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공기에 얽힌 피, 땀, 그리고 눈물

더워지는 세상, 물과 자원이 부족한 세상에 대한 어느쌀 연구자의이야기

by 진중현
무엇이 보이는가?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 한다. 그러나, 이 안에는 아주 소중한 것이 있다. (전남 강진)


2015년 10년을 일하던 국제벼연구소(IRRI)를 떠났다. 자의 반 타의 반,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 통일벼(IR667)가 탄생한 곳,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쌀 연구자는 방문만 하여도 감격하는 곳. 그 안에서 나는 적절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내가 꿈꾸는 크기만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동시에, 어떤 꿈은 또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야 했음을 깨닫게 된, 그런 나의 청년 시절을 바쳤던 곳이었다.


그 안에서 조금은 더 일찍 경험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구증가에 따른 자원 부족과 물 부족, 기후변화에 따른 세계 식량 위기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과학자들의 고군분투였다. 지금도 기후변화에 대한 식량문제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연구기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https://www.irri.org/our-work/impact-challenges/climate-change-sustainability

나는 우리나라에서 박사를 하고, 은사님의 추천으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이곳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벼 육종가 중 한 분인 Dr. Brar를 사사했다. Dr. Brar는 은퇴 후, 인도에 돌아가서 대학에서 가르치시다가, 작년에 세상과 이별을 고하셨다.

http://news.irri.org/2020/03/dr-darshan-brar-leading-irri-breeder.html?fbclid=IwAR0mnBkL7nY0IpJRiIrE4xQ-t03mX0VX12ORdfRCi53bX45d91e7BVf4xmg


Dr.Brar는 나의 진정한 멘토였고, 처음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서 첫 일 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그리고 과학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내 가슴과 머리에 심어주신 분이다. 벼와 사람의 이야기, 식물을 개량하는 품종육성가, 육종학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자세에 대하여, Dr. Brar가 미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


Dr. Brar는 Dr. Sigrid Heuer(아래 사진의 왼쪽에서 세 번째)에게 나를 추천하였고, 나는 IRRI 최고의 분자생물학자를 사사하게 되었다. Dr. Heuer와 함께 연구하여, 식물에게 가장 중요한 비료 성분 중 하나인 인산이 세계적인 고갈 상태에 놓일 것이며, 그것을 해결할 Pup1이라는 중요한 유전자(QTL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유전자로 놔두겠다)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도네시아 연구자들과 Pup1을 처음으로 발견한 Dr. Matthias Wissuwa(왼쪽에서 두 번째)를 포함한 우리 연구팀은 과학 연구개발의 미학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분자생물학자, 생리학자, 유전육종학자, 현장 전문가가 결합된 팀으로서, 불량한 토양이 많아 식물생산성이 떨어지는 인도네시아에 큰 도움이 되는 벼 품종을 여럿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왼쪽부터 2번째부터 Dr.Matthias Wissuwa, Dr. Sigrid Heuer, Dr. Bustamam,?, Dr. Joko Prasetiyono, 그리고 나

이러한 네트워크는 성장이 정말 어려웠다. 처음 3년은 거의 실적이 없었다. 관계를 구축하고, 현장의 문제를 하나하나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Pup1이라는 유전자는 실제로 69개의 유전자로 이루어진 염색체 단편인데, 식물의 영양 흡수에 대한 이러한 단편에 대한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연구 중 하나였기 때문에,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이것을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에서, 실험설계조차 난항을 겪었다.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열정으로 똘똘 뭉치고, 서로를 존중하며, 이해관계가 상충하지 않는 팀워크는 가장 아름다운 과학연구팀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해도 즐거웠고,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하여, 담당 연구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핵심 사항을 함께 쓰고 검토하는 과정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과학자로서의 경험이며, 진실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해 주었다.


이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행정처리와 회계적 어려움, 불필요한 간섭은 최소화되었고, 돈을 주었으니 일을 하라는 어떠한 주체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었기에, 우리 팀원들은 모두 큰 자부심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위 두 명의 위대한 멘토를 만나 성장할 수 있었으며, 내가 생각하는 과학자의 본형은 위 두 과학자의 삶에 대한 존경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무한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사진이다. 나와 함께 일을 했던 멤버들인데, 항상 기억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서로, 연구원으로, 학생으로, 파트타임 워커로 다양하게 나와 함께 해 주었는데, 이들에게 어떤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항상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결과물은 지성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인간미와 감성적 교류임을 한번 더 확인해 보고 싶다.

