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그렇게 사람이 되었다

야생에 살고 있는 벼의 친척이 우리와 함께 살 수 있을까?

by 진중현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분자와 원자로 되어 있고, 그것들은 돌고 돌아, 생물이 되기도 하고, 무생물이 되기도 한다. 운이 좋은 것들은 생물이 되고, 그 안에 영혼을 담아 생각을 하고, 굳이 몸을 변화시키지 않고도 상상을 하며, 다른 것들의 존재를 인지한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그렇게 세상에서 다른 것들을 인지하고 생각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동물과 식물이 언뜻 착해 보이지만, 그들은 세상이 아닌 자신들의 삶을 걱정할 뿐이며, 본능에 의지한 작은 능력을 갖고, 우리 인간과 함께 어우러지면, 우리는 그들을 경계하지 않고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우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우리는 '순응(domestication)'이라는 말을 붙인다. 순응이란 우리 인간의 생존과 삶에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순응의 과정에서, 우리 인간의 역사를 공유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식사를 제공하거나, 우리를 즐겁게 하거나,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 살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무언가 알려주거나, 좋은 공기와 물을 주거나, 심지어 우리의 환경을 정화시키고, 시체를 적절하게 정리하여,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인간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한 친구는 무엇일까?


플라톤의 우상설을 인용하자면, '종족의 우상' - 즉, 모든 것에 인간의 관점과 인간의 생각을 도입하여, 그것들의 운명과 삶을 결정하는 편견에 근거한 다양한 결정을 자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쉬운 것들을 우리 곁에 두고 사랑하고 먹이고 함께 살아간다. 어쩌면, 그토록 숭고한 '사랑'의 모습은 혹자에게는 '희생'일 수도, 혹자에게는 '편집증'일 수도 있듯이, 그 범위는 인간 내에서 제한된 것이 아닌,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그 흔한 개와 고양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인간에 순응하는 생물의 이야기로서 흥미진진하겠지만, 오늘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매일 보게 되는 한 식물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벼'다.


Diversity-of-wild-rice-species-The-24-wild-Oryza-species-are-divided-into-a-primary_W640.jpg Solis et al. 2020, Front Plant Sci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pls.2020.00323/full


위 그림은 벼와 벼의 친척인 '야생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벼의 먼 친척'들이다. 보통 wild rice라고 하면, 상황에 따라 그냥 옛날부터 재배되었다가 잡초화가 되어버린 벼를 포함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벼과인 Oryza에 속하지 않는 Zizania 등까지 포함하기도 하는 등 용어의 혼란이 있다. 영어로 하면, 가장 정확한 용어는 'wild relatives of rice'이다. 이것은 FAO의 유전자원 전문가인 Duncan Vaughan과 작고하신 야생벼 전문가인 Dr. Darshan Brar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들을 것이기도 하다.


벼와 쌀의 이미지는 이미 익숙하리라 생각한다. 내 브런치의 다른 글들에서도 벼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삭'의 이미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나라 과학지식을 가장 잘 소개하고 있는 과학동아의 강석기 기자의 다음 기사를 일단 인용해 봤다. 벼의 친척인 야생벼에 대한 유용성에 대하여 너무나 잘 소개해 놓았기에 감사하게 모셔왔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43980


개인적으로 강석기 기자를 한번 만났던 것 같다. 강석기 기자는 쌀에 대해 매우 많은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쌀에 관련하여 지속적인 호기심을 보이고 있으며, 중요한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꾸준히 기사를 실어주고 있다. 2003년에 만난 인연으로 나도 그의 기사에 한 줄 도움을 준 적이 있다. 혹시 '기능성쌀'에 대한 골동품 기사를 찾는다면, 다음의 기사를 참고해 봐도 좋겠다.


끊임없이 증가하는 세계 인구, 그 세상을 먹여 살리기 위한 노력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 온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고 싶었다. 단지 생각에 멈추어 있기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적 진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쌀은 우리가 가장 흔히 섭취하는 식품의 소재이다.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매일 먹으며, 극지방과 사막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곳에서 우리 인간과 함께 한다. 우리 도시 문명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곡식이기도 하다. 엄청난 칼로리를 제공(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자) 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할 수 있었고, 역대 가장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이에 대한 이견이 있다고? 나는 한스 로슬링의 'Factculness'를 일단 한번 읽어보고 토론하자고 하고 싶다).


