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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목소리를 지켜주세요

by 김트루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셨다. 아니, 말수가 적다기보다는 ‘말을 아끼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적은 말속에 불필요한 감정은 없었고, 대신 필요할 때 꼭 해야 하는 말만 꺼내는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부터인가 매일 밤 책을 읽어주셨다.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었고, 하루 중 내가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침대 맡에 앉아 한 페이지씩 넘기는 소리와 함께 낮게 울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내 유년의 자장가였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아버지가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을 나른 후에도 목소리를 쥐어짜며 책을 읽어주는 그 시간이, 아버지에게도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이었을 거라는 걸.


몇 년 전부터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시력이 나빠진 아버지는 본인만큼이나 오래된 낡은 소설책 몇 권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파일로 저장해 두었다.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도록.

그게 시작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를 섞어 짧은 낭독 영상을 만들었고, 그건 소소한 반응을 얻었다.

어떤 이는 “친정아버지가 떠오른다”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우리 아빠도 아닌데 눈물이 난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누군가의 기억에 내가 느꼈던 그 따뜻한 감정 하나를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며칠 전, 익숙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내 영상의 썸네일, 그리고 나와 내 아버지의 목소리. 그 영상은 출처 없이 다른 채널에 ‘힐링 낭독 콘텐츠’로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배경 음악은 물론, 나의 편집 방식도 고스란히 복제된 채 말이다.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어떻게 이걸 그냥 가져갈 수 있지?’
‘이건 단순한 음원이 아닌데.’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읽어주신, 나와 아버지의 밤의 시간들이다. 나는 단지 그 시간들을 내가 만든 내 세상에서 좋은 의미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마치 나의 아버지를 다른 집에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이건 저작권이라고 하지만, 저작권은 법의 언어로 설명하기엔 다소 딱딱하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저작권은 결국 '기억을 지키는 권리'라고. 그리고 그 기억이 지나온 '시간을 지키는 권리'라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내 삶의 배경음이고 내가 글을 쓰고 낭독을 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근원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따뜻한 콘텐츠, 혹은 타인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였을지 몰라도, 나에겐 가족의 역사이자 시간의 기록이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무심코 콘텐츠를 퍼간다. 좋은 건 나누자며 출처 없이 공유한다. 하지만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그 ‘좋은 것’은, 단 한 번의 소중한 순간이자 영원의 기억이고, 다시 들을 수 없는 소중한 목소리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늘도 그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파일을 열고, 아버지가 읽던 그 문장을 다시 따라 읽는다.


“아버지의 목소리, 소중하게 지켜줄게요.”

그건 내게 가장 익숙한,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지키고 싶은 기억이자 권리다.

그러니 아버지의 목소리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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