IRRI에서 나와 나의 연구진 (2015년 5월쯤으로 기억한다). 이 사진 이후에 떠났지만, 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라! 우리는 지금도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큰 팀을 이끌고 많은 나라에서 온 스텝들과 함께 잘 연구하는 과정에 있었지만, 내 개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내가 팀 리더가 되고 난 후, 기관의 예산이 부족해지고, 많은 대단한 리더들이 떠나면서, 남은 과학자들 모두가 거대한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래도 남아서 진행하던 목표와 연구를 어느 정도 진행하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4년 8월에 엄청난 태풍이 토네이도와 함께 결합하여, 내가 3년간 만들어가던 시설을 파괴하고 말았다. 아마, 그 이후였을 것이다. 급격하게 힘들어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도 많은 것을 배웠던 10년이다. 막연하게 '왜 우리는 굶주리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던 공부에 대하여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더 많이 농장에 나가야 해. 더 많이 식물을 직접 봐야 해. 더 많이 농업 사업자들과 관련자들을 만나야 해."라고 생각했다.


43세에 잠시 인생의 휴지기가 찾아왔다. 당시에는 반강제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시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중요한 벼 종자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심고 평가하고 연구할 수 있는 땅 한 조각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것을 알아주는 분은 내 은사님과 선후배들, 그리고 내 30년 지기 친구와 내 가족이었다.


다행히 서울대학교 부속농장에 중요한 종자를 몇 알 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품종과 교배하고, 외국에서 있는 동안에도 계속 교류하면서 개발해 왔던 종자들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비록 몸은 힘들었고, 다시 혼자 연구해야 했지만, 어떤 숙명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왜 내가 공부하는 것 때문에 힘들어야 하지?" 이 질문이 나에게 떠오른 첫 번째 질문이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죽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내 일이라면?" 그다음에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 진심이었다. 내가 이것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가? 아니, 사랑하지 못해도 그것이 이미 나의 일부인 것인가?


친구가 온실을 쓰게 해 줬다. 가장 소중한 볍씨를 모를 내어, 아내와 단둘이 온실 안의 밭을 논으로 만들고, 그 안에 심어 길렀다. 2017년 6월 17일. 기후변화에 따른 고온에 대한 다양한 벼 식물체를 고르고 판정하기 위해 한 줄씩 심어 기르는 모습이다. 2017년은 기록적으로 더웠다. 매일매일 최고 온도는 40도를 넘었다. 이 안에는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벼 품종과 내가 개발해 오던 벼 품종이 있다. 고온과 건조, 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검토할 수 있었다.

2017년 6월 17일 화성에 있는 고온 온실에서, 처음으로 다른 품종과 유전자원을 한 줄씩 심어 비교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과거부터 협력해 오던 연구자들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한 벼 형질 연구를 더 많이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경기도 농업기술원과 함께 개발한 비료 흡수능력이 좋고 고온에 강한 '세찬미', 건조에 강한 '솔찬미'가 품종출원되었고, 최종 심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솔찬미'는 건조에 강하며, 열대와 온대에 모두 적응할 수 있다. 밭 조건에서 한 달만 물을 주었다가 물을 빼고 기르는 절수 시스템에서 자라는 모습이다.
'세찬미'는 표면에는 물이 없는 반건조 조건에서 적절한 벼 품종이다. 고온에도 강하며, 인산 흡수 능력이 좋다. 적은 비료에서도 생산성이 기대된다.

