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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an 29. 2019

여기 소화제 하나만 주세요

No를 못하는 당신에게 필요한 건 No.

“오늘 스크립트 수정한 김에 다 끝내는 게 어때요?”


'아, 약속 있는데.'

약속이 있다고 말하려는 찰나.


“앗 대리님, 저는 오늘 콘서트 보러 가기로 해서 곤란할 거 같은데..”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진실 씨는? 괜찮아요?"


아. 후임도 가고 나라도 해야 되나..? 근데 오늘 꼭 다해야 하는 건가..?

복잡한 머릿속. 마음은 퇴근을 열렬히 외치지만 정작 입에선 다른 말이 나온다.


“아, 네.. 다 하고 메일로 보내 놓을게요.”


젠장. 친구한테 연락한다.


‘나 좀 늦을 거 같아. 붙잡힘..’


친구가 말한다.


‘다행이다. 나도 좀 늦을 거 같은데.’


아..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차피 친구도 늦는다고 했으니 뭐, 일 좀 더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좀 더 늦게 퇴근한다고 해서 오늘 만날 친구를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만나기로 한 음식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기분은 엉망이었다.


생각해보면 굳이 그 업무를 오늘 안에 다 할 필요는 없었다. 상사의 말 한마디에 내 칼퇴와 금요일의 행복을 누릴 권리까지 빼앗길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그 상사도 나에게 명령을 한 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제안만 했을 수도 있다. 내가 거절을 못해서 덥석 물어버린 거지.

빌어먹을 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 결국 이렇게 일을 더 하게끔 만드나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상사를 두둔하는 내 마음마저 짜증이 났다.


콘서트를 보러 먼저 퇴근한 후임의 빈자리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물론 선임이 남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후임이 먼저 가서 화가 난다는 건 전혀 아니다. 맹세컨대 나는 그런 꼰대가 아니다.

오직 단 하나.

그녀처럼 No라고 말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미운 거다.


그녀는 나랑 달랐다.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살다와서 그런가 아메리칸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는 그녀는 애초부터 나와 달랐다. 회의 시간에 대리님이 말한 기획안에 바로 이의를 제시하더니 점심시간에 부장님이 김치찌개를 말할 때 부대찌개를 말하는 성격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그녀의 당당함이 부럽기보단 조마조마했다. 저러다가 한 소리 듣진 않을까, 혹시 팀 전체 분위기에 해가 되진 않을까.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는 직장 생활도 잘했고 그런 그녀의 성격을 오히려 다들 이해하고 신선하다며 받아들여가는 분위기 었다. 오죽하면 나중엔 그녀에게 몰래 도움을 청하는 직원들도 많았으니. 일종의 대나무 숲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결국 난 남아서 스크립트 수정을 다 하고 나서야 퇴근을 했다. 그날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나는 No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도 그랬다. 하기 싫은 것도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말씀하신 거니 다 약이 되고 살이 되랴 싶어 군말 없이 따랐다. 회사에서도 다 배워가며 일하는 거라 생각하며 궂은일도 군말 없이 처리했고 덕분에 부탁하는 일은 죄다 흔쾌히 맡아서 하다 보니 어느새 일 부자가 되었다.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었다. 혹 우정에 금이라도 갈까 친구가 하자는 건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중요한 고3 때, 야자시간에 땡땡이치기 싫었는데 친구가 가자고 해서 억지로 나간 적도 있으니.


그래서 그런가 싶었다. 내가 No라고 대답할 수 없는 이유가. 나보단 남이. 나 자신보단 관계가 더 중요해서.


내가 No라고 하는 순간, 그 관계는 깨지거나 상대가 상처를 받을까 봐 주저했었다. 차라리 내가 조금 불편해도 다른 사람과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게 마음이 더 편했다. 작은 부탁은 말할 것도 없었고 무리한 부탁에 이르기까지 스트레스는 많았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깨질까 난 무조건 No보단 Yes였다.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서 내 평판은 좋았고 '일 잘하는 후배, 착한 언니, 좋은 친구, 예쁜 딸' 등 좋은 수식어만 붙었다. 그런 수식어들은 내 입을 더 막았고 결국 소화 불량과 긴장성 두통이란 진단까지 얻게 만들었다.


