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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an 21. 2019

나는 아메리카노가 맛없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지어다.

“김트루, 너 뭐 마실 거야?”


메뉴판을 살펴본다.


“음.. 뭐 마시지.”


“난 그린티 프라푸치노 먹어야겠다.”


그린티 프라푸치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다.


“나는 아메리카노.”


그래도 나는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물보다 더 많이 마시는 게 생겼다. 바로 커피와 술. 

전자는 카페에서 공강 시간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겸 그리고 과제를 할 겸 마셨고 후자는 알다시피 대학생이 됐으니 얼마나 마셨겠는가.


부모님께 용돈을 따로 받지 않았던 나는 이런 커피와 술 같은 대학생의 소소한 일상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선 무조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영어 과외와 서빙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핸드폰 요금과 유흥비, 교통비, 책 값 등은 웬만하면 내가 해결했다. 물론 부모님께서 적게나마 용돈을 주시긴 했지만 자신이 쓸 돈은 스스로 벌어서 써야 한다는 게 부모님의 생각이셨고 나 또한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안 좋은 습관이 생겨버렸다. 바로 '절약'이다. 엄밀히 말해서 절약 정신이 안 좋은 건 아니다. 돈을 아끼고 모아서 나중을 위해 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흥청망청 쓰기보단 사고자 하는 것을 정하고 그것을 사기 위해 한 푼 두 푼 모아서 결국 그것을 내 손안에 넣는다면 그보다 나 자신이 뿌듯하고 대단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절약이 싫었다. 나한테 절약은 아끼고 모아서 나중에 내가 원하는 것을 사는 게 아니라 단순히 '무조건 싼 거' 정신이었다.

그렇게 무조건 아꼈다. 메뉴판을 봐도 가장 저렴한 거부터 봤다. 내가 마시고 싶은 그린티 프라푸치노는 학식 돈가스를 두 번이나 사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고, 그때의 나는 그걸 감수하고도 그 녀석을 사 먹을 만한 배짱이 없었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마시는 게 아니라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내가 당연히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줄 알았고 그 후로 같이 카페를 가면 물어보지도 않고 내 음료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너무 썼다. 너무 맛이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 있는 여주인공들처럼 마셔보려고 해도 첫맛은 쓰고 끝 맛은 더 썼다. 다 마시고 나면 입 안에 남는 텁텁한 느낌도 싫었다. 대체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돈 주고 마시나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럽을 넣어서 먹어봐도 '그나마 1괜찮다' 라기보단 이렇게라도 해서 억지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내 모습이 더욱 비참하고 싫어질 뿐이었다.


물론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내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아주 지극히 '초딩 입맛'인 것을. 달고 또 단 음식이 좋은 것을. 그러다 보니 아예 카페를 가는 것조차 싫어졌고, 친구들에게 갖은 변명을 둘러대며 그 순간을 피했다. 혼자 도서관에 가서 공강 시간을 보내거나 집에 가서 잠깐 쉬고 오곤 했다. 


아직도 아메리카노가 싫은 이유가 그래서인가 보다. 맛이 써서가 아니라 기억이 써서.

친구들을 멀리 하면서까지 돈을 아끼려고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그날의 내가 마음이 아파서.

커피가 아니라 한약 같다.


마 차이도 안 났다. 겨우 '2200원' 차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2200원이 엄청 큰돈도 아닌데 마치 22,000,000원이라도 되는 마냥 주머니에서 아끼고 아꼈다. 2200원이 주는 힘은 대단했었다. 그 돈을 아껴서 수업 자료 인쇄를 할 수도 있었고 책 사는데 보탤 수도 있었고 지하철 요금으로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난 늘 그날의 나에게, 오늘의 나에게 못되게 굴었다. 오늘 아끼면 내일과 미래의 나는 더 잘 살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미래엔 늘 맛있는 그린티 프라푸치노만 마실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무작정 주머니에 있는 돈보다 내 배에 들어간 돈이 가치 있음을 깨달은 건 먼 미래의 일이었다. 오늘의 행복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미래의 행복만 생각한 나에게 남는 거라곤 후회와 씁쓸함 뿐이었다. 그 날, 내가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마셨다면 난 하루 내내 행복했을 것이고 카페를 가는 것도 즐거웠을 것이고, 친구들과의 시간도 멀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추억을 얻었을 것이다.


물론 예금, 적금, 보험 모든 다 좋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건 멋진 일이다. 사실 지금도 나는 돈을 쓰기보단 아끼는 편이다. 뭐 하나 사더라도 이게 정말 지금 필요한지 아닌지 수십 번을 고민하고 산다. 그렇게 아껴서 정말 사고 싶은 건 다 살 수도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룰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내가 먹고 싶은 걸 미룬다고 해서 10년 후의 내가 엄청 부자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막말로 오늘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나는 내일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가.


뻔한 말이지만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난 더 이상 오늘 아끼면 미래의 내가 더 행복하고 잘 살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행복한 내가 쌓이고 쌓이면 미래의 나는 무조건 행복한 사람일 거라 믿는다. 쓸 땐 쓰고, 아낄 땐 아껴야 행복하다.

남편과 카페를 가면 난 무조건 단 음료를, 남편은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이젠 나이도 좀 먹었겠다 괜찮지 않을까 싶어 남편 아메리카노를 살짝 마셔봐도 결과는 똑같다. 지금까지도 난 아메리카노가 맛이 없다. 오히려 그날의 나를 위로라도 하듯 단 음료에 단 디저트를 추가로 시킨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시 그날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어김없이 아메리카노를 시킬 그때의 나에게 달려가 말해줄 거라고.


"야, 아메리카노 진짜 맛없는 거 알잖아.

그냥 맛있는 그린티 프라푸치노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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