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 적응, 순응 중에 대응과 적응하기
2012년에 만든 자료였는데, 2024년이 되었다.
이 중 일부는 해 내었지만, 대부분 먼 길이다. 기관이나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이 일을 수행하다가, 중간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은 이런 체계를 살필 수 없었다.
이런 일은 매우 장기적으로 집착이 강한 학자가 진행해야 한다. 국립식량원 남부작물부의 이종희 박사팀 등은 꾸준히 유용 유전자 pyramding으로 좋은 재료와 품종을 개발해 오고 있다.
나는 국제벼연구소 재직 시절 비생물스트레스 내성 중심으로 중요 형질을 집적하는 일을 담당한 책임연구원이었다. 당시에는 각 형질의 주요 유전자와 꼬리표를 모두 달아서 추적하는 일이 정말 비쌌다. 그렇지만, 육종체계는 충분히 설계할 수 있다.
시퀀싱 기술이 발달하여, 전장유전체를 분석하는 비용이 저렴해졌으니, 이제는 염색체 단편의 크기를 추측하기가 쉬워졌다. 비생물스트레스는 기후변화나 비료반응, 생산성과 품질과 매우 밀접하고 관여 유전자가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그 유전자들도 염색체에서 진화의 성과로 어느 정도 뭉쳐있게 마련이다. 전문적으로는 co-inherited 한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염색체 단편들 내에서는 어떤 특정 교배 조합에서만 겨우 분리되어 떨어지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노력이 든다. LMO를 사용하지 않는 non-LMO 방식인데, '분자마커'를 사용한다는 말을 LMO 방식과 구별하지 못하는 '무식한' 기자들 때문에, 생명과학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물론, LMO를 부정하지 않는다. 현 법제 하에서 현실적인 실용화 경로의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편, 관여 유전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은 유전자 편집이나 외래 종 유래 유전자 형질전환 도입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양적형질유전자좌 활용은 분자마커법을 활용하고, 어느 정도 성숙된 모본은 DNA 염기서열 분석과 분자생물학으로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고, 해당 유전자를 fine-tuning 하는 차원의 유전자 편집 또는 돌연변이법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중에서, 어떻게 하면, 교배 수를 최대한 줄이면서, 중요한 기후변화 대응 형질을 조합할까 하는 고민을 먼저 했었다. 그것이 이미 12년 전이다. 내가 떠난 그 기관이나 우리나라나 그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세 가지 측면이 있다. '대응', '적응', 그리고 '순응'.
비생물스트레스 저항성 연구는 '적응'의 관점의 이야기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시간을 늦추는 일은 할 수 있을지언정, 아예 제거할 수는 없다는 가정에 근거를 둔다. 우리는 생산량을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인간의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연구는 성과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수 없다. 기후의 변화 이행 수준에 따라 점진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매우 장기적인 양상에 따라 검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도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다. 가장 현실적인 연구다.
농업 생산에서, 물과 화학비료 사용을 줄이자는 연구는 '대응'에 해당하는 연구다. 생산량을 늘리되 메탄이나 아산화질소 발생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것은 드라마틱하고 결과가 단기간에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육종학자 입장에서는 '대응'이나 '적응'이나 같은 포장에서 연구하고, 같은 유전자들의 양면적 측면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 원래 생태계가 그런 것이다. 서로 되먹임의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순응'이란 법제 체계를 말한다. 이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규제과학의 영역이다. STEPI의 이주량 박사 초대로 몇 번 STEPI를 가서 관련된 내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용훈 박사가 주도하는 농업에서의 규제과학 영역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작물의 대응과 적응 능력에 대한 정량적 평가 수준을 과학자들이 제시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이번 R&D 사태에서, 우리는 '멸망의 시계' 24시 자정에 더 가까워졌다. 이미 탄소발생량은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고, 기온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농업에서의 탄소 발생 저감에 대해서도, 집중력 있는 토론도 사그라지고 있다. 과학기술자들의 문제 제기도 몇몇 공부 안 하는 초급 기자들이 연습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도 아니고, 갈 길도 멀다. 단지 '선진국' 노래 부르던 것이 2년 전이고, 스스로 예찬을 하는 사이, 세상이 다 이상하다고들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하는 방법, 교양을 쌓는 방법 등은 구태의연하다고 찬밥 신세며, 진지한 사람은 인기도 없다. 대화의 내면을 살피는 사람은 적어지고, 꾸준한 사람을 순진하다고 하는 사회다. 자신의 경험만이 최고이고,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무시하는 사람이 지천이다. 우리 모습을 바라보려는 자를 소외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앞으로 전진하려는 사람은 쉬지 않는다. 잠시 쉬었다가도 다시 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만큼 왔다. 스스로 공을 논하는 자는 그 수명이 짧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