이외에도, 주식회사 새들만의 도움으로, 1.2% 염분 조건에서도 강한 특성을 보이며 볏짚이 많은 '세소'의 성능을 확인하고 품종을 출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고품질 찰벼인 '세종찰', '서시1호', '서시2호' 등이 서울대와 중요한 민간육종회사의 도움으로 속속 개발되었다. 이후, 다수의 기후변화 인디카벼도 개발하여 활용하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산의 간척지를 가는 길에 뻘 앞에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기후변화로 매년 해수면이 1cm씩 올라간다고 한다. 앞으로 염분에 강한 식량작물 개발은 필수적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겪게 되는 많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9월의 기상이 수상하다. 비가 잦고, 맑은 날에도 구름이 열대지방처럼 뭉게구름을 보게 된다. 과거 100년간의 기온 상승이 앞으로도 더 진행되어, 2050년이면 최소 4도 이상의 기온이 상승한다고 한다. 보통은 고온, 건조, 해수면 상승 등을 문제로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기후변화의 양상은 그 방향성보다도 '비가역적'인 미세기상의 '예측불가함'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7년에는 5월이 고온건조이더니, 2018년에는 6월이 더웠다. 2020년에는 기록적 폭우가 있었다. 더웠던 달이 오히려 그다음 해에는 냉해 때문에 고생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의 반응도 독특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으나 쌀이 익을 때 고온으로 싸라기가 증가하여, 2019년과 2020년의 작황이 매우 나빴다. 겉보기로만은 쌀의 수량을 가늠하기 어려워, 실제로 35% 정도의 쌀이 감수하였는데도, 언론은 작황 실제 계측 이전까지 낙관적인 보도만 하였다.


향이 많아 인기 있던 쌀 품종은 향이 부족해졌다 하고, 품질이 좋기로 소문난 쌀이 그렇지 못했다. 더욱이 일부 소비자가 선호한다고 몰래 들여온 외국 종자들은 피해를 보아도 보상받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품종 탓을 하곤 한다. 올해처럼 가을에 비가 많이 오면 수발아가 심한 고품질 벼는 벼알에서 싹이 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더 큰 위기로 한몫 거드는 것은 비료 부족 사태다. 질소비료는 하비법이라는 방법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따라서, 저탄소 시대에 질소비료를 적게 쓰는 품종을 이용하고 농법을 개선해야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는 인산의 부족이다. 식물이 자라는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의 성분이 있다. '질소, 인산, 칼륨'. 이 중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식물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다.


인산은 인광석으로 채굴해서 쓴다. 그런데, 이것은 앞으로 부족해질 것이다. 100년 정도 쓸 분량만 있다고 하는데, 인구가 늘어 식량이 더 필요한 만큼, 인산의 필요량도 더 하다. 그런데, 인산은 사용 후, 유기화되어 하천과 바다로 흘러 버려진다.


https://greenacademy.re.kr/archives/1439

https://web.mit.edu/12.000/www/m2016/finalwebsite/solutions/phosphorus.html

이것을 개선하려면, 인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식물의 품종부터 개량하고, 이에 맞는 농법을 개발해야 한다. 탄소저감을 하자고 물을 아끼는 농법을 쓰면, 자연스럽게 토양 내 수분이 부족해지는데, 그렇게 되면 밭의 상태와 비슷한 산성토양이 되고, 밭 상태의 산성토양에서는 식물이 좋아하는 무기질 인산의 이동이 억제되기 때문에, 그것을 잘 활용하는 품종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인산이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식물은 생장 자체가 저해되어, 모든 스트레스에 약하게 된다. 식물은 보통 가장 어린싹이 날 때와 사람으로 치면 임신한 때인 '수잉기'에 가장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이때 주어지는 스트레스는 식물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탄소저감 시대를 맞이하였다. 무기질 인산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복합비료의 형태로 식물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비료의 양을 전체적으로 줄여야 하고, 물도 적게 줘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고갈될 인산질 비료도 줄이고, 탄소저감도 추구하는 목표에 동시에 도달하려면, 인산 이용효율이 높고, 인산부족에 강한 식물들을 개발해야 한다. 아래는 이에 관계된 중요한 몇 개의 논문이다. 이 연구결과에 따라, Pup1을 우리나라의 다양한 품종에도 도입하고, 이 효과에 따라 영양분 흡수도 잘하여, 토양오염도 막으면서, 친환경 재배도 가능한 벼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1346


https://bmcplantbiol.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s12870-016-0783-7