쌀을 비롯한 식량작물인 밀과 인간의 이야기도 극적인 요소가 많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밀을 재배하고 그것을 식량화하는 과정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관점을 제공하였다. 이 글을 더 읽기 전에, 아래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이 책을 미처 읽지 못한 분은 꼭 읽어보기 바란다. 아니, 이미 수많은 리뷰가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셔도 좋겠다.

maxresdefault.jpg 이미지 따옴. https://www.youtube.com/watch?v=vgJGJpyHaQQ


밀뿐만 아니라, 우리가 식량으로 삼고 있는 벼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벼를 기른 것인가, 벼가 우리를 먹이고 키운 것인가. 벼가 우리에게 순응한 것인가, 우리가 벼에 순응한 것인가.


Domestication이라는 용어는 'dome(집, 거주지)'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인데, 종종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기술되곤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영역에 야생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을 끌어들여 함께 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단어는 그저 중립적으로 해석되어도 무리가 없다.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결국, '인간과 벼가 함께 살게 되었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그럼 지구 상에 먼저 인간보다 먼저 출현한 벼가 혹시 지성이 있다면,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 조금은 뚱딴지같은 상상을 잠시 해 보고 싶다. 다음의 링크를 한번 보라. (영화 스포일러가 있으니 조심하라).


https://namu.wiki/w/%ED%8C%AC%EB%8F%84%EB%9F%BC


이 영화 '팬도럼'에서, 어느 폐쇄된 생태계에서 먼저 탄생한 자, 지배하는 자의 강한 권력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하나밖에 없는 지구'(다른 의견 금물)에서 인간은 막내이며, 다른 생물들이 먼저 태어났다면,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그것을 관리하는 권리는 신을 부정하는 순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들 안에서 우리가 적절하게 '순응(domesticated)'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나는 유발 하라리가 언어를 참 정결하고 순화해서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식량은 모든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청나라가 된장을 말안장 아래 두고 뛰어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건국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많은 군대가 식량을 조달받지 못하여 전쟁에서 패퇴하였다.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만들어진 것이 부족의 영역이며, 국경이란 그런 것들이 고착화된 산물 중 하나이다.


자연의 형상에 따라 생물종 각자는 나름대로 진화하고, 이후에 발생한(또는 이주했을지도 모르는?) 생물들은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름의 재미있는 상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좀 더 합리적인 가정을 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화석과 각 생물의 DNA 안에 내재된 정보를 분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벼는 1억 3천만 년 전, 곤드와나 대륙(세상의 모든 땅들이 하나로 붙어 있던 시절)에 그 분화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https://link.springer.com/chapter/10.1007/978-981-15-4120-9_1


나는 벼의 분화가 생태형의 분화를 포함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간섭과 관계없이 벼과의 식물들은 이미 거기 있었고, 지질학적 시간대와 함께, 대륙의 분리, 그리고 기후의 변화에 따라, 고립되고 때로는 서로 융합되어 가면서, 다양한 생태형 특이성을 획득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현재는 '인디카'와 '자포니카'라는 두 개의 생태형으로 나뉨을 관찰할 수 있기에, 이 두 개의 개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진화'와 '순응'을 연결하여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분화는 다른 brunch 글에서 이미 다루었다. 인디카와 자포니카는 생태형적으로 특이하기 때문에, 다양한 유전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 그리고 기후와 관련된 다양한 특성에 연관되어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최근까지도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분화를 재배벼와 가장 가까운 'AA' 유전체 야생벼 집단에서 고민해 왔다.


https://www.pnas.org/content/111/46/E4954

그러나, 기존의 생각에 몇 가지 의문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중의 하나가 '순응'의 과정은 하나이지만, 그 기원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등장하였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400379/


이 생각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증거로서, 나는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정의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실체로, DNA 단편을 생각해 봤다. DNA 단편을 다양한 야생벼에 적용해서 분석해 보고자 했고, 그 결과는 나름 의미가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결과는 어찌해서, 인디카-자포니카 특이적인 부위가 현재 재배벼와 유전적 거리가 매우 거리가 먼 야생벼에서도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생각은 결국, 벼의 생태형적 분화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벼의 순화 과정은 우리 인간의 등장 이전부터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더 세상에 늦게 나타난 인류가 벼에 순화된 것이고, 이러한 '순화 또는 동화' 과정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생태형 분화의 진행과정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0722-016-0368-1


이 관점에서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분화는 더더욱 복잡한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자포니카는 지금의 온대, 인디카는 지금의 열대/아열대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그런데, 현대의 야생벼에서 자포니카 특이적 부위가 많이 발견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번 brunch 글에서, 과거의 기후가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고정적이지 않을 때 설명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었다.


