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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중현 Dec 26. 2023

구분할수록 존재가 사라진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와 유전학 강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안 읽으면 죄책감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사놓았었다. 


지난 학기에 학생들에게 '생명산업유전학'이라고 제목을 붙인 - 실제로는 그냥 유전학입문 교과서를 이용하지만 -  과목을 강의하였다. 


많은 교수들이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강의를 거의 구분하지 않고, 대부분 DNA와 형질 발현 부분을 강조하고, 대부분 강의를 그것에 할애한다. 


그러나, 나는 강의를 하면서 꺠달았다. '생명산업'에 필요한 유전학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히려 'DNA-단백질-형질', 이른바 central dogma에 이론에 입각한 유전학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분자생물학, 생화학, 세포생물학에서 더 자세히 배워 충분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어떤 유전자에 대하여 다수의 대립유전자가 있는데, 개체들은 그것의 일부만 가지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왜 집단은 개체와 다를까? 그리고 집단은 어떻게 구분될까?


유전학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사실, 인간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궁극적인 질문, 즉 '존재론'이 웅크리고 있는 이상, 유전자 담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우생학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그것은 히틀러와 근대 미국을 휩쓸고, 소련을 휩쓸고 지나간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사람 간의 차이를 우열적 개념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리고 섞이려 하지 않는다. 


'생명산업유전학'이라면, 유전학을 본격적으로 활용하여 생명산업의 발전을 꾀한다는 의미가 잠재되어 있다. 그 생명산업이란, 사실 '같고 다름'을 구분하는 철학적 기반에 형성되었을 때, 유전학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 '같고 다름'이란 의미적으로 이미 차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과하게 해석하면 꼭 문제가 생긴다. 


우리 개개인, 그리고 동식물과 미생물조차, 꼭 같은 개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그 개체들도 여러 면에서 비슷한 수준에 따라 그룹 지워지고, 그 그룹 간의 교류에 따라 유전자의 흐름이 생긴다. 유전자의 흐름이 보다 원활한 관계라면 같은 종이고, 그렇지 못하면 다른 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형태적 종' 구분이 더 실질적이다. 분류학은 생물의 형태적 이해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의 이해는 더욱 넓어졌다. 생리학적 이해, 그리고 유전학적 이해가 더해지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어떤 과학자라도 과도하게 한 이론에 몰입하면 한 번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험에 처한 것이다. 


'구분을 할수록 존재가 사라진다' 


나는 다음 해부터 이 과목을 강의할 때, 아예 central dogma를 제외할 것이다. 멘델유전학, 계통유전학, 통계유전학, 집단유전학을 중심으로 강의할 것이다. 사실, 이번에도 그렇게 강의하였다. 이 분야는 '개체' 수준의 유전학에서 '집단' 수준으로 생명현상의 이해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분야 또한 DNA 등 세포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기존의 중요한 골격 하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전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이'라는 이름으로 변화하며, 그 변이는 한 개체가 아닌 집단의 수준에서 퍼져 나가고 후대로 전달된다. 단절되고 융합하면서 유전자는 말 그대로 '유전되고 흐른다'.


종자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학문인 육종학은 유전학 만으로 현상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 손을 대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유전자뿐이므로, 유전자 담론에 몰입한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유전자도 세포외환경(이것을 우리는 보통 '환경'이라고 한다)과 세포내환경의 지배를 받고, 심지어 그 환경의 크기가 보통 더욱 크다. 


그 실체를 알고 조절을 하더라도, 우리는 그 조절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지를 직접 관찰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AI도 그렇게 설명하던데, AI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유전자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은 더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 AI 알고리즘이 유전자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책임 있게 공부해야 한다. 지나치게 환원적인 사고가 많은 것을 망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지나친 채, 전체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쪼개고 나누고 그것만 다루다가, 결국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 망상은 너무나 강력해서, '카리스마적'이고 '매력이 넘치고', '명쾌하다'. 그러나, 나에게 생물은 그렇지 않아서 매력이 있다. 정의를 하면 할수록 파괴적이다. 그 전의 내용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그럭저럭 합의를 하는 수밖에 없다. 체계는 멋있지만, 실제 사용하기에는 참 어렵다. 


현미경을 썼다가 망원경을 썼다가 하면서 바라보는 것이 세상이다. 그렇게 강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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