https://academic.oup.com/plphys/article/156/3/1202/6108728


또, Pup1을 비롯한 다수의 중요한 기후변화 유전자들을 활용할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복합적인 효과, 그들이 충돌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효과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몇 개의 성과를 얻었다. 아마도 이후 더 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고온, 건조, 직파 특성, 영양 흡수, 염해 등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하게 되고, 이것이 품질과 수량성에 미치는 효과를 경감하게 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https://www.mdpi.com/2077-0472/10/10/453

https://www.mdpi.com/2223-7747/10/8/1523

그리고, 열대화가 진행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열대지방 유래의 도열병, 흰 잎마름병, 바이러스병 등에 대한 추가적인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열대화가 되면 식물들만 영향받는 것이 아니라, 열대지방에서 창궐하던 병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매개충에 의하여 월동하고, 그것이 생태적인 교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과거에는 유전자 한 개 한 개를 연구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사람 한 명, 식물체 한 개의 DNA를 전부 이해하는데 몇 백만 원이면 분석이 가능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따라서, 식물육종가가 어떤 식물이 어떠한 특징을 갖는지를 정확하게만 기술해 주면, 그것을 DNA적으로, 생화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진 세상이다. 이렇게 재발견된 DNA 어느 부위의 유전자는 식물육종가들이 정보를 활용하여, 더 많은 좋은 유전자를 한 식물체에 더 쉽게 모을 수 있게 된다.


남은 문제는 이 유전자들이 함께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복잡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다. 인구가 많아서 자원이 부족해지고 물이 부족해졌다. 탄소 발생이 증가하니 기온이 오르고 세상이 마른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비가 억수로 오고, 엘니뇨와 라니냐가 교차한다. 6월에 오던 장마는 이제 언제 올지 모를 것이며, 우리나라 바로 옆에서 태풍이 생길 수도 있는 때가 올지 모른다.


그런 세상에서 식물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묵묵히 일하고 고민한다. 우리나라에는 나 같은 식물 육종가가 매우 희귀한 직업이다. 벼의 경우에도 어느 일정 수준에 오른 육종가는 수십 명 정도 수준에 불과하며, 각 작물마다 열 명 남짓한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식물육종가들은 한 명 한 명이 식물과 운명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며, 이제는 기후와 인간과 자원과 정책까지도 그 안에서 녹여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흘리는 피, 땀, 눈물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다.


밥이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품종이다. 다른 벼 품종개발자가 나에게 먹어보고 평해 달라고 보냈다. 이런 좋은 품종을 개발해 줘서 너무 고맙다.


세상에 많은 가난하고 밥 한 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먹는 쌀을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쌀이 남아돈다는 정부의 판단 하에, 우리나라의 쌀 연구, 특히 품종개발자들의 노력이 과소평가되고, 쌀 연구를 하던 인재들이 떠나게 되었다.


필리핀에 처음 가서 리조트에 묵었을 때, 옆의 할머니가 우리가 하는 일을 듣고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라고 했었다. 우리 외조부께서는 '과학자는 적이 없다'라고 하셨다. Dr.Brar는 인도에 방문하실 때마다 자신이 모은 재산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주셨다. Dr. Heuer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빈민층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자랑할 것도 아니요, 내가 가진 지식이 편협한 몇 명의 자리다툼으로 희생되어서도 안된다. 나도 인간인지라 공부 열심히 한 게 무슨 죄냐고 원망한 적도 있고,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세상과 제도를 탓했었다. 그러나, 쌀과 벼를 연구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많이 먹이는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가장 많은 이를 먹이고 가장 널리 함께 해 온 벼는 그 덕에 잘 살게 된 사람들에 의하여, 값이 싸다 별로다 하며 취급을 받는다. 언뜻 자기 한 몸 희생하여 공부시킨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 같다. 그러한 벼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복되게 하려는 식물육종가가 가져야 할 마음은 무엇일까?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감이요, 마음이 아니겠는가. 우리 은사님께서 그러셨다. '서두르지도 말고 멈추지도 말고'. 그렇다. 누가 나에게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겠다 했고, 그 공부를 하니 그 큰 영광과 즐거움도 있지 않았나. 식물육종가는 90이 넘어 생을 다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지식과 지혜가 결합되어 더 많은 것을 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벼와 쌀은 늘 '우리' 안에 있으며, 우리와 함께 영원히 갈 것이다. 먹거리이자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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