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새로움이 발들일 틈이 있다
Quicksand의 Home is Where I Belong 앨범의 속지를 보다가 재미있는 생각들이 있어 기록해 둔다.
https://youtu.be/-nMZVZeddLo?si=BcuX5sMriNhrW1gi
90년대 초, CD 복각의 열풍이 불면서, 숨어있던 명반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양산화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되자, 희소성에 기반한 마니아들은 이 현상에 대해 꼭 한 마디씩 저렇게 적어 놓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것을 문제라고 말한 화자 자체가 문제의 근원을 만든 셈이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뛰어난 실력과 음악성이 있는 음반을 혼자 듣지 않고, 재발매하고 PC 통신에 홍보하고. 즉, 그들이 '희귀성'을 판매하고 그렇게 보편화되니 희귀함이 소진된 것이다. 그런데, 희귀하지 않으니 그것에 대한 애착이 당연히 줄 수밖에.
우리는 농업에서도 이 사실을 보게 된다. 품종을 개발하고 우리의 토착 자원을 사랑하는 것은 가히 '매니아적'이고, 시쳇말로 '덕후' 수준이다.
혹, 농촌진흥연구기관이나 농과대학에서 종사하는 과학자나 육종가들을 만난다면, 그들에게서 쉽게 느낄 수 있다. 과학기술자는 농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지만, 공공의 영역에서 이름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밤새 연구하는 분들의 경우는 좀 다르게 말하고 싶다.
그런데, 희귀 음반의 예시는 '기호'의 영역이므로, 위에서처럼 희소성의 자체 붕괴에 대하여, 기획자의 한숨 섞인 소리를 듣고도 태연하게 들을 수 있으나, 기반산업인 '농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마도 농업기술 그 자체가 활용되지 못하고 함몰되는 것을 편하게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술은 현지의 농업 현장에 적절하게 또 적시에, 적합하게 전달되어야 그 효과가 분명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농업이 '돈 버는 산업'이 될 것이다.
그럼, 왜 이른바, 우수한 농업기술이 실현되는 것에 대하여, 실제 농업인들은 불만이 많을까? 나는 그것에 대하여, 농산물이 아닌 '농업 지식과 과학기술'의 희소성에 대한 집착의 측면을 공공 연구 부문에서 종종 보게 되며, 한편 농업인으로부터는 '농업 생산 기반과 정책 자원'에 대한 희소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농민과 농업 연구 기관이 희소성에 의한 효과를 좀 덜 누리고 나누는데 더 적극적일 수는 없을까? 이렇게 말하는 데 가정 큰 이유는 한 가지다.
농업을 아끼고 사랑하고 돈 벌려는 새로운 세대의 청년 농업인들이 지금 상태에서는 성공자가 되기 어려워 보여서 그렇다. 더 많이 나누고 베풀려면, '매니아적' 감상론에서 벗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누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