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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찌질하고 용감한 글쓰기에 대하여

by 김트루

글쓰기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완전무결하게 진솔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진솔함은 갖춰야죠. 마치 오렌지주스에 오렌지가 안 들어가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 물론 소설은 예외죠. 소설은 온갖 허무맹랑하면서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야 제대로 먹히는 법이니까요.


정말 진솔한 글쓰기라 하면, 사실 쓰는 게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가령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서 자기소개서를 썼던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도 진솔한 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었죠. 그래서 정말 진솔하게 썼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류에서 광탈을 했습니다. 나름 스펙은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순진하게도 진솔한 자기소개서를 원한다고 해서 덜컥 지극히 평범한 제 모습을 너무나도 가감 없이 드러내 버린 것 같더군요. 저의 자기소개서를 읽은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에게 괜한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었죠. 사실 회사 자기소개서는 에세이도 아니고 나름의 스킬이 필요하니, 이건 그나마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살짝 돌려 말했는데 사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제가 진솔한 글을 쓰는 건 오직 제 핸드폰 속 메모장에 꼬깃꼬깃 몇 개씩 끄적여 놓은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메모장 속에만 있는 제 글들에게 왜 이리 미안하게 느껴지던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쓰기 플랫폼에 저의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 또 거기서는 많은 사람이 저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글들을 좋아해 주더군요. 그때부터 그 플랫폼에 진솔한 이야기를 마구 썼었는데, 또 이게 너무 진솔하다 보니 제 글을 읽고 오해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아주 진솔한 글과는 잠시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또 이제 와서 진솔한 에세이를 쓰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딱히 이거밖에는 없네요.

글을 쓰고 싶어서요.


지극히 평범한 제가 글이라는 걸 통해 다른 사람을 웃게도 해보고, 감동을 주기도 하고 그로 인해 제가 얻게 되는 그 많은 것들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당최 쌓여만 가는 글에 대한 욕망을 모른 척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분명 전보다 나아진 제가 앞으로 써 내려갈 글이 제 자신도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하고요.


자신이 가장 찌질해지면서도 가장 용감해질 수 있는 그 아이러니한 상황을 글이라는 게 해내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노트북에 열 손가락을 올려 열 마디 이상, 열 줄 이상 써 내려가 봅니다.


누가 알겠어요? 제 손이 발보다 먼저 저를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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