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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중현 Apr 19. 2024

고기는 왜 비싸도 되고 채소는 싸야 하는가


고기는 비싸도 되는데, 채소값은 싸야 된다는 소비자 심리. 


나는 농산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참 '이중적'이야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옳고 그르다 하기보다 하나의 특성으로 해석해야 한다. 


최근 '파값'이나 '사과값'이 소비자의 초미 관심사가 되었다. '왜 하필이면 파값이야?'라고 생각했다. 


내 교양 강의 자료의 한 슬라이드를 가져와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왼쪽의 그림을 보면, 9개의 박스로 나누어진 농식품군을 살펴볼 수 있다. 가로축은 구매량, 세로축은 가격이다. 


정육 제품은 가격이 비싼 제품을 오히려 더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보이며, 반면, 채소류는 가격이 쌀수록 더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쌀은 가격도 그럭저럭, 구매량도 그럭저럭 그렇게 보인다. 


이 9칸 중에서 정육/과일/채소의 운명을 설명할 수 있다. 정육과 채소는 과일보다 가격 변동에 더 예민하다. 채소는 가격이 낮을수록 확실히 더 많이 구매하는 속성을 가지는데, 파 한 단의 몇 백 원에 절절매는 성향을 그대로 설명해 준다. 그러니, 뉴스에서 직접 다룰 수 있는 소재인 셈이다. 


그런데, 육류, 특히 소고기는 부위에 따라 세밀하게 나누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부위별 판매 및 저장 방식, 유통 방식 등의 차별화를 두어, 가격을 더 높이고, 그것이 특수 판매 시장(선물) 등에 활용되기 좋으므로, 소비자는 가격에 대하여 더 관대하다. 아니, 더 좋은 고기를 찾는 셈이다. 


한편, 쌀의 운명이 재미있다. 가격도 그냥저냥/구매량도 그냥저냥이다. 정부가 오랫동안 가격 조정에 개입해서 그런지, 가격 차이에 의한 상품의 질적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쌀은 가격이 싸더라도 더 많이 사지 않고, 비싸더라도 덜 살 수 없다. 식량이기 때문에, 늘 먹는 수준에서 일정량을 구매하게 된다. 구매의 판단 기준이 다른 것들과 다른 셈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간단히 물어봤다. '소고기의 부위를 몇 개나 말할 수 있는가?' 한 명의 학생이 10개 부위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쌀의 종류는 몇 개나 말할 수 있는가?' 한 명도 없었다. 소비자의 가격 대비 구매 수준의 정도, 즉 '관여도'를 고려하여, 쌀의 가격을 올릴 수 있을까?


그 핵심적인 차이는 '구분하기'와 '차별하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 쌀눈이 큰 현미를 생산 및 판매한 적이 있다. 이 쌀은 소량 생산되는 유기농쌀이었고, 쌀눈의 영양성에 상품성을 기대한 것이다. 현미이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식이섬유를 많이 섭취하므로 다이어트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콘셉트를 팔고 싶었다. 


수없이 많은 시도를 했지만 별 수 없었다. 바로 '쌀은 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굉장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12살이 많았던 영업이사님의 동물적 감각이 빛나는 것이었다. 평일 오전 11시쯤의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 데리고 갔다. 우리 제품이 그때 행사를 하고 있었다. 대낮에 소수의 사람들이 지나는 장소에서 행사라니!


그런데, 가만히 보니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연예인, 아나운서, 돈 많은 중장년 여성이 많았다. 매장의 앞에는 잘생긴 남자들이 아닌, 늘씬하고 방정한 여성 아르바이트 점원들로 배치했다. 고객들이 와서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을 듣고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는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명품 마케팅'. 쌀 700g을 15,000원에 팔았는데, 다른 어떤 영업 방식보다 가성비가 높았다. 


기술적으로 제시된 수많은 이야기보다, 더 확실한 방식의 마케팅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 주고, 왜 남자가 아닌 여자 점원이 유리했을까, 왜 하필 저 시간대에 행사를 했을까, 하면서, Place와 Price, Promotion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다. 물론, 그만한 차별성 있는 Product, 즉 '차별화'와 '구분하기'의 좋은 예라는 말도 해 줬다. 


나는 이런 상황이 농식품이 가장 극적인 사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공산품이나 서비스는 품목별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는 반면, 농식품에 대해서는 그냥 뭉뚱그려 쌀과 고기, 채소, 과일, 가공식품을 구별하여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즐기는 자연' 교양과목의 학생들 중에 농식품 생산자가 될 학생은 극소수일 것이다. 대부분 인문, 예체능, 공대,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몇몇 자연과학 전공자가 있다. 그들은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의 삶을 누릴 테지만, 소비자가 얼마나 '구분하고', '차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러한 소비자들이 정착한 문화에 맞추어 트렌드로 이해하고, 생산자와 개발자는 역시 더 '정밀하고', '세밀한' 상품의 정의를 내려야 하고, 그러한 상품을 개발하고 공급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육종의 7P'라고 말하는 식물 개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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