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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중현 Sep 16. 2023

LP 시대의 부활

킹크림슨 50주년 LP 커버를 보다가

킹크림슨의 50주년 박스세트 중에 초기 LP를 모은 것이 있어 샀지만, CD가 있는 것은 일부러 비닐을 안 뜯었다가 오늘 듣는다. 


자세히 보니, 커버의 색과 톤이 조금 다르다. CD도 오래되어 색이 바랬다. 그것을 수십 번 들었기 때문에, LP를 올려놓고 들어보니, 같은 오디오에서도 분명 음색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나에게는 수천 장의 음반이 있다. 카셋테이프도 많이 버렸지만, 가장 좋아하는 2백 개 정도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후에 CD가 보편화되어, LP는 구하지를 못했었다. 그래서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음원은 CD 음원이다. 


당시에는 한 장 사기에도 벅찬 금액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CD의 가격은 별반 차이가 없다.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10000원대 초반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CD는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의미다. 인기 없는 것은 중고로 팔면 1000원 정도 된다. 


그런데, 희귀 음반 들은 30-40만 원 짜리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컬렉션이 어느 정도 확보된 지금, 내가 구입했을 때의 가격을 보존하고도 남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아니고, 가치가 상승한 셈이다. 


당시에 오디오는 사지 않겠다고 했다. 오디오는 기계요, 그것은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빈티지 오디오라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구매력을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구매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스피커 하나의 가격도 1억 원짜리가 있다고 들었다. '1억'하면 비싸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과거에 집 한 채 가격의 스피커와 앰프가 있었던 시절을 고려하면, 최신형의 최고급 오디오 세트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하락한 셈이다. 


음원 공개 시절에 무슨 음반이냐 하지만, 절대로 그것으로는 최고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각 아티스트들과 엔지니어들이 구현해 내는 '장인정신'을 경험할 수도 없다. 더욱이 음원은 수시로 사라지고 사실상 듣고 싶을 때 듣기도 어렵다. 음원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는 실험적 아티스트들의 공간을 없애 버렸다. 


난 출퇴근에 서너 시간을 쓰고, 종종 해남을 다녀오면, 차 안에서 10시간 이상을 쓴다. 나 혼자 또는 몇 이서 음악을 듣는다. 렌터카를 써서 오디오를 강화할 수는 없고, 심지어 요즘은 카오디오는 정말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전기자동차 시스템이 확충되고 자율자동차 시절이 오면, 정말로 오디오 시장은 다시 확장될 것이다. 집에서 크게 듣지 못하던 음악을 제대로 된 공간에서 들을 수 있는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이 스피커 브랜드 '하만'을 인수한 것 아니겠는가. 


다시 LP 플레이어는 충격을 최소로 하는 시스템이 인기를 끌 것이다. 그런 고출력 고음원 시장에 적합한 것은 역시 전자음원도 아니요, LP다. 아티스트의 음 한 개 한 개에 담긴 정성과 따뜻함은 아날로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킹크림슨의 최초작이자 최고작을, 적당한 크기의 커버 사이즈로 보고 있자니, 위대한 작품은 시간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것을 놓고 각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음악은 '타임슬립'을 현실화하는 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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