결국, 벼가 세상에 가장 먼저 태어났던 곤드와나 시절부터 진행된 대륙 이동, 지질학적 변화, 그 사이에 발생한 수많은 극단적 기후, 지협과 해협을 가로지르는 이주와 격리, 다른 동식물, 미생물과의 상호작용 등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야생벼들은 그 진화적 흔적과 파편들을 그들의 DNA 안에 담아 놓았다.


서울대학교 이용환 교수팀은 벼를 숙주로 삼은 도열병의 진화에 대한 유전체 연구로 명성이 높다. 도열병의 진화는 사실상 벼를 숙주로 하며, 벼-도열병 시스템을 포함한 환경과의 삼각형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러한 가정을 유전체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이용환 교수팀의 발견은 우리가 생각해 오던 관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 주었다. 벼의 진화 조차도 벼보다 먼저 발생한 미생물에 의한 주도적 역할을 암시하였다는 것이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0-19624-w


생물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 중에 '먹고 먹히는' 관계만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질병을 일으키는 과정도 결국은 미생물과 숙주와의 먹고 먹히는 관계며, 우리가 맛있게 밥과 소고기를 먹는 것도 생물의 상호작용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식량과 질병, 인간의 수명 등의 가장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의 출발점은 모두 '우리의 먹거리'를 연구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중국 농업과학원과 중국농업대학의 Liang 박사 팀은 벼의 먼 친척 들인 Oryza genus(벼과)의 모든 유전자를 다 모아서 연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한 생물체에서 존재하는 유전자를 모두 모아 놓은 한 덩어리를 genome(게놈)이라고 하는데, 그것들을 한꺼번에 다 모아서 데이터화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자는 것이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2214514121000830


1-s2.0-S2214514121000830-gr1.jpg

야생벼의 유전체는 이렇게 많이 해독되었다. 학명의 오른쪽이 해독된 숫자, 가장 오른쪽에 우리가 미래에 활용해야 할 특성들을 정리했다. 이 안에 얼마나 엄청난 수의 유전자가 숨어 있을까?


과학동아의 강석기 기자가 대단하다고 여겨진 이유는, 누구보다도 빨리 Cell 논문의 중요성을 캐치하고 기사화하였다는 점이다. 가장 처음 만난 지 18년이 지났고, 나는 벼 유전육종학자로, 그는 기자로 살아갔지만, 관심의 선은 DNA의 두 가닥처럼 헤어졌다가 만나고 교차한다.


그럼, 자 이제 이야기를 슬슬 정리해 보자. 두 가지 질문이다. 먼저, 야생벼는 어떻게 순화가 되었는가? 그 이유는 묻지 말자. 인간의 역할은 아주 최근의 일일 뿐이지만, 기여도는 크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의 논제가 아니다. 더 많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과학자들은 다양한 외형 변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개별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 유전자들이 현재까지 밝혀진 야생벼 각 유전체에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다음의 논문을 참고해도 좋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2214514121000532


내가 놀랐던 것은 저 몇십 개 수준의 유전자의 작은 변이가 저토록 놀라운 형태적 변화를 일으키고 유전되었냐는 것이다. 그것은 저 은밀한 DNA 안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이고,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유전력(heritability)의 힘이다. 이것을 세계 최고의 벼 유전자 진화 연구팀들이 유전자 편집으로 증명했으니 정말 감탄할 따름이다.


두 번째 질문이다. 저 안의 중요한 형질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국제 공동의 노력에 중국인 과학자들의 기여가 최근 눈부시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기대하는 듯하다. 아래 논문을 다시 소환해 왔다. 여기 chapter 2.1을 보면, 약간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다.