남들한테 나는 좋은 사람이지만 정작 나한테 나는 못된 사람이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자존감과 성공적인 대화 스킬 등 필요한 자기 계발서는 닥치는 대로 읽어봤지만 막상 실전에서 응용이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책에서 본 간단한 거절 방법. 도전해보려 했으나 역시나 실패.


하지만 '그날'이 있던 후로 난 더 이상 고통받는 나를 외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약속 시간에 좀 늦어 바쁘게 길을 가던 중, 나를 붙잡고 샘플을 주며 향수 체험을 요구하는 점원을 그날도 난 어김없이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한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그들이 그걸 신경 쓸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혹시 기분이 상할까 최대한 좋게 좋게 벗어나려고 설명을 다 들어주고 향수 테스터까지 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결국 난 약속시간에 늦어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의 앞부분도 놓치고 말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 이름도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까지 너무나도 친절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남의 기분을 신경 써서 내가 얻은 거라곤 망친 내 기분과 놓친 내 영화, 그리고 내 시간이다. 그건 누가 배상해주려나. 다시 향수 체험을 권유한 그 여자를 찾아가서 분풀이라도 해야 내 기분이 좀 나아지려나.

심지어 이 향수, 내가 싫어하는 향이다. 최악이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며 나를 바꿔보기로 했다.

 


나만의 규칙을 정해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1. 길거리에 나타나는 집요한 점원 물리치기
(그들은 그게 직업이고 나는 소비자로서 거부할 권리가 있다)
2. 광고 전화 단호하게 끊기
(스팸 처리는 기본. 그 외의 광고 전화가 걸려와도 단호하게 거절하며 끝에 죄송하다는 말로 예의 있게 끊기)
3. 고민하는 티를 내기
(바로 No라는 말이 힘들다면 최대한 고민하는 티를 내어 상대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4. 다음을 기약하기
(단호한 No가 힘들다면 다음을 기약하며 부드럽게 거절해보기)


첫 번째. 어김없이 걸려온 광고 전화.

상담원의 “안녕하세요 고객님. 핸드폰 기기 변경 상담으로 전화드렸습니다.”를 듣는 순간,
"저는 핸드폰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바로 단호하게 끊어버렸다. 내 심장은 다소 빠르게 뛰었고 혹시 다시 전화가  오진 않을까 액정을 계속 쳐다봤지만 다시 걸려오진 않았다. 순간 상담원이 기분 나쁘진 않았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동시에 묘한 짜릿함과 승리감이 생겼다.

별 거 아니었다. 난 더 이상 광고 전화를 받아도 휘둘리지 않고 곧바로 내 의사를 전달했으며 항상 끝에 예의상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덕분에 난 빠르게 거절하되 죄책감도 가지지 않았다.


두 번째. 가장 어려웠던 직장에서의 무리한 업무 부탁 거절하기.

안 그래도 마감으로 바쁜데 자기 업무를 좀 해달란다.

“진실 씨, 혹시 이따 오후에 성우 녹음실 나 대신 좀 가줄 수 있어? 진실 씨가 그 성우랑 친하잖아.”

최대한 고민하는 티를 냈다.

“음..." 실제로 5초를 마음속으로 셌다.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었고 심장도 엄청 빨리 뛰었다. 그냥 한다고 말할까 흔들렸지만 최대한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눈동자를 굴렸다.

기다리기 답답했는지 먼저 말한다.

“진실 씨 바빠? 그럼 oo 씨한테 말해볼게.”

“아 네, 그래 주세요. 제가 곧 마감이라. 다음엔 제가 한 번 가볼게요.”


성공이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혼자서 웬만한 스릴러 영화 한 편 찍는 것 같았다. 물론 한 번에 좋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떠랴. 시작이 반인 것을.


거절을 못하는 건 착한 게 아니다. 오히려 무리한 부탁을 떠안아 자신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보 같다며 탓하고 원망하게 된다. 업무에선 무조건적인 Yes가 오히려 과도한 업무로 이어져 당신의 효율적인 업무 처리에 해가 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의 짐을 덜어주고자 할 것이다. 적절한 No를 함으로써 내가 행복하고 편안하고 당당해질 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비로소 원만하고 오래갈 수 있다.


더 이상 난 소화제가 아닌 승리의 맥주를 마시고자 한다. 삶은 끝없는 부탁과 권유의 연속이요. 그때마다 난 지혜롭게 거절하려 한다. 아직 라운드는 끝나지 않았으니 그대, 나와 같이 거절해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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