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이라는일본 영화가
위대한 이유

우리나라는 어떤 영화를 찍어야 하는 거지?

by 진중현

영화 '우동'은 2006년에 개봉된 일본 영화입니다. 여기에 링크를 걸었으니, 차분히 보기 바랍니다.


일단 영화를 보기 전에 혼자만의 공간 또는 정말 사랑하는 그러나 말이 적은 한두 명의 친구나 연인, 가족과 보기 바랍니다. 소란한 곳에서 보지 마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lXQo42U9i9g


영화를 다 보셨나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동이 당긴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잘 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무언가 가슴속에 따뜻함과 뭉클함이 남는다면, 왜 내가 이 영화를 '위대하다'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 안에는 억지가 전혀 없습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구성이 있습니다. 어느 잡지사의 기획자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전국의 음식을 찾아가는 기획을 합니다. '맛집 탐방'이지요. 그런데, 이게 대충의 기획은 있지만 내용 자체는 별 것 없습니다.


사실 우동도 별 것 없잖아요? 밀가루 반죽하고 숙성하는 동안, 간장 육수를 만들고, 면을 떼어 삶은 후, 육수를 부어 냅니다. 그게 다죠. 굉장히 밋밋한 음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동을 종종 굉장히 먹어 보고 싶습니다. 우동은 왜 먹을까요?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아주 작고 섬세한 차이 같지만, 우동은 다양합니다. 단지 요리법이 다른 것뿐만 아니라, 먹는 방법(심지어 젓가락 없이 손으로 먹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도 다르고, 자기 그릇을 가져가서 받아먹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우동에는 절절한 사연도 있고, 즐거움과 상쾌함도 있습니다.


잡지는 나름 성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우동 여행에 참여합니다. 우동 면발을 위해 기도도 하고 정성도 들입니다. 우동에는 많은 눈물이 들어갑니다. 우동의 짠맛이 간장 맛인지, 눈물 맛인지, 땀의 맛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렇게 우동은 일본인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음식은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를 반영한다는 것 정도는 다 압니다. 음식을 찾아 일부러 여행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농촌 관광을 하는 이유 중 음식 때문이라고 말한 사람이 응답자의 12% 정도 되어, 휴식(29%), 풍경(29%)과 더불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음식은 사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여행을 가서 무엇을 하는 것보다 여행을 오가는 길이 더 즐겁습니다. 차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함께 숨을 쉬는 좁은 공간이 좋습니다. 막상 여행지를 가서 무엇인가를 보는 것보다 함께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그 자체가 좋습니다. 또, 함께 돌아오는 것도 좋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본격적인 것을 하는 것보다 그것을 준비하거나 마무리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https://www.stylebuyup.com/141

그런 나에게 막상 어딘가를 가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정점은 미각과 후각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산속 길을 걸으며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의 시작과 끝에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내가 서 있고 숨 쉬는 곳의 문화와 역사, 사람 사는 이야기를 모두 한 번에 담아 주는 곳을 찾아갑니다. 바로 그곳이 그 지역 고유의 전통식당 들입니다.


얼마 전, 전라남도 해남의 '장수통닭'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보건소에서 장수통닭의 명물인 '닭회'를 여름 기간 동안 내어놓지 말라고 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충분히 대단한 집입니다. 다음 기사를 한번 읽어볼까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305505#home

21231F4754BAD4B111.jfif 장수통닭의 입구다. 이 집이 그토록 엄청난 집인 줄 상상도 못했다.
unnamed.jpg 출처 http://www.autocamping.co.kr/campinginfo/recommend_view.php?bbs_idx=33190&bbs_id=B0098

장수통닭에서는 정말 통닭만 빼고, 닭으로 할 수 있는 최상의 요리들이 나옵니다. 더욱이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되어 튀겨지는 영계들이 아닌, 좀 더 성숙한 닭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냉동이나 냉장을 하지 않고 내어진 요리여서 너무나 입이 즐거웠습니다.


