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옆집 아빠, 우리 아빠는 옆집 엄마

조금은 이상한 벼 가족 탄생 이야기

by 진중현

앞에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기 위하여, 꽃가루(약실)를 제거하는 과정인 '제웅', 그리고 한쪽의 꽃가루를 다른 쪽에 옮겨주는 '교배'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 '새로운 품종의 벼를 만드는 그 시작'을 참고해 주세요.


그럼 교배를 하여 얻어진 종자가 어떻게 맺혔는지 한번 볼까요?

여러 가지 벼 중에서도 종자의 껍질('종피'라고 합니다)에 색이 있는 벼를 '유색미'라고 합니다. 오른쪽 그림은 유색미가 교배된 이삭에 씨앗이 맺힌 것을 보여줍니다.


8월 12일에 제웅을 하고, 그다음 날 교배를 하였으니, 약 2주일이 경과되어, 오른쪽과 같은 것이 되지요. 물론, 그동안은 교배된 이삭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반투명한 종이봉투로 씌워 놓았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직도 종자의 끝에 암술머리가 붙어 말라 있는 것이 보입니다. 씨앗은 암술 아래에 위치한 씨방이 커져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한동안 저렇게 있다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저 씨앗은 굳이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현미'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벼꽃을 둘러싸고 있으며, 흔히 꽃잎으로 착각하는 '영' 안쪽의 실제로 쌀알을 둘러싼 껍데기인 '과피'와 '종피'가 남아 있는 '현미'인 것이죠.


꽃잎과 영은 다릅니다. 벼는 꽃잎이 없고 대신 '영'이라는 것이 쌀알을 둘러싸고 있지요. 꽃잎은 씨앗이 맺히기 전에 벌어져 피어 있다가, 수정이 되면 떨어져 없어지지만, 영은 수정 후에 남아 씨앗을 감싸고 씨앗이 성숙하도록 돕는 일종의 '틀' 역할을 합니다.


한편, 교배를 하지 않은 일반 이삭은 이렇게 현미 상태인 쌀알을 실제로 볼 수가 없습니다. 영으로 감싸져 있으니까요.


이 벼는 엄마 쪽이 '흑미'라고 하는 검은색 과피를 가진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진짜 이름 그대로 '玄(검을 현)'자 쓰는 '현미'가 되었습니다. 보통의 현미 라면 갈색을 띤 것이죠.


이 벼알들은 아빠와 엄마가 모두 같습니다. 아빠로 쓰일 품종의 꽃가루를 한 번에 털어서 교배하고, 다른 꽃가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봉투로 씌워놨으니, 그렇게 믿어도 됩니다. 물론, 이 중에는 실수로 남아있던 엄마로 쓰일 이삭에 남아있던 꽃가루가 수정을 할 수도 있어서, 다른 종자들과 유전자 구성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같은 저 씨앗들은 모두 자매입니다. 사람의 경우에 관용적으로 '형제'라고 쓰는 경향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만, 생물의 세계는 모계 사회적으로 용어를 씁니다. 저들은 모두 '자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벼는 사람과 달리 한 몸에 엄마 역할, 아빠 역할을 하는 기관이 모두 있습니다. 암술과 수술이죠. 앞에서 말했듯이 실수로 아빠 역할을 하는 수술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면, 자기 유전자를 그대로 다시 활용하여 수정되어 만들어진 씨앗도 함께 있게 됩니다. 그럼 이것은 '씨 다른 자매'일까요? 자기 몸에서 나온 씨가 수정된 것이니 적절한 표현일까요?


그럼, 좀 다른 이야기를 해 볼게요.


오른쪽의 이삭도 교배가 된 이삭입니다. 앞의 그림과 달리 씨앗의 색이 녹색이죠. 더 익어서 완전한 씨앗이 되면 황갈색이 될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황갈색의 과피가 있는 쌀을 '현미'라고 하는 것에 의문이 있습니다.)


여기서 퀴즈입니다. 이 두 이삭은 모두 같은 두 개의 품종을 이용하여 교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른 자식들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눈치가 빠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위 그림은 검은 쌀인 흑미가 엄마였고, 아래 그림은 보통의 색을 가진 쌀을 만드는 벼가 엄마였습니다.


씨앗을 둘러싼 과피의 색은 엄마가 되는 벼의 쌀 과피의 색과 같습니다.


사람과는 좀 다릅니다.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면 그 아이는 어떤 피부색을 가질까요? 흑인일 수도, 백인일 수도, 중간일 수도 있습니다. 피부색이 엄마의 피부색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벼를 비롯한 많은 식물들은 과피의 색이 엄마의 색입니다. 과피는 엄마의 세포 그대로 발달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이삭의 씨앗들도 모두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매'간일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또 하나의 퀴즈를 내어 볼까요?


이 두 이삭에서 나오는 씨앗들도 '자매들'일까요? 두 이삭에 있는 씨앗들 모두 같은 두 개의 식물에서만 유래하였으니, 자매들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가 바뀌어 있으니, 무언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들 사람이라면 불가능하지요. 아빠는 아빠, 엄마면 엄마일 텐데, 벼는 엄마/아빠 역할 모두 하니, 이런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게 됩니다. 당장에는 이들이 모두 자매인지 아닌 지에 대한 답을 드리기가 어렵네요. 한 이삭 내에 있는 것은 자매가 맞으나, 엄마, 아빠가 바뀌어서 만들어진 씨앗은 앞으로의 운명이 매우 달라집니다.


그 비밀은 식물의 수정 방식이 독특해서 그렇습니다. 씨앗 중에서도 장차 싹이 되는 '배'를 만드는 것은 난 핵과 정핵이 하나씩 만나 만들어지지만, 이 배가 자라게 하는 '배유 또는 배젖'을 만드는 것은 극핵 2개와 정핵 1개가 만나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중복수정'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씨앗 안에서도 장차 새로운 식물이 될 부분과 그것을 키워주는 영양분이 될 부분에서 유전적 결합 및 교환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결국 같은 이삭의 씨앗들은 유전자가 동일한 '자매들'이지만, 다른 이삭의 씨앗들은 배유 유전자의 구성이 엄마 쪽이 2/3인 구성이 되므로, 유전적인 입장에서 보면 완전한 자매들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좀 어렵나요?


'우리 엄마는 옆집 아빠, 우리 아빠는 옆집 엄마'인 이 두 가족은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파란만장한 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한 이삭에서 나온 씨앗들을 뿌리면 일단은 모두 똑같이 자랍니다. 그런데, 이 식물들이 새로운 씨앗을 만들 때, 그 안의 유전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새롭게 조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그러나 묘하게 엄마(아니 아빠를) 닮거나, 아빠(아니 엄마를) 닮은 식물들이 나오게 됩니다.


종자를 개발하는 육종가는 이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아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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