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침은 내 하루보다 더 급한 하루가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눈은 절반쯤만 떠진 채 화장실로 비틀비틀. 너무 피곤한 날엔 시끄러운 알람도 별 수 없다. 꾸역꾸역 머리를 감고, 물기를 대충 짜낸 뒤 드라이기를 든다.
위이잉 소음과 함께 머리카락이 뚝뚝 튄다. 하루를 겨우 시작하려던 찰나, 귓가에 날카롭게 박히는 방송 한 줄.
"빨간… 와… 바지를 입은… 를 찾습니다."
드라이기를 돌리던 손이 멈춘다. 급히 드라이기를 끄고 귀를 기울인다.
"빨간 티셔츠와 짙은 회색 바지를 입은, 80세 할머니를 찾습니다."
누군가 사라졌다. 물기 가득한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감싼 채 핸드폰을 집어든다. 경비 아저씨의 사투리 섞인 느릿한 목소리를 따라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빨간 티셔츠, 짙은 회색 바지, 80세, 할머니, 김ㅇㅇ'
메모를 캡처해서 sns에 올릴까? 동네 카페에 올릴까? 고민하는 사이, 결국 지하철 시간에 떠밀렸다. 할머니를 찾는 일 보다 내 출근이 더 급해진다. 그리고 왜인지 그게 조금 얄궂어졌다.
결국 나는 언제나처럼 출근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처럼 핸드폰만 보며 걷지 않고 고개를 들어 빨간 티셔츠를 찾아보며 걷는다. 할머니는 찾았을까. 찾았다면 무사하신 걸까. 그 아침, 누군가의 하루는 멈춰 있었고 내 하루는 어쨌든 시작됐다.
누군지도 모르는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스스로를 위로하듯 생각한다.
'그만하자. 그렇다고 연차를 낼 수도 없잖아. 분명 찾았을 거야.'
나는 돕지 못했고 그럴 여유와 용기도 없었다.
평소처럼 출근을 택했다. 그 선택이 전부였던 오늘 아침, 내 현실은 생각보다 더 무기력했고 그래서 더욱 미안했다.
지하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대로 달렸고, 나는 아직도 우리 집 근처에서 빨간 티셔츠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