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소주, 난징을 통해 청도로 나오는 여정에서
이번 중국 여행은 한중대형산학협력과제라는 과제 수행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중국을 오래간만에 간 셈인데, 제일 처음 갔던 것이 거의 20년 전이니, 그때의 중국과 많이 달랐다.
당시에 상해 푸둥 앞에서 뗏목으로 강을 건너봤는데, 지금은 정말 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다. 300km가 넘는 고속철이 전국 철도망을 연결하고 있었다. 고속철 연결망이 우리나라 전철처럼, 내린 곳에서 바로 갈아탈 수도 있었다.
기차도 아주 넓고 좋았다. 우리나라 KTX 비용이면 1등석을 타는데도 많은 이용자가 있었다. 사람들도 훨씬 더 깔끔하고 길도 훨씬 깨끗했다.
창으로 지나가는 농촌의 모습도 과거와 달랐다. 아파트들이 잘 정돈되고 폭탄 맞은 것 같은 집들도 거의 안 보였다. 여전히 화장실 휴지가 없고 변기가 지저분했지만 모든 부분이 예상 밖이었다.
그런데 시외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는 데도, 관광지 출입을 하는 데도, 신분증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얼굴을 찍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은 말을 잘하면 제외되는 융통성이 있었다.
이 나라는 최고통치자를 공공장소에서 언급하면 안 된다. 간첩죄로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인사말로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폐수 방류를 언급했다. TV를 봐도 중국 현대사 주제의 연속극, 성실과 최선을 강조하는 쇼프로.
나는 중1 때 조지오웰의 1984년을 처음 읽었다. 곳곳의 카메라, 웃는 모습과 최고의 성실함. 그리고, 제법 우수한 수준의 삶, 그러나 통치에 위협이 될만한 어떤 것도 추호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 아마도 잠시의 순간이었지만, 오래 살기엔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서비스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좋은 사람들은 성실하고 친절했으나, 소통보다 노력의 산물 같았다. 내가 미안할 정도로 과한 친절이 종종 보였다. 그래서 좀 떨어져 있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국내 관광이 풀리고, 시골의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 역사 관광지로 몰렸다. 평일에도 엄청나게 많았다. 외국인은 거의 없었는데, 여행 가이드가 영어로 내 옆에서 계속 설명하니, 꽤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쳐다보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래서 이들이 시골 출신인가 추측했다. 이 정도 발전한 도시에서 외국인이라고 시선을 의식하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를 다른 문화에서 돌아볼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대면대면함, 그래서 만나면 공통점 찾기부터 하고, 찾게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성을 술 같은 것으로 눌러야 본심을 조금 드러내고 자기의 착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공자의 영향일 것 같지만, 난 사람들의 이런 성향을 공자가 정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국적 사회에서 한중일, 심지어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성향은 동아시아에 넓게 퍼져 있다.
그러다 보니, 소통이 부족하다. 협력과 상호작용이 부족하고, 그래서 한편 SNS가 유독 활발하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가려줄 장치가 군주요, 정치요, 신이요, 이제는 스마트폰이다. 이들 뒤에 숨어야 비로소 말을 한다. 권력은 왕과 통치자, 신,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나오고 이들은 서로 견제한다.
실제로 최근 중국은 인플루언서들을 허가제로 바꾸어 관리한다. 유튜버나 틱토커 들은 때때로 큰 빌딩에 집합적으로 관리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영향은 어느 수준까지 효율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 모든 에너지는 정치로 치환되어 관리된다.
종종 외국 것에 대한 부정적 표현에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쓰는 폴더폰의 성능을 보기보다 기존 삼성폰의 폭발 사건을 언급했다. 이것 말고도 많은데, 새로운 것을 보면 이미 공식처럼 튀어나오는 표현들이 있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 지성인과 과학자들은 있는 것을 그대로 본다. 자신들이 들어서 아는 것에 대해 표현을 삼간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보편적 수준의 판단을 지배하는 의견이 중요하고, 그것이 사회 발전의 속도를 결정한다.
동행한 필리핀 출신 학생 이안에게 나는 종종 단순하게 설명한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중간쯤 어디인가에 있다. 그게 더 강한 시너지가 될 때도 있고, 발전을 막을 때도 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사람들과 이야기한 것을 되돌아보길 좋아한다. 어떤 단어 맥락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물가 상승, 부동산 대란, 개인주의, 인구 감소 등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한 애국주의, 이념 과잉, 비과학, 이기주의로 파생된 전통적인 개념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통적 가치에서 우리의 현재를 보려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이 동아시아 사회의 공통점 중 하나다. 이 모든 단어가 행복, 성실, 자유, 사랑 등등의 단어였다. 1984년 소설에서, 사회를 지배하는 이 단어들이 의미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사진의 고속철도는 열차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있다. 이 열차들의 이름은 전부 어떤 덕목들이다. 다 좋은 말들이다. 공자의 '인'은 good 또는 nice를 의미한다. 중국은 사람들에게 이 덕목을 강조하는 게 우연도 아니다. 그렇게 good에 멈춰 있어야 great의 위협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의 티켓에 있는 Qufudong은 공자의 고향이다.)
나는 역사박물관을 보며 100년 밖에 되지 않는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보게 되었다. 야망은 허무하며 쓸데없다는 개념을 주지하는 듯하였다. 이것은 동아시아가 내부적으로 긴장을 지속하며 바깥세상을 거부하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루쉰의 '아Q'는 사실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했다. 그나마 남북간 경쟁, 한중일 삼국 간 경쟁에서, 미국과 서방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끌어들였던 한국이 현재까지 잘해 왔지만, good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기는 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의 사상적 문화적 덫에서 피해나갈 수 있었기에 물질적 번영이 있었다. 단절이 심화되고 리스크가 증가하는 국제 환경에서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이 부분에서 다르게 반응해야, great의 세계로 갈 수 있다.
10월에는 일본의 니이가타를 가기로 했다. 세계 최고의 쌀, 고시히카리의 고향이다. 중국 시장마저 최고쌀 기준이 되어버린 고시히카리와 일본쌀. 그 정체는 뭘까. 나는 내가 발로 밟고 만지고 먹고 느끼는 것만 가지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50대는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