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지배받지 않으려면
인간이 반인간적 조류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학을 평가하는 순간, 대학은 지성의 산실이 아니요,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은 반지성이 된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지성은 빈사상태다.
지성은 꼰대요, 반감성주의요, 무심한 너드다.
대학에 인재가 있을까? 이미 그 안과 밖에서 자조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그 누구도 대학의 역할을 감히 함부로 이야기 못하기 때문이다.
어제 인구 이야기가 나왔다. 기후위기와 역병 이전에도 우리는 불현듯 인구증가에 따른 스트레스를 이야기한다. 인구가 감소되기를 바라는 정치 경제인은 없다. 누구도 그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좀 줄기를 바란다. 나만 아니면 된다.
이제, 이런 현상이 나를 넘어서, 우리만 아니면 되고, 내 학교만 아니면 되고, 우리 지자체만 아니면 된다. 내 나라만 아니면 되고...
이번에 정부의 아프간 협력자를 구한 사건은 역사적 일이다. 전인류적 위기는 이기심이고 협력의 상실인데, 정부는 반대로 일을 했다. 내 글과 내 성향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정치에 무심하게 사는지 알 테다.
일단 이 모든 사달의 시작은 'Too Much'에서 나온다. 이제 세상은 '조정'이라는 중요한 키워드가 등장할 것이다. 조정을 담당하는 공권력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Covid19 상황에서 개인들이 속에 가진 불만을 삭힌 채, 정부의 조정 방식에 가장 잘 따르는 모범을 보였다. 그랬더니, 국가경제와 정치상황이 가장 안정되어 있다.
지금 세계를 보면, 제정상인 나라가 몇이나 되는가. 나는 공권력의 횡포를 싫어하지만, 강한 폭력의 전쟁과 폭동, 약한 폭력인 정부의 통제 중에 선택하라면,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조정'의 모범은 자연스럽게 규범이 되고, 기후위기, 세계적 대역병, 자원고갈, 인구조절 등에 대하여, 각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 뒤에는 governance를 효율화할 체계로서의 기술과 정보망, 규제가 될 것이다.
그 구체적인 기술이 무엇일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조처를 눈으로 보고 있다. 기후위기는 파리협약으로, 생물활용은 바이오 관련 규제로, 이외에도 수많은 규제 방안은 차츰 그리고 명확히 우리 안에 파고들 것이다.
가장 공정한 것은 로봇이요, 가장 공평한 것은 AI의 판정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편리해서, 그다음에는 공정해서, 마지막에는 수없이 많고 복잡한 정량지표를 계산하는 블랙박스에 의지하여 공평해지기 때문에, 이 길을 찾아갈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랬다. 처음에는 하늘, 그다음에는 짐승, 그리고 신, 잠시 인간의 대표를 거쳐, 이제 우리는 지성의 종합체 피조물을 우리 사이에 놓고, 세상의 부조리, 아니 내 인생의 부조리에 대한 변명을 한다.
우리 인생은 길게 살아 100년이지만, 가족을 통해, 기억을 통해 더 긴 시간을 산다. 나만 바라보고 싶어도 내 옆에 본능의 끈으로 이어진 사람이 나를 버리지 않으며, 전체를 보고 싶어도 이기심이 그 실체를 바라보는 지혜의 눈을 가린다.
우리는 아주 간단한 때로는 복잡한 수많은 이슈에서도 세상과 우주를 통찰할 수 있다. 지금 우리 모두는 10대 사춘기일 수도, 아니 그냥 다 죽기를 기다리는 노인일 수도.
대학은 이런 질문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우리 인간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대학은 지배받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