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벼를 함께 키워야 한다 - 무너진 시스템 복원하기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다는 것은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을 기른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다는 것이 신기한 식물체 한 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식물이 실제 농민들의 손에 들어가게 하려면, 수십억 개의 식물이어도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개를 만드는 것은 생명공학이나, 수십 억 개를 만드는 것이 육종학이다. 그래서, 이것은 그냥 순수과학이 아니다. 오히려 경영학이다. '경영이란 한 명의 천재의 성과를 모두가 누리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인용한 것이다.
육종을 하는 기간이 길다. 십 년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이 꾸준히 책임을 지기 어렵다. 어느 한 작물과 목표를 상대로 진행할 수 있는 전문가는 대체로 주요 작물이라도 다섯 손가락에 들어간다. 벼도 예외가 아니다. 유전자와 형질을 연구하는 자는 많으나, 그것을 실제화시키는 개인은 사실상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스템이 일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종은 저개발 국가의 정부나 글로벌 기업 수준의 대기업에서 진행할 때 그 성과가 크게 나온다. 우리나라는 고성장 국가이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변화, 다양화된 시장과 환경에 대응하기에 필요한 고기술의 중견 농기업의 출현이나 지역 중심 육종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의 장립종 과제는 그렇게 처음에 기획이 되고 아이디어가 제안되었다. 그런데, 소비자 취향 대응, 시장 확대 방안, 기후변화 대응 방안 이외에 국가 식량 수급 조절 방안의 정책적 요구가 결합하면서, 그 규모와 기대가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본격적인 장립종 상품화의 시작은 한 연구실과 농민의 공감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농촌진흥청을 포함한 다수의 대학들, 그리고 몇 기업의 협력 연구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역시 해남이 주요한 평가 지역이다.
내가 이 과제의 총괄연구책임자는 아니지만, 이 과제 형성의 시작점과 방향 설정에 기여한 죄(?)로 책임감을 느끼고, 새로운 장을 만들어야 했다. 땅끝황토 친환경영농법인의 윤영식 대표와 나의 작은 협업과 그 성과를 확산하기 위한 1차적 단계로, 해남 지역의 대표 산물이 되게 하고, 다수 농민들의 협력을 끌어내게 하는 동시에, 병해충과 스트레스 내성을 보완한 최고의 장립종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남군은 장립종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올해가 그 첫 해이다. 그러나, 우선은 민간이 비용을 먼저 지불해야 하는 구조다. 마침, 지난 몇 년간 몰아친 R&D 사태로 우수한 인재들을 잃은 상태이며, 몇 년 간 일궈왔던 화성의 농장이 사라졌다. 우리 세종대 팀은 이후 다른 연구비 수주에 성공하여 재원을 확보하였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농지를 일궈야 했다.
모든 것인 다 새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산흙을 부어 넣어 만든 농지는 돌도 많고 수평이 안 맞다. 플롯을 체계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지만, 현지와의 조율을 맞추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정말로 '경영'의 묘미가 필요한 것이다.
해남의 포장에는 우리 연구실의 중점 세 개의 과제가 녹아들어 있다. 그것에 해남군과의 향후 과제, 그리고 수많은 미래 예비 목표들이 있다. 이 농장에 적어도 7명의 학생과 연구원,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희망들이 걸려 있다. 그래서, 우리 세종대가 준비한 포장에 한경대, 인하대, 전북대, 충남대, 부산대, 순천대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도왔다. 해당 학교의 학생들의 연구테마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순천대의 박숙영 교수님은 감사하게도 역학 연구를 위하여 서울대 김광형 교수님의 환경 모니터링 시설을 설치해 주셨다. 스트레스와 병해충 연구에 미세기상 연구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해남군 농업기술센터는 토양분석과 벼의 성분 분석, 쌀의 품질 분석을 모두 수행해 주기로 했다. 굉장히 큰 도움이다.
그런데, 1차 모내기의 결과, 모두 마음이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 조성된 포장, 처음 준비하는 학생들, 그리고 처음으로 시도되는 개방적인 관산학 연합의 모내기. 실수가 그냥 실수로, 실패가 그냥 실패로 남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애정 넘친 조언과 방향을 제안했는데,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시원하지가 않다.
육종은 최소한 십 년 지대계요,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과학은 그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여 만들어내는 문화적 토양에서 자란다. 단순무식한 정책 입안자들이 만들어낸 상황의 영향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으랴. 허리가 잘려버린 업무적 연계성과 시스템은 여실히 그 어금니를 드러내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선거일이다. 우리는 과거의 과오를 얼마나 인내하고 변화를 기회로 삼아 성장할 것인가. 우리의 1차 모내기 포장은 정말로 너무나 정직하게도 급격한 시스템 변화에 따른 운영의 어려움을 보여 주었다. 2주 뒤에 2차 모내기를 한다. 19-21일 예정이다. 엄청나게 늘어난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
위기는 기회라, 모든 학생들이 힘을 내어 이 상황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잘 모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내 결정을 모두 보류하였다. 왜냐하면, 학생들 스스로 마음을 내리라 믿는다. 우리 개인은 사실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우리 개인의 내재적 편견은 서로를 오해하고 의심하여, 그 회복의 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한다. '누가 무엇을 언제 할 것인가' - 시스템이 일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
나는 모든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믿는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또 배운다. 언제 간섭하고 어떤 것을 놔둘 것인가. 인내와 참여의 선택은 나의 지혜에 달려 있을 것이요, 그 지혜는 오롯이 나와 목표에 초점을 맞출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모두 감사하다. 책임은 나의 것이되 그 짐을 함께 들어주어서.
다시 한번 함께 해 주신 해남군 관계자분들, 교수님들, 학생과 연구원들, 끝까지 지켜보시고 함께 해 주시고, 함께 성공하시죠. 모든 공은 당신들의 것입니다. 그리고 윤영식 대표님, 이제는 우리가 무슨 가족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끼리는 마음으로 가시죠. (벼 연구자도 아니지만, 참석해 주신 박현승 교수와 그 제자이며 내 아내 심지형 선생에게 특별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