"Asian rice is conventionally classified into two subspecies, xian/indica (XI) and geng/japonica (GJ) according to differences in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agronomic characteristics, and ecological or geographic distribution. Recently [61], [62], [63], O. sativa was divided into five subpopulations: xian, aus, aromatic, temperate geng, and tropical geng (Fig. 2a), using DNA markers including simple sequence repeats (SSRs) and single-nucleotide polymorphisms (SNPs). "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2214514121000830


"벼는 두 개의 생태형이 있다. shen과 geng이다. 그리고 다섯 개의 유전체 그룹이 있다. geng은 temperate geng과 tropical geng이 있다"라는 부분이 있다. 이제 그들은 벼의 분류에 대하여, 중국식 용어를 제안하고 있다. 자신들이 진화에 대한 연구에 대한 기여를 열심히 하니, 그것에 대한 노력을 인정해 달라는 의미 같다.


그런데, 본디 식물을 포함한 분류학에서 학자들은 최초의 학자가 분류의 의의를 찾고 명명을 하면 그것을 존중한다. 벼에서 인디카와 자포니카로 나눈 Kato를 기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디카도 "Oryza sativa L. spp. indica Kato"가 정식 이름이다. 중국의 대단한 연구결과는 칭찬하지만, 어쩌면 진화 연구는 정치적 후원이 없이는 불가능한가 생각되어 조금 착잡한 생각이 든다.


내 개별적인 연구를 볼 때, 야생벼의 진화적 관점에 도입한 벼의 생태형적 분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벼의 진화의 중심은 인도도,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지금 그토록 조용한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들, 인도차이나가 더 중요한 생태형적 분류에 관계된 것처럼 보인다.


출판할 만큼 분명한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벼가 Gondwana 때부터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분화가 대륙이동과 함께 했다는 점, 그리고 지금의 생태형 분화에 대한 유전체 단편이 야생벼에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내가 2017년에 발표한 논문의 원데이터와 그 수집종의 기원지를 매칭하여, 각 단편의 분포를 그려 본 그림이다. 벼 속은 아마도 지금의 에티오피아/케냐쯤에서 처음 나왔고, 그것이 2차, 3차적 분화를 진행했던 것이 아닐까? 아무도 모른다. 그냥 상상할 뿐.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0722-016-0368-1


벼진화.jpg Chin et al.(2017)의 논문 근거, 생태형 관련 DNA단편을 바탕으로 야생벼 기원과 지각의 이동을 연결하여 그린 상상도


이 시공간을 초월한 시간 중에, 야생벼는 수많은 우리가 모르는 기후변화의 역사를 담았을 것이다. 난 이 책에서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기후변화가 지질학적으로는 과거에 있었던 수준을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의 이야기를 과거의 흔적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39715887g.jpg 미즈노 카즈하루, 지구의 역사 (2020). 문학사상

이제 그 유전자를 담은 유전체를 모으고, 그것을 해석할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하든 안 하든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열정적인 과학자들이 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상당 부분의 지식은 고맙게 공유될 것이다. 그런데, 벼의 분류학적 명명에 대한 이야기에서 잠시 비췄듯이 우리가 그 정보를 활용하는 것에 한계도 있고, 우리 스스로도 많은 기여를 해서 그 몫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과학자들의 세계는 인터내셔널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에게 특이한 요구와 목표는 우리가 찾아야 한다. 순수 과학자들의 관점에서 해석된 현장의 문제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있고, 그 문제에 적합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도 야생자원에서 기후변화를 비롯한 예상치 못한 수준의 문제(고온, 건조, 아열대화, 자원고갈, 해수면 상승, 노동력, 탄소 문제 등)를 대비해야 한다. 많은 답들이 야생자원 안에 들어 있다.


자, 그럼 야생자원 안에 있는 유전자와 그 정보를 활용하기 위한 그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과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몇 가지 아이디어는 있으나, 그것을 여기에 적기에는 너무나도 전문적이어서, 그 기술이 좀 더 보편화된 시점이 되면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벼는 사람이 되었다'


이 문장의 의미를 같이 음미할 수 있었다면, 몇 안 되는 벼 진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힘을 내어 공부를 더 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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