌러쓴다는 것

연필심 끝에서 욱여져 나오던 감정들을 기억하시나요

"연필에게는 지우개라는 친구가 있다.

잘못된 것을 지워주는 녀석.

그래서 연필은 용감하다."




방 청소를 하다가 어디서 굴러 나온 연필 한 자루가 유난히 맘에 걸리는 날이 있었다.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버리려다 언젠간 쓸모가 있겠지 싶어 서랍장 속에 다시 처박아놨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연필은 이케아를 처음 간 날, 기념품으로 한두 개 가져오는 것 말고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책상 밑 무수히 많은 예전 일기장들을 펼쳐보니 정성과 그리움이 한가득이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빳빳하지만 금방이라도 바스라 질 것 같은 종이가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그날의 감정들은 얼마나 힘을 주고 썼던지, 자국이 뒷장까지 남아 손가락으로 쓸어 만지면 마치 점자처럼 어떤 글자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손으로 글씨들을 한 번 쓱 쓸어보니 아주 희미하게 번진다.

마치 연필로 한 자 한 자 온 맘을 다해 무언가를 썼던 적이 언제인지 희미한 나의 기억처럼.

방학 동안 밀린 일기를 쓰고 나면 항상 연필 뒤쪽이 잔뜩 씹혀있었다. 아직도 그 맛(?)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엄마는 내 연필을 늘 종류별로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셨다. 4B부터 2B, HB까지 없는 게 없었다. 친구들은 내 연필을 곧잘 빌려갖고 비록 다시 돌려받은 적은 드물어도 엄마는 내게 이유 한 번 묻지 않고 늘 새로 연필을 깎아 다시 필통에 채워 넣어주셨다. 학생의 마음가짐은 필통 안에 들어있는 연필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땐 잘 몰랐다. 쓰면 닳아 없어지는 연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왜 그렇게 한 자루 한 자루가 모두 쉬워 보였는지. 그저 어린 맘에 친구들보다 많은 내 연필은 괜스레 날 으쓱하게 만들었고 정갈한 내 연필을 보며 건네는 선생님의 칭찬이 좋았을 뿐이었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 가장 순수했던 마음으로 연필을 손에 쥐고 종이에 글을 썼던 나는 이제 딱딱한 플라스틱 키보드와 유리 화면에 글을 쓰고 있다. 솔직히 지금 연필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종이에 연필로 글자를 써본지도 오래됐다. 그나마 손으로 쓰는 글자의 감촉을 잊지 않기 위해 손편지를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아직도 지인 및 가족의 생일에 꼭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문구점에 들러 가장 예쁜 편지지를 산다. 그리고 나의 마음 깊숙이 숨겨둔 부끄러운 진심은 누가 밀기라도 하듯이 펜 끝 작은 심에서 욱여지듯 튀어나온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편지 쓰기는 상대에게도 마음이 통하여 주고받는 편지 속, 수줍게 글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진심 또한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편지를 쓸 때조차도 연필은 펜에 밀려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 갔다. 이제 연필은 학생과 미술계 종사자 그리고 소수의 연필 마니아를 제외하고 우리에게 그저 과거와 추억의 물건으로 느껴질 뿐이다.

펜이 줄 수 없는, 오직 연필만이 주는 그 우직함과 견고함으로 무언가를 신중하게 적어 내려가는 느낌은 잊어버렸다. 연필로 쓰다 틀리면 필요한 지우개를 가지고 다니는 것조차 짐이라고 느껴졌다. 1kg도 채 안 되는 연필과 지우개의 무게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워진 것이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혹은 사은품으로 받은 근원조차 모르는 펜들이 내 서랍장을 가득 메울 뿐이다. 심지어 그 펜들, 당최 쓰지를 않아 잉크가 아주 펑펑 남아돈다.

그렇게 연필로 무언가를 쓴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아니었다.

받아쓰기. 연필과 지우개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중요해지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글씨체를 잘 모르고 산다. 그렇다고 그게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서류의 자필 서명도 점점 화면에서 이뤄지는 요즘, 종이에 무언가를 적기 위해 번거롭게 수첩과 연필을 들고 다닐 이유는 전혀 없다.

일상의 작은 기록조차도 핸드폰 메모에 두드려 적는 지금, 굳이 종이에 적어서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나와 같이 글로 살아가려는 사람도 모니터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는 지금 뜬금없이 연필의 의무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느꼈던 것처럼 목표를 다짐하는 굳건한 마음과 잘못된 것을 말하려는 용기, 그리고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하는 터질듯한 설렘을 써내려 가기엔 면 속 똑같은 글씨체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IT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4차 산업혁명이 와도 장장 200년이란 세월을 넘어 연필은 아직까지 존재한다. 연필을 대체할 거란 타자기는 몇 세기 동안 존재했지만 결국 연필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스마트펜이 출시되었어도 연필은 우리 곁에 현존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누구든지 손에 쥘 수 있는 공평하고 소박한 도구가 바로 연필인 것이다. 비록 화려하지도 주목받지도 않았지만 세상을 기록하고 역사를 만들어온 연필은 평범한 우리 시민의 삶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꾸고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그렇게 연필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도 결국 계속 존재할 거란 믿음.

그것의 의미는 학교에 들어가 제대로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글자가 주는 진중함과 고쳐 쓰는 것의 신중함을 알게 해 주려는 것이 아닐까. 글자 하나하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연필과 지우개 자국은 무언가를 써내려 간다는 것의 특별함을 잊지 않게 해 주려는 마음임을. 

그리고 어른들에겐 잘못된 것을 겸손하고 용기 있게 지우고 다시 자유롭고 새롭게 그들의 인생을 적어 내려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작은 연필이 가진 큰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연필은 그저 세월 속 아날로그의 물건으로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힘을 가진 도구이며 우리는 서서히 그 가치를 잊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무심코 발견한 연필 한 자루가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날이 있었다.

연필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던 날. 썼다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하며 연필 끝에 내 감정을 꾹꾹 눌러 적었던 날. 잘못된 것은 용기 있게 고쳐 적고 틀린 것은 겸손하게 지웠던 바로 그날. 그 모든 순간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날이 있었다.


처음 글씨를 배우던 날, 손에 쥔 연필에서 땀이 나면 무심하게 옷에 닦고 다시 연필을 잡던 당신의 그 진중함과 설렘은 이제 어디서, 어떤 도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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