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트루 Jan 15. 2019

1월 1일, 다이어리 휴무합니다.

계획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이왕 할 거 디테일하게 세워보자.

"아.. 쉬는 날이다.."


신정 아침, 침대에서 나온 남편이 소파에 다시 드러누우며 말한다.

그에게 1월 1일은 '신정'보다는 '쉬는 날'이란 의미가 더 크다.


그런 그에게 나는 말한다.

"우리 작년 계획 꺼내서 확인해보자!"

그리고 그 '작년 계획'을 꺼내러 가는 순간 남편이 말한다.


"여보, 꼭 오늘 해야 돼..?"


5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매년 1월 1일, 새해 계획을 쓰고 복주머니에 넣는 우리만의 '문화'를 지켜오고

별 말없이 잘 따르던 그가 오늘은 브레이크를 걸었다.


"응? 왜? 아침 먹고 할까?"

"음.. 아니 그냥.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괜찮아요?"


순간 머리를 누가 '콩' 하고 가볍게 내리친 것 같다.

마치 "늘 세우는 계획, 하루 좀 늦춘다고 뭐가 달라지니?"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새해 복주머니. 매년 새해마다 각자의 목표와 다짐을 카드에 적고 넣어둔다.


우리는 1월 1일만 되면 계획을 세운다.

그러고 보면 새해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새해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평소엔 잘 가지 않던 문구점에 들러 맘에 드는 디자인의 다이어리를 고른 후, 집 혹은 카페에 간다.

그리고 "이번엔 작년과는 다를 거야."라 다짐하며 이루고픈 목표들을 쭈욱 적어 내려가 본다.


혹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대부분의 예를 들어 살며시 공감을 얻어본다.


<새해 목표>

1. 운동하기 : 아침 혹은 퇴근 후, 운동 1시간씩 하기.

(내 운동은 장장 2시간의 출퇴근으로 끝낸다.)

2. 금주 : 정말 중요한 일 아니면 술자리 피하기.

(뭐 이렇게 중요한 날들이 많아 보이는지.)

3. 금연(참고로 나는 비흡연자다.) : 하루에 한 개비만 피우기

(아빠 말에 의하면 가장 힘들다고 한다.)

4. 책 읽기 : 한 달에 1권씩 꼭 책 읽기.

(출퇴근 시간에 책 읽자고 다짐하지만 어쩌겠나. 연예뉴스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을.)

5. 다이어트 : 10kg 감량하기

(가장 이루기 힘든 목표. "어차피 맛이 거기서 거기지만, 그 맛을 알기 때문에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가장 흔히 세우는 목표들이라고 한다.

그렇다. 나 역시 그 흔한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작년 목표. 심지어 8개인데 이룬 건 절반정도..?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위로해본다.


'새해 목표 강박증'


나는 내 증상을 새해 목표 강박증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아침을 먹으면서 내일이나 내일모레 쓰는 걸로 합의를 본 후, 혼자 떠올린 단어다. 굳이 새해 목표를 정하고 어디에 기록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잘 지켜나가면 큰 문제는 없는데, 이 목표를 종이나 다이어리에 쓰지 않으면 마치 새해부터 그저 그런 작년과 별 다를 게 없다고 느낀다.


"이번 연도에는 꼭 해내야지."

"이번 연도에는 꼭 성공해야지."

"이번 연도에는 꼭 이뤄내야지."

라는 것들이 머릿속에 계속 잔상처럼 남아서 얼른 내 손으로 직접 쓰고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나는 그저 그런 작년의 나와 똑같으며 발전이 없다고 느껴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발전하고 싶어 한다. 어제와는 다른 나, 어제보다 나아진 나.

그렇기에 작년과는 다른 나를 위해 새해의 목표를 쓰는 것이다. 그게 문제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새해'라는 그 날의 분위기와 기분에 휩쓸려 '이룰 수 없는 것'들로 변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한 박자 쉬기.

이게 우리가 새해에 필요한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감히 아무것도 적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냥 계속 생각만 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다이어리도 그 날은 쉬게 하라고 말이다. 그런다고 당신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도 아니며, 장담컨대 당신의 계획은 더욱 '디테일'해지며, '성취 가능한 목표'로 다가갈 거라고 확신한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가령 필름이 끊긴 다음 날, 핸드폰 문자에 찍힌 카드 내역서를 볼 때 그렇다.


"68,000원? 뭐지? 한0닭발? 내가 계산했나? 애들한테 돈 받았나? 아 술 먹고 카드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12,600원? 택시? 어디서 탄 거지? 아, 잠실에서 탔었지. 아 택시 타는 거 줄여야 되는데.."


생각이 생각의 꼬리에 물고, 결국은 진실을 밝혀내며 때론 반성을 하기도 한다.

그런 작업이 새해 목표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이런 자세야말로 새해 당일, 다이어리에 목표를 적기 전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꼭 그 전날 술을 진탕 마시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적어도 이 3가지만 따른다면 새해 목표의 실패 리스크는 줄어들 거라고 믿는다.


step 1. 작년 목표 생각하기

step 2. 피드백 생각하기

step 3. 목표 세부화하기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과 '간소화하기'이다.


"목표를 생각 안 하고 쓰는 사람이 어딨어요?"

라고 반박한다면, 내가 말하는 '생각'은 단순히 목표를 '떠올리는' 그런 1차원적인 생각이 아니다.


가령, 작년 목표가 '운동하기 : 헬스클럽에서 매일 1시간씩 운동하기' 였다면

왜 실패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유는 많다. 회식, 뜻밖의 병가, 피곤함, 저녁 약속 등.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그러나 '매일 1시간씩 운동하기'를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하고 역시 자신은 그저 그런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그저 목표가 너무 거대할 뿐이다.


이 목표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피드백하며 세부화 시켜보자.

'운동하기 : 버스 및 지하철에서 웬만하면 서서 가기, 헬스클럽은 갈 수 있을 때만 가기, 사무실에서 틈틈이 스트레칭 하기'

이 얼마나 지킬 수 있는 목표들인가.


버스 및 지하철 서서 가기? 자리가 없으면 서서 가지만, 자리가 난 다한들 서서 간다면 그게 운동이고 바로 목표 달성이다.

헬스클럽? 갈 수 있을 때만 가서 운동하겠다는데 그게 뭐 반칙인가. 가는 날엔 대신 안가던 날의 몫까지 더욱 열심히 하고 오면 된다.

사무실에서 스트레칭? 기지개 한 번, 의자에 앉은 채로 다리 한 번 높이 들었다 내리는 것도 다 운동이다.


1월에 쓰면 좋지만 올해 이루고자 한다면 이번 년도 안에만 계획하면 된다.

그 누구도 당신이 1월 1일부터 새해 목표를 실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얼마큼 디테일하게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12월까지 해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니 다들, 1월 1일에 무작정 다이어리에 충동적으로 새해 목표와 다짐을 쓰는 것을 멈춰보길 바란다.

'새해'는 단순히 '새해'일뿐, 당신의 '생각'이 작년과 달리 새롭다면 그것으로 이미 값어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니 다들, 새해엔 잠시 다이어리를 휴무하고 생각만 하시길.

앞서 말했듯이 "늘 세우는 계획, 하루 좀 늦춘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