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아이를 봐주시면서 나에게 몇 시간의 자유시간을 선물해 주신다. 며느리의 집에 오시는 날은 본인 밥이나 음료는 신경 쓰지 말라며 커피는 집에서 직접 텀블러에 담아 오시고 식사는 집에서 나오기 전에 먹고 나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매주 꼬박 오셨던 시어머니에게 카톡이 왔다.
"이번주는 사정이 있어 못 갈 것 같아."
어떤 약속보다 아이를 봐주시러 집에 오는 약속을 우선시하시는 시어머니라 약간은 의아했다. 궁금함에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시어머니는 말을 머뭇거리신다. 다시 한번 여쭤보았다.
"어머니, 무슨 비밀 있으세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그제서 입을여신다.
"사실은 내가 어깨가 너무 아파. 요새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가도 손주를 못 안아 줄 것 같아서 못 가보게 되었어."
건강이라면 자신만만하시던 어머니시다. 집안 대대로 통뼈에 탄탄한 허벅지를 자랑하시며 마트에서 한번 장을 보시면 양손 가득 4~5개의 비닐봉지를 가득 담아 번쩍번쩍 드시고는 나는 튼튼해서 괜찮다며 며느리의 짐마저 본인이 드시려고 하시는 분이셨다. 그런 어머니가 어디가 아프시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덧붙이신다.
"나 아무래도 이제 늙었나 봐."
통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저녁이 되어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낮에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남편의 표정에 걱정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 엄마도 이제 늙나 보네, 슬프다."
담담한 '슬프다'라는 단어에 묵직한 무게가 실려 나에게 전달된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늙어감에 대해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죽음에 대한 다소 묵직한 주제를 나눴다. 대화의 흐름은 부모님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자, 죽는 거 무섭다, 하나님 잘 믿자. 등등의 예상치 못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바로 '가족사진'이다. 왠지 이 순간이 부모님의 가장 젊은 순간이 될 것만 같다.
"오빠, 우리 가족사진 찍자. 내가 예약할게!"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성격 급한 나는 당장 이틀뒤인 주말로 시부모님 댁과 가까우면서 그나마 세련되어 보이는 사진관을 예약했다. 예약을 걸어두고 나니 손주, 자식, 부모님 삼대가 함께 찍는 사진이 처음이라 무언가 두근거린다. 바로 시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가족사진에 대해 말씀드리니 급작스럽지만 알겠다고 하신다. 성격 급한 며느리로 인해 이틀뒤, 우리는 급작스럽게 가족사진을 찍었다.
카페에 앉아 단 한 장의 사진을 선택해야 하는 사명감을 지닌 채 몇백 장이 넘는 원본을 차례차례 넘겼다. 어쩜 이렇게 다 같이 잘 나온 사진은 한 장도 없는 건지 의아할 정도다. 아들과 남편과 시부모님의 각기 다른 얼굴이 굳었다가 떨떠름했다가 웃었다가 박장대소하는 모습들을 보니 이 순간을 남겨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사진에는 부모님의 흘러가는 시간과 아들의 성장하는 순간이 함께 담겨있다. 앞으로 종종 말씀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