난 이제 '해남' 할 때마다 닭이 떠오릅니다. 누군가 나에게 해남에서는 뭐가 가장 유명하냐고 묻는다면, '닭'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해남에 가 보면, 닭 말고도 잘하는 게 많습니다. 소도 잘하고, 고구마도 잘하고, 막걸리도 잘합니다. 직접 여기 가 보고는 기사보다 더 좋은 경험을 하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http://m.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016

해창 양조장에서 만든 해창막걸리. 찹쌀과 멥쌀을 섞어서 담근다고 한다.

'해창막걸리'도 일본 침략기에 있던 양조장을 활용하여, 최고 수준의 막걸리를 만드는 곳입니다.


보통 막걸리보다 훨씬 알코올 도수가 높습니다. 그런데 먹고 개운합니다. 9도, 12도 사진만 있으나, 18도 막걸리는 없어서 못 판다고 합니다. '롤스로이스'가 그려져 있는 '롤스로이스 막걸리'라고 하네요. 가격도 보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내와 함께 앉아, 달잔에 막걸리를 부어 마셨습니다. 술을 한잔 부으면 보름달이 되고, 한 모금 할 때마다 달이 기웁니다.



해창막걸리를 달잔에 부어 마셔봤다. 음식은 여행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고구마나 닭이나 막걸리가 뭐 그리 대단한 음식은 아닙니다. 나는 해남을 여행하다가 떠올린 영화가 '우동'이었습니다. 우동을 찾아 먹으면서 기행하던 사람들의 그 느낌을 잠시나마 가져봤습니다. 사진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음식은 미각과 후각을 자극해서 그런지, 그 기억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잠시 나는 쌀에 대해 돌아봤습니다. 밥도 이럴 수 있을까요?


일본에는 Inakadake현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가난하던 동네가 여러 가지 색을 가진 벼 그림으로 유명해진 곳입니다. 벼도 여러 가지 색의 잎을 가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 시도는 베껴다 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46zRPMDBs8c


스마트폰으로 논의 벼그림을 찍게 되면, 그 그림을 QR code처럼 인식하여, 주문이 이루어지도록 한 시스템입니다. 이것으로 Inakadake현의 쌀 판매량은 급증하였죠. 어쩌면, 사람들은 그 지역의 이야기와 감성을 산 것이죠. 그것이 가격을 뛰어넘어 구매의욕으로 직결되었기 때문에, 높은 가격으로 수익을 내려고 하는 일반적인 편견을 깨버린 것입니다.


관광과 농업, 그리고 즐거움을 IT 기술로 연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착상이 빛납니다. 사실 쌀밥의 맛은 지역마다 편차가 많이 줄었고, 소비자들이 기술적으로 그것을 판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나는 영화 '우동'에서 그것을 봤습니다. 그렇고 그런 각 지역의 우동들. 무언가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던 우동들이 한 작품에서 꿰어지는 순간, 엄청난 상승작용을 보인 것입니다. 최불암 씨나 백종원 씨도 전통음식과 맛집을 프로그램으로 소개하지만, 그것은 이미 '맛있다'라는 전제를 기대하는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동'이라는 밋밋한 음식을 소개하는 영화는 나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위대함'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일까요? 우리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한 공감대와 감동을 전혀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물에서 끌어낼 수 있는 저 힘은 대단한 콘텐츠 기획력이 빛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나는 저 영화의 힘을 한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나 스스로 좋은 음식을 만나고 그 경험을 느꼈을 때, 얼마나 저 영화가 치밀하고 섬세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좋은 음식, 좋은 음식을 찾아가는 길, 그리고 주변에 자라는 식물과 동물, 흐르는 냇물, 그리고 바람, 공기, 햇살... 함께 하던 사람들을 가슴으로 머리로... 그리고 내 혀와 코로 음미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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