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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복덩맘 Apr 29. 2022

우리 아빠

“너는 얼굴은 엄마 닮았는데 성격은 꼭 아빠 닮았어.” 내가 종종 듣는 이야기다.

남편은 늘 이야기한다. “장인어른을 뵈면 여보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어 좋은 것 같아.” 뭐 기분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남에게 친절하고 잘 베풀고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우리 아빠. 늘 겸손하고 허세 없는 아빠의 있는 그대로의 수수한 그 모습이 좋았다. 공무원으로 한 기관의 기관장을 하시면서도 모든 직원들에게 권위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단상 위에서 이야기하는 걸 불편해하셔서 취임식과 퇴임식 외에는 단상 위에서 이야기하는 법도 없었다. 항상 동그란 원형 테이블에 다 함께 앉아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집에서도 아빠는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초등학생인 우리를 앉혀 놓고 가족회의를 해보고 우리 모두가 찬성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찬성하지 않으면 설명을 했고 설득을 하며 함께 가족을 이끌어 나갔다. 친근하고 허물없는 그런 아빠가 좋았다. 우리가 자라난 만큼 아빠도 나이가 들어 아빠는 정년퇴임이라는 걸 했다. 아빠의 퇴임이라.. 실감 나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와 대박 부럽다 아빠 이제 직장 안 나가고 쉬는 거야!? 나도 빨리 정년퇴임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철없는 딸이었다. 30여 년간 한 직장만 다니다가 정년퇴임을 하다니 그 마음이 어떨지 궁금했다. 아빠가 정년퇴임하던 날, 아빠에게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아빠는 "시원섭섭해"라고 대답하였다." 시원해와 섭섭해 중에 어떤 마음이 더 큰 것 같아?"라고 다시 물어보았다. 아빠는 "시원해 가 더 큰 것 같아" 라고 대답하였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때때로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을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두 자녀를 모두 시집, 장가보내고 우리 아빠는 그렇게 정년퇴임을 했다.    

 

술이 미웠을까 아빠의 작아진 두 어깨가 미웠을까. 종종 남편과 친정집에 놀러 오는 주말이면 아빠가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올라온 그 모습이 싫었다. 저녁 자리에서 나는 또 잔소리가 시작된다. “아빠, 술을 그렇게 자주 마시면 어떡해. 나 오랜만에 놀러 왔는데 꼭 술을 마셔야겠어?” 그러면 아빠는 허허 웃으시며 “딸 오늘은 잔소리는 하지 말아.”라고 화답한다. 사위와 술 한잔하는 게 너무 좋으시다는 우리 아빠. 아빠는 사위와 술 한잔 기울이는 게 평생 꿈이었단다. 사위와 함께 술 한잔할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우리 아빠의 붉은 얼굴이 수줍어 보인다. 우리 남편과 술을 짠하는 아빠의 손을 보니 참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싶다. 이제 보니 남편보다 키도 작고 다리도 가늘고 어깨도 작은 우리 아빠. 어릴 땐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슈퍼맨이었다. 20대 후반의 훤칠한 멋쟁이 청년이었던 우리 아빠가 흰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기분이 참 묘하다. 술잔을 기울이며 기분이 한껏 좋아진 아빠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이제 시골로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는 게 아빠의 오랜 꿈이라고 말한다. 가난했던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사과나무 농사를 짓는 아빠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는 아빠는, 60대의 나이에 반짝이는 두 눈으로 이제는 내가 사과나무를 심어보겠노라고 이야기한다. 항상 우리의 꿈을 물어보는 큰 울타리 같은 아빠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아빠의 울타리가 되어 아빠의 꿈을 응원해 주고 싶다. “아빠의 제2의 귀농 인생을 응원해. 그리고 마음만은 하고 싶은 거 많은 꿈 많은 청년처럼 살아주어 고마워.” 추웠던 겨울이 가고 말랑말랑 땅이 녹는 올해의 따스한 봄에는 아빠의 시골 앞마당에는 예쁜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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