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나는 영문학 석사 졸업생이다.
영문학 석사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다들 머릿속에 이거 하나는 분명히 들 것이다.
'아, 영어는 잘하겠네.'
물론, 영어를 못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또 감히 엄청 잘한다고 으스댈 정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깔리고 깔렸다.
그럼에도 나름 영문학 석사까지 수료했다고 하면 기저에 영어를 잘하는 건 기본이고 영어를 단순히 공부했다기보다는 좀 더 다른 세계가 펼쳐친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운문을 밤새 뜯어 분석하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영화로도 보고 원서로도 정독했으며, 석사 졸업을 위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가지고『프랑켄슈타인』에 나타난 교육 : 루소적 연민과 공감 부재의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나름 심오한 논문을 썼던 필력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뭘 할까?
아이한테는 '사과는 apple, 바나나는 똑같이 banana.'
를 외치고 있다.
그때는 영문학 소설을 읽으며 나름의 품위를 지켜봤으나 지금은 영어 그림책 한 권에 혀가 꼬부라질 정도로 과장을 보탠다.
출산 후, 멈춰버린 나의 커리어는 몇 번이고 나를 좌절의 낭떠러지로 몰아세웠다. 내가 집에서 육아하려고 그렇게 힘들게 대학을 다니고 석사를 이수하고 회사를 다녔을까. 나름 자부심 있는 졸업증과 논문책은 집 안에서 그저 먼지만 쌓여가며 어디에 뒀는지는 기억도 안나는 하나의 전리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교수가 주는 A+의 리포트 결과보다 아이가 주는 웃음 가득한 '또 읽어줘!'라는 말이 내 졸업장의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는 점점 '또 읽어줘!'에서 'pick one!', 'two, three, four..'로 점점 내가 말하는 영어라는 언어를 듣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어 교재 회사에 취업하여 교재도 만들어보고 영어 도서관 및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도 봤지만 이렇게 내 집에서 내 아이를 가르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는 논문과 영어 소설책 대신 영어 그림책을 읽고, 학회 강연 대신 동요를 듣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게 더 어려운 연구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언어 습득의 첫 순간을 매일 옆에서 목격하는 일, 그 어떤 강의실보다 생생한 실험실이 아닌가.
학위가 무색하다 생각하다가도 결국 내가 배운 모든 게 이 작은 사람에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결론은 간단하다.
내 새끼는 지금 엄마가 된 나의 수업의 첫 번째 제자이자 아직까진 누구보다 성실하게 출석하는 학생이다. 석사 졸업장 값 못 한다는 말은 이제는 굳이 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힘들게 얻어낸 석사 학위는 결국 이렇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흘러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내 아이의 첫 영어 발화라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수업료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아이에게 해왔던 이 경험을 나와 똑같이 불안해하는 다른 엄마들과도 나누고 싶다고 말이다.
영어 유치원을 보낼까 싶다가도 너무 비싼 비용으로 엄두는 못낸다거나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집에서 책을 못 읽어준다는 가까운 지인의 말을 듣고 감히 안타까워 하기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으로 내 아이를 가르쳐보자.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을 나처럼 영유도 보내지 않고 어린이집만 보내면서 문화센터를 가거나 키카로 출동하는 엄마들도 쉽게 그들의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영어 노출 방법을 알려주자.
그리면 우리는 더 이상 4세 고시와 영어 유치원 등 엄마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에게 아주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너는 영어를 배워서 그렇게 할 수 있지.'라고 하겠지만 혼자 영어를 연구하고 말이 통하는 학생과 성인을 가르쳤던 것과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이다.
모든 게 처음인 아이, 이 세상에 태어나 보고 듣고 배우는 게 모든지 처음인 아이에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가르친다는 건 나에게도 늘 도전이자 새로운 학습이다. 어쩌면 이 글 조차도 나에게는 나의 도전들을 기록해놓은 고군투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 아이는 'Mommy, what color do you want?'라는 풀문장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물론 이 문장을 구사한다고 아이가 지금 나와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할 정도의 수준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말하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듣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며 그걸 행동으로 옮기고 되받아친다.
가장 좋아하고 많이 들었던 몇 개의 문장, 아이의 입을 떼 준 몇 가지의 단어로 영어라는 새로운 외국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유는 딱 하나다.
그저 엄마 입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이 방법은 내 아이에게 먹혔고 단언컨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들의 아이에게도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효자손 같은 역할은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준비물은 내 글, 아이, 그리고 엄마. 이게 전부다.
아, 하나 더 있다면 끈기. 조급해하지 말고 작은 단어 하나에도 웃어줄 수 있는 끈기 말이다.
아이는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그 낯설고도 재미있는 언어를 귓등 넘어로라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을 것이다.
아웃풋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자. 아이의 시간표는 길고 우리의 여정도 아직 멀다.
그러니 같이 해보자. 불안 속에서도 웃음을 섞어가며.
우리는 엄마니까. 불안해하면서도 끝내 해내고 마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