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개인대출 대란'이 전세입자 실수요자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킨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지?
올 초에 계약을 '무사히' 하고 1년 차를 살고 있으니, 내년 말까지는 시간을 번 것인가?
우리 가족은 영악하게 돈을 벌고 쓰는 사람들은 못 되는 것 같다.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고, 돈을 쓸 때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 생각하는 수준에서 살았다.
어느 기사에서는 '가장 성공한 흙수저도 금수저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어릴 때에는 잘 몰랐다. 부잣집에 놀러 갔다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느낌을 어머니에게서 받았을 때, 그냥 집에서 노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던 아이였다. 아니, 사회 분위기가 부를 대놓고 자랑하는 것을 경망하게 생각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부동산게임인 '부루마불'을 하면서, 손에 가짜 돈을 쥐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좋게 보지 않았던 때다. 아니, 그것을 좋게 보지 않았던 집이 가난할 수밖에 없었음을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물려받은 것은 그럭저럭 강인한 정신력과 신체, 그리고 조금 공부 잘했던 머리였다. 생존을 위한 기반인 땅과 집, 그리고 적절한 크기의 자산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40이 넘어서야 느낄 만큼 둔감했다.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종종 작은 일도 큰일이 되어버리는 일상을 체감해서야 안 것이다.
아내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수술을 해야 할 때, 수십 만원에도 긴장했던 내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처세술과 돈 버는 이야기를 쓴 책을 보았던 것 같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가 나에게 충격적인 책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래도 성실함이 최고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늘 진지하고 고민하고 세상 걱정 한 몸에 다 안고 살았던 인생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친구들 중에 큰 부를 쌓는 친구들이 보이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잘 사는 친구들도 보이고, 그런 친구들의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종종 보게 되었다.
'평범함'
인생은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격정이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나의 삶은 잔잔한 파도타기였다. 작은 파도에도 흥분하는 아이처럼, 감정적으로는 큰 골이 남았던 트라우마도 사실 그 많은 인생의 이야기 속에서 볼 때에는 잔물결이었을 뿐이었다.
내년에 50이다.
평범함에 감사하고 산다. 20대에는 TV도 보지 않았다. 내가 TV에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인가 했다. 그런데, 지금은 TV에 나오는 수많은 골치 아픈 이야기와 군상들을 보면서, '아, 나는 저 중에 하나가 아님이 얼마나 다행인가'한다.
내가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세상에 스며들어, 그것을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감사함을 느끼고 공유하는 세상이 되길 기도한다. 나보다도 내가 사랑하고 돕는 사람들이 더 빛나기를 바라며,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도했던 '일용할 양식'이 광야를 헤매는 민족에게 떨어진 '하루의 만나'처럼 매일 떨어지길 기도한다.
지극한 평범함이 가끔 '나약함'이 되어, 세상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이상한 실수를 하더라도 용서받기를 바라며, 그것이 과한 욕심이 아니었다면, 가끔은 신이 한쪽 눈을 감아주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길 기도한다.
순간순간 작아지는 나약한 가장이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은 '평범함'을 인정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