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거울 속에는 사진 속에서만 보았던 젊은 시절의 엄마가 서있다. ‘나 엄마 정말 많이 닮았구나, 엄마도 젊은 시절엔 웃음 많은 덜렁이였겠지.’하는 생각에 웃음이 지어진다.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 엄마는 친구들 사이에서 ‘천사’로 통했다. 나는 항상 예고도 없이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집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엄마는 “어, 주영이랑 호선이 왔구나. 잘 지내고 있지?”라고 안부를 물으며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금세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꺼내며 친구들을 환영해 주었다. 나의 생일이 되면 동네 친구들을 죄다 초대하라며 집에서 김밥이며 잡채며 생일상을 차려 손수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있는 집은 참 따뜻했고 집에 가는 길이 기다려졌다. ‘엄마랑 오늘은 뭐하고 놀지?’ 하는 설레는 생각을 하며 신나게 하교하곤 했다. 하교 후엔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엄마가 막 만들어 손으로 돌돌 말아 주는 겉절이 김치를 입을 한껏 벌려 날름 받아먹는 게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초등학생 어느 무렵부터인가 엄마는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워낙 공부나 본인의 일에 열정이 있지만 오빠와 나를 키우느라 잠시 미뤘던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턴 하교하고 집에 돌아오면 보온 도시락에 편지가 적혀있었다. ‘우리 예쁜 딸, 밥 따뜻할 때 잘 챙겨 먹고 놀고 있어.’ 그때부터 따뜻한 엄마 대신 차가운 보온 도시락이 나를 반겨주었다. 보온 도시락은 한편에 밀어두고 엄마의 장롱을 열어 엄마의 향이 진하게 배어있는 엄마 옷을 끌어안고 엄마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엄마를 대신해 오빠의 하교를 기다리고 오빠가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오빠 엉덩이만 졸졸졸 따라다녔다. 엄마의 부재를 오빠에게서 채우고 싶었나 보다.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 아빠의 전근으로 가족 전체가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갔다. 서울의 값비싼 물가와 집값으로 인해 엄마는 아빠와 힘을 합쳐 더욱 열심히 바깥일을 해야 했고,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몫을 알아서 챙겨야 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각자의 몫을 해내느라 정말 바빴다. 아빠는 아침에 출근해서 밤늦게 돌아오시고 엄마 역시 아빠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가사와 바깥일을 만능으로 해냈다. 우리는 방과 후에 학원을 다니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가족 간에 대화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엄마보다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고 엄마보다 친구들이 나를 더 잘 아는 부분이 많아졌다. 엄마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쌓이자 어느새 짜증스럽게 말을 내뱉는 딸이 되어버렸다.
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시집을 가게 되던 전날 밤, 엄마는 이야기했다. “너는 엄마처럼 너무 아등바등 열심히 살지 마. 시집가서도 직장도 편한데 들어가고 그냥 편하게 좀 살아.” 엄마는 항상 본인의 일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말씀하셨지만, 육아와 가사를 만능으로 해내야 하는 직장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같은 여자로서 고스란히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살던 우리 집이 이제는 가끔 가는 친정집이 되었다. 가끔 가게 되는 친정집에 들어서면 나도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 짜증을 내게 된다.
“아니 엄마, 신발이 다 낡았잖아. 아니 옷은 이게 뭐야? 엄마 이제 좋은 거 입고 좋은 거 사도 되잖아!”라고 괜히 툴툴 내뱉으면 엄마는 싱글벙글 웃으며
“엄마는 예쁘니까 아무거나 입고 아무거나 들어도 다 명품이야. 그래서 좋은 거 필요 없어. 사람이 명품인데 그게 뭐가 중요해?”라고 대답한다.
넘치는 자신감과 생활력 하나로 지금까지 가정을 지켜왔을 우리 엄마. 엄마를 보면 나는 왜 괜한 트집을 잡아내려 하는 걸까? 마음속으로는 정말 멋지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데 나는 왜 어느새 툴툴거리는 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모든 걸 사랑해 주는 나의 울타리라 생각해서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내가 되어버리는 걸까. 엄마에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엄마, 그동안 애써줘서 고맙고 사랑해 엄마의 생활력과 넘치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 덕에 내가 이렇게 예쁘게 자랐어. 그리고 자꾸 툴툴거려 미안해. 내 맘은 항상 그게 아니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