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의 사진집을 하나 구해 놓고, 이 사진집을 음악서적들과 함께 놓았다. 사진집이지만, 자기 노래의 기원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글귀 때문에 사게 된 사진집이다.
아마도 듣기에 한대수는 이제 은퇴를 선언했고, 이 사진집은 그런 식의 회고집이리라. 유창한 글보다는 개성이 강한 소리와 가사가 더 자연스러운 가수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이렇게 스스로 찍은 사진들로 '던졌다'.
그래서 독자서평을 보면 이상하지도 않다. 이런 책을 왜 만들었느냐부터, 돈독이 올랐다는 등의 힐난하는 댓글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이 사진들을 가만히 보자면, 사진을 찍기 전의 한대수를 상상해야 한다.
사진기를 들고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찍어야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떤 것을 보고 무엇인가 막연히 떠오를 때, 그제야 사진기를 들고 찍었을 한대수가 떠오른다.
이제 나의 상상력을 그의 사진 바깥 어딘가의 위치에 두고, 그의 몸에 빙의를 하면, 이 사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종종 느껴지기도 한다. 흑백이 칼라로 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아직도 다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노래만큼, 딱 그 수준이라도 사진을 이해하게 된다(다시 말해,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대수는 그렇게 살았고, 이해받기를 거부당하고 또 거부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도 그렇게 당연히 찍혀야 하고 값이 매겨졌어야 하는 그런 사진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의 독백은 길 수도, 또 짧을 수도 있다. 그것은 이 설명 하나 없는 사진을 하나하나